서 프렐류드-1

욕망과 축제의 프렐류드 ~서&동~

 

1화

일 년에 한 번 습격해오는 <거대한 재앙>이라고 불리는 달. 성가신 달이 세계에 너무 가까이 와버린 탓에 세계 각지에서 기묘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태고의 마물이 되살아나거나, 물건에 혼이 깃들 거나 하는… 그 이변을 진압하기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마법관에는 매일같이 토벌의뢰가 들어오고 있었다.

 

 

콕로빈 : 현자님! 안녕하세요! 이번 달 토벌의뢰와 보고서입니다!

 

아키라 : 콕로빈 씨, 안녕하세요. 이… 이렇게 많이요!?

 

콕로빈 : 이건 중앙 수도에 대한 건입니다. 변경에서 올라온 보고서와 타국에서 온 것들은 후일 다시 전해드리겠습니다!

 

무르 : 편지가 많네! 편지가 많으면 기뻐? 슬퍼?

 

아키라 : 이, 이번 같은 경우에는 슬프려나…?

 

무르 : 오케이! 그럼 태우자! 《エアニュー•ラ…》

 

콕로빈 : 와!! 안돼안돼!! 중요한 서류예요…!

 

아키라 : 그렇지만 이렇게 가다간 끝이 없겠어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변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는데…

 

스노우 :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빈발하고 있는 기묘한 이변을 안정시킬 방법을 찾았구먼!

 

화이트 : 완벽하게 이변을 끝낼 수는 없지만, 어지간한 이변은 줄어들 것이네!

 

아키라 : 대단해요! 스노우, 화이트!

 

피가로 : 그걸 전하기 위해 각국의 선생님들… 나와 오즈, 샤일록, 파우스트를 이곳에 부른 거구나.

 

스노우 : 그렇구먼! 우선은 그대들에게 얘기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네.

 

파우스트 : 그래서, 이변을 안정시킬 방법이라는 건?

 

스노우 : 우리 21명의 마법사가 성스러운 축제를 거행하는 것일세.

 

화이트 : 태고의 신전을 되살려 원시의 정령을 소환해 그 토지가 갖던 본래의 힘을 되찾는 것이네.

 

오즈 : …태고의 신전을 되살려?

 

샤일록 : 진심이세요? 지금 시대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태고의 신전은 현존하지 않아요. 되살린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인간들의 토지를 위협하게 될 거예요.

 

파우스트 : 토지를 빼앗기면 인간들은 화를 내지. 마법관이 있는 중앙은 둘째 치더라도, 타국의 인간들이 마법사에게 협력할 거라곤 생각할 수 없어.

 

아키라 : 저기…

 

오즈 : 뭐지.

 

아키라 : 성스러운 축제라는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의식인가요?

 

오즈 :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피가로 : 너는 늘 대답이 그거네. 용케 애를 키웠어.

 

샤일록 : 현자님. 간단히 설명해드릴게요. 이 세계는 <거대한 재앙>이 가까워진 영향으로 물에 넣어진 기름처럼 동요하고 혼란해지고 있습니다. 그 상태를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태고부터 존재해 온 원시의 정령들을 소환해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에 정착시키자는 이야기예요.

 

아키라 : 즉… 원시의 정령님들이 토지에 돌아와 준다면 세계의 이변이 진정된다는 건가요?

 

피가로 : 응.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원시의 정령들은 이 세계에 싫증이 나서 잠들어 있어. 불러내기만 했을 뿐인데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지. 자칫 잘못했다간 우리가 돌이 될 거야.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성스럽게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이 성스러운 축제인 거고. 정령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을 입고, 정령들이 좋아하는 마법사들을 모아 그들이 가까이 오기 쉬운 분위기를 만드는 거야. 자, 히키코모리인 파우스트를 억지로 바깥으로 끌어내면 화내잖아?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새끼고양이를 준비해 놓는 느낌이려나.

 

파우스트 : 달리 제대로 된 예를 들 수는 없었던 건가.

 

아키라 : 아뇨, 정말 알기 쉬웠어요! 그럼 마력이 강한 거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네요.

 

스노우 : 그래, 그래. 기본적으로 토지의 정령은 토지의 마법사를 사랑하지. 태고의 신전을 되살리는 것은 그 토지의 마법사가 좋겠구나.

 

화이트 : 처음은 우리 북쪽 마법사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미스라네는 무례한 녀석들이지 않니. 백발백중으로 원시의 정령들이 화를 낼 게야.

 

스노우 : 힘으로 지지야 않겠지만, 힘으로 굴복시킨다고 해도 원시의 정령들은 안착하지 않고 금방 떠나버릴 테지.

 

아키라 : 돌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거죠.

 

샤일록 : 그렇네요.

 

아키라 : 모두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오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2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오즈가 말했다.

 

 

오즈 : 다음 <거대한 재앙>의 습격까지 젊은 마법사들을 키우지 않으면, 그들의 이름이 비석에 새겨질 거다.

 

 

주변이 잠잠해졌다. 오즈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심해처럼 깊고 차가운, 은하처럼 끝이 없는 온화한 시선으로.

 

 

오즈 :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 그들을 차가운 돌로 만들지 않아. 그들이 알 수 없는 위험한 길을 가려 할 때, 반드시 곁에서 손을 빌려주고 이끌어주겠다. 현자와 같이.

 

아키라 : …알겠습니다. 조금 무섭지만, 해보도록 하죠.

 

 

오즈는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다른 선생님 역할의 마법사들도 각오를 굳힌 듯이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파우스트 : 하기로 결정했으니 우선은 어디의 태고의 신전부터 되살릴지다.

 

샤일록 : 아까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이 말씀하신 대로 북쪽의 태고의 신전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디부터 되살릴까요?

 

아키라 : 그렇네요… 서쪽의 신전부터… 서쪽 마법사들이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샤일록 : 영광이네요.

 

아키라 : 서쪽의 마법사들은 클로에 이외에 무르도 샤일록도 라스티카도 경험이 풍부하고… 게다가 축제가 특기일 거라고 생각돼서. 성스러운 축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원시의 정령을 기쁘게 만드는 축제가 필요한 거죠? 그렇다면 우선 서쪽의 신전을 되살리고 싶어요. 샤일록, 부탁할 수 있을까요…?

 

샤일록 : 물론이죠. 목숨을 걸고 현자님의 기대에 응해 보이겠습니다.

 

아키라 : 다른 분들도 괜찮을까요?

 

피가로 :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서쪽 마법사들은 사교적이고 축제를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예의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샤일록 : 후후, 말씀대로예요. 당신처럼 무서운 분 앞에서는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만…

 

피가로 : 바로 그런 부분 말이야, 샤일록.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지? 바늘로 콕 찌르듯이. 너희는 일부러 맹수의 꼬리를 밟고 싶어 해. 내가 화를 내면 어쩔 생각이야?

두 눈을 가늘게 뜨는 피가로를 보며 샤일록은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샤일록 : 무서워하고 흥분할 거예요. 공포와 흥분을 즐기는 걸 좋아한답니다.

 

피가로 : 나쁜 아이들이네. 봐, 들었지? 현자님. 이래 보여도 샤일록은 서쪽에선 정상인 편이야.

 

화이트 : 문제는 무르로구나… 원시의 정령에게 사랑을 받을지, 원시의 정령을 격노하게 만들지.

 

스노우 : 만일을 위해 겸허하고 성실한 타입의 마법사들도 동행하는 편이 좋겠구나, 오즈.

 

 

오즈는 끄덕이며 파우스트를 돌아봤다.

 

 

오즈 : 파우스트.

 

파우스트 : 왜.

 

오즈 : 너희 동쪽의 마법사도 서쪽의 마법사와 동행해 지원해라.

 

파우스트 : 하?

 

무르 : 와아! 다 같이 서쪽으로 외출!

 

파우스트 : …어째서 서쪽 같은 곳에 가야 하는 거야…

 

시노 : 왜 서포트인 거야. 모처럼 공을 세울 기회인데…

 

클로에 : 시노와 히스도 같이 가서 다행이야! 들어본 적도 없는 의식을 한다고 말하니까 엄청 긴장했거든! 화려한 의상을 가방에 챙겨왔어! 이따가 입자!

 

히스클리프 : 으, 응. 고마워…

 

네로 : 겸허하고 성실한 마법사 말이지… 동쪽보다 중앙이나 남쪽 녀석들이 어울리지 않아…? 당신들 우리가 취향이야…?

 

샤일록 : 네. 경계심이 많고 진중하게 거리를 재는 부분이.

 

라스티카 : 성실하고 상냥하면서, 리퀘스트를 들어주는 부분이.

 

네로 : 별로 리퀘스트를 들어주지는…

 

라스티카 : 런치 바스켓에는 뭐가 들어있어? 연어와 아보카도 샌드위치가 들어있다면 기쁘겠는데.

 

네로 : 런치 바스켓? 그런 거 준비 안 했어. 말해줬으면 준비했을 텐데.

 

라스티카 : 그런가… 아쉽네.

 

네로 : 그게, 연어라고 했지? 잠깐만 기다리면 지금부터 키친에서…

 

히스클리프 : 네로, 리퀘스트 들어주고 있어.

 

네로 : 핫…

 

파우스트 : …서쪽 마법사들과는 상성이 나빠…

 

샤일록 : 동쪽 마법사와의 외출은 즐겁네요.

 

무르 : 즐거워! 즐거워! 시노, 서쪽을 안내해줄게! 동쪽의 셔우드의 숲을 안내해주는 것처럼!

 

시노 : 서쪽에도 넓은 숲이 있는 거야? 미아가 될 정도로?

 

무르 : 숲은 없어! 미아가 될 정도로 무성한 건 욕망! 서쪽은 욕망의 거리야!

 

시노 : 욕망의 거리…

 

샤일록 : 금욕적인 동쪽의 마법사에게는 친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를 포함해 서쪽에 사는 자들은 즐거운 일이나 매력적인 것, 자극적인 것을 매우 좋아한답니다. 특히 매력적인 타인에게 흥미가 많죠. 히스클리프처럼 아름다운 귀공자는 분명 주목받을 거예요.

 

시노 : 그렇대.

 

히스클리프 : 그… 그렇구나…

 

클로에 : 멋진 옷, 입고 가자!

 

라스티카 : 다들 대화하는 것도 좋아해. 소문, 연애사, 재산에 대한 이야기, 모험담. 거짓말이든 진짜든 가슴이 설레기만 하면 돼.

 

파우스트 : …그건 무책임(不実)하지 않은가.

 

라스티카 : 음악을 즐기는 것과 똑같아. 마음과 몸을 흔들고 싶어. 하루에 몇 번이라도. 환성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고, 안심하면서. 예를 들어 빙글빙글 도는 쥐처럼, 마음속에 여유가 없더라도 지루한 것보다 자극적인 것이 좋아.

 

 

라스티카의 이야기를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서쪽 마법사들의 특징은 인디비주얼리즘… 개인주의. 자유분방하고 향락적이며 즐거운 것을 좋아한다. 샤일록도 무르도 라스티카도 클로에도 각자의 가치관을 갖고 자신의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다.

아키라 : (서쪽 마법사들의 나라… 서쪽은 어떤 곳일까?)

 

 

 

3화

 

샤일록이 파이프를 물고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자 파이프의 장식된 나비가 희미한 빛을 띠며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팔랑팔랑 춤추면서 어둠을 밝히는 랜턴처럼 일곱 빛깔로 빛나는 인분으로 그의 손 주변을 밝게 비췄다. 샤일록이 오래된 지도를 펼치자 한 지점에서 나비가 멈췄다.

샤일록 :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의 말씀에 따르면 태고의 신전이 잠들어 있는 곳은 이쯤… 풍요의 거리에 있어요.

 

네로 : 풍요의 거리라면 서쪽의 수도인가.

 

샤일록 : 네. 서쪽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이죠. 원시의 정령은 인간의 기운을 싫어하니까 축제를 진행하기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해야 해요. 사람이 많은 이 토지에서 사람을 내쫓는 건, 조금 귀찮겠네요.

 

라스티카 : 이 나비가 멈춰있는 장소라면 가본 적이 있어.

 

클로에 : 정말?

 

라스티카 : 그래. 서쪽의 왕가가 소유하고 있는 천공 이궁이 있어. 지금 주인은 국왕 폐하의 사촌인 안토니오 님이 아니려나.

 

아키라 : 서쪽 국왕님의 사촌이요? 그럼 꽤 높으신 분…

 

라스티카 : 괜찮아요. 몇 년 전에 만났던 안토니오 님은 사랑스러운 4살 소년이었습니다. 마법사인 제게도 호의적이셨고요.

 

클로에 : 나랑 여행하기 전에 만났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10살 정도겠네. 귀여운 남자애라면 얘기하기 쉬울지도!

 

라스티카 : 아아. 마법을 보여줬더니 기뻐했었어. 나중에 커서 마법사가 되고 싶다면서.

 

클로에 : 그럼 안심이네! 어린 백작 안토니오 님에게 부탁해서 의식을 치르는 동안에는 이궁을 비워달라고 하자! 분명 잘 될 거야. 현자님!

 

아키라 : 그렇네요!

 

시노 : 여기가 천공 이궁인가?

 

저택 사람 : 아앗…! 마, 마법사가 창문에서…!!

 

히스클리프 : 죄,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서… 아… 도망가버렸어…

 

클로에 : 와아…! 엄청 호화로운 방…!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아키라 : 유럽 궁전 같아… 벽도 바닥도 천장까지 세공이 있어…

 

시노 : 멋진 성이네… 저 샹들리에만으로도 한밑천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갈 때 가지고 가도 돼?

 

네로 : 안 들키게 가져가라.

 

파우스트 : 당연히 안 되지. 네로, 너란 남자는…

 

네로 : 농담이라니까. 여기는 카지노 룸인 것 같네. 룰렛이나 카드를 가지고 다들 놀고 있어.

 

시노 : 카지노라니?

 

무르 : 갬블을 하는 곳! 나는 카지노 좋아!

 

히스클리프 : 그렇지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방문해도 괜찮은 걸까…? 국왕 전하의 혈연이신 분에게…

 

클로에 : 괜찮겠지! 라스티카의 지인이고 마법사를 좋아하는 남자애인걸!

 

네로 : 그런 것 치곤 별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다들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고.

 

샤일록 : 우선 주인에게 인사를 하도록 해요. 저쪽이 천공 이궁의 살롱인가 봐요. 가보죠.

살롱에 가자, 성대한 박수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클로에 : 무슨 파티 같네. 축하할 일이라도 있는 걸까…?

 

귀족 : 안토니오 님, 60살 생신 축하드립니다!

 

귀족 : 축하드립니다! 서쪽에 천년 영화를 가져오신 안토니오 님의 마나석 채굴장에도 축복을!

 

안토니오 : 하하하. 마법사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마법 과학의 시대야! 언젠가 서쪽이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겠지! 끝없는 우리의 영광에 건배!

 

귀족들 : 건배!

 

클로에 : …60살…?

 

라스티카 : 어라?

 

클로에 : 어라가 아니야…! 10살 안토니오 군이 아니잖아! 마법사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있어!

 

라스티카 : 미안, 미안. 오래 살다 보니 시간 감각이 둔해졌나 봐.

 

아키라 : 네!? 그렇다는 건, 즉…

라스티카가 웃으며 조금 곤란한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라스티카 : 아무래도 안토니오 백작은 노인이고, 마법사를 동경했던 일은 새까맣게 잊었나 봐요.

 

아키라 : 네에에!?

안색이 변해가는 내 주변에서 서쪽 마법사들은 매우 즐거운 듯 보였다.

무르 : 아하하! 완전 웃겨!!

 

샤일록 : 아아 이상해. 몇 년 전과 몇십 년 전을 헷갈리다니.

 

라스티카 : 아하하. 면목 없군.

 

클로에 : 우, 웃을 일이 아니지 않아!?

비교적 상식인인 클로에만이 파랗게 질렸다. 그때, 위병 몇 명이 달려왔다.

위병 : 있다! 침입자다!

 

 

 

4화

 

위병 : 수상한 마법사들을 붙잡아라!

 

네로 : 이봐, 어떻게 할 거야?

 

시노 : 내가 상대해 주겠어.

 

히스클리프 : 안 돼, 시노!

 

시노 : 왜.

 

히스클리프 : 여기가 서쪽 국왕님과 연이 있는 분의 궁전이고, 내가 동쪽 영주의 아들이니까!

 

시노 : 뭐가 안 되는데.

 

히스클리프 : 외교 문제가 되니까야! 동쪽 블랑셰 성에서 서쪽 병사들이 소동을 일으키면 어떨 것 같아?

 

시노 : 서쪽까지 날아가서 주인님의 성을 더럽힌 놈들의 목을 따와주겠어.

 

히스클리프 : 거봐, 그런 거야. 그러니까 여기는 원만하게…

 

파우스트 : 《サティルクナート•ムルクリード》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시노를 설득하고 있는 히스클리프의 등 뒤에서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웠다. 큰 거울이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 나타나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빛을 받은 위병들은 돌이 된 것처럼 굳어있었다.

귀부인 : 꺄아아아, 위병들이…!

거침없는 파우스트의 소행에 히스클리프는 망연하게 서 있었다.

히스클리프 : …서, 선생님…

 

파우스트 : 뭐야. 불만 있나. 나는 인간이 싫고, 위병은 더 싫고, 수상한 마법사라고 부르는 녀석들은 더더욱 싫다.

 

시노 : 좋아. 나도 응전해주지.

 

히스클리프 : 기다…

 

귀부인 : 꺄아아아, 대낫을 든 작은 아이가…!

 

네로 : 아아 이제 엉망진창이네…

 

아키라 : 어, 어쩌지…!? 제대로 이름을 말하고 사과하면 용서해줄까요!?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는 내 옆에서 무르가 공중을 빙글 돌았다.

무르 : 나라면 용서 안 할래!

 

아키라 : 그, 그런…

 

무르 : 그러니 할 거면 철저하게 해야지!

 

아키라 : …!

공중을 날던 무르가 반짝이는 샹들리에 위에 착지했다. 유리 장식이 흔들리는 섬세한 소리가 울리자 살롱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올려다봤다.

귀족 : …! 샹들리에 위에 사람이…!

술렁이는 살롱을 훑어본 무르는 고양이 같은 눈동자로 대담하게 웃었다. 손등을 입가로 가져와 반지에 키스했다.

무르 : 어중간한 혼란은 미움받지만… 압도적인 혼란은 사랑받는 법이지! 왜냐고? 쇼랑 똑같으니까!

 

귀족 : 아앗…!?

돌연 살롱의 불이 꺼지고 무르의 반지에서 눈부신 빛이 유성처럼 튀어나왔다. 반짝이는 빛은 빛나는 진주색의 꽃잎이 되어 살롱 안을 파도처럼 지나갔다. 귀부인들의 비명이 황홀한 감탄으로 바뀌어 갔다. 꽃잎의 파도에 안긴, 그녀들의 머리 장식과 목걸이와 반지에 진주색의 빛나는 꽃이 피어있었기에.

귀부인 : …어머, 멋져라! 예쁜 진주 꽃이!

 

귀족 : 대단하네! 이건 저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누구야?

신사도 숙녀도 설레하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에 흥분해 두근거리고 있었다. 샤일록이 알려준 그대로였다. 서쪽의 사람들은 매력적인 타인을 좋아한다.

 

 

아키라 : (우리 마법사들, 스타성으로는 지지 않으니까…)

 

 

무르를 태운 채 흔들리는 샹들리에 밑, 진주색 꽃잎이 춤추고, 새빨간 융단 위를 마법사들이 걸었다. 마법사들의 행진에 모두 그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샤일록이 파이프에서 천천히 연기를 피웠다. 황홀한 미소를 띤 미녀가 속삭였다.

귀부인 : 좋은 향기… 저 멋진 사람과 내 파이프를 교환한 뒤에 비밀의 장소에서 피워보고 싶어…

 

귀부인 : 저쪽의 귀공자는 어째서 빈 새장을 들고 있는 걸까? 비밀 이야기 같아서 멋있어. 시선도 상냥해.

 

귀부인 : 나는 저 아이가 좋아. 조금 긴장한 게 꼭 강아지 같아. 옷 센스도 좋구.

흥미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들을 받으며 서쪽 마법사들이 살롱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로 동쪽 마법사들이 따랐다. 파우스트는 불쾌한 듯이, 네로는 불편한 듯이, 시노는 뻔뻔하게, 히스클리프는 고개를 숙이면서. 그때, 나는 기묘한 것을 보았다. 실내에 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소녀였다.

 

 

소녀 : …

 

아키라 : ?

놀라서 다시 보자, 소녀는 젖지 않았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을 입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평범한 여자애였다.

 

 

아키라 : (뭐였지… 잘못 본 건가… 어라…? 클로에도 저 애를 보고 있어…)

 

클로에 : …집 없는 마녀…

 

 

아는 사이인가요? 라고 클로에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차분한 샤일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샤일록 : 처음 뵙겠습니다, 안토니오 님.

샤일록의 눈앞에는 금은보화로 치장한 늙은 귀족이 있었다. 그는 마치 품평하듯이 우리를 훑어보고 있었다.

아키라 : (이 사람이 안토니오 씨…)

5화

 

샤일록 : 처음 뵙겠습니다, 안토니오 님. 저는 서쪽의 마법사, 샤일록. 이쪽이 이계에서 오신 현자님과 현자님의 마법사들입니다.

안토니오 씨는 나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곤 시시하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안토니오 : 현자… <거대한 재앙>을 요격한다는 현자의 마법사인가.

 

아키라 : 네. 아키라라고 합니다.

안토니오 씨는 올렸던 눈썹을 내리고 바보 취급을 하듯이 코웃음 쳤다.

 

 

안토니오 : 이계에서 왔다고 들었다만,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거니와 현명해 보이지도 않아. 재미없는 생물이 아닌가.

 

동쪽의 마법사들 : 하?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동쪽의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불쾌함을 나타내며 공격적인 시선이 되었다.

 

 

아키라 : (동쪽 마법사들이 나를 위해서… 조금 기뻐…)

 

 

반면 서쪽 마법사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화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라스티카 : 현자님은 무척 아름답고 무척 현명하신 훌륭한 분입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안토니오 님.

 

안토니오 : 오랜만이라고? 나와 만난 적이 있나?

 

라스티카 : 네. 이 궁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제 마법과 쳄발로에 감격해주셨지요. 잊으셨나요?

 

안토니오 : 하찮은 일은 기억하지 않아.

 

라스티카 : 하찮은 일…

라스티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안토니오 : 흥. 그래서 무슨 일이냐.

 

아키라 : <거대한 재앙>이 가까워진 영향으로, 지금 이 세계 각지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변을 잠재우기 위해 성스러운 축제를 거행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 장소를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안토니오 : 천공 이궁을 빌린다고?

 

아키라 : 사람을 물려주셨으면 합니다. 원시의 정령들은 인간의 기운을 싫어해요. 태고의 신전을 되살리기 위해서…

 

안토니오 : 신전을 되살려? 이 천공 이궁에? …말도 안 되는 소릴! 우리는 마법사따위 믿지 않는다! 너희가 태만했던 탓에 <거대한 재앙>이 많은 피해를 줬지. 배상금을 청구하고 싶을 정도야!

 

아키라 : 그렇지만…

 

안토니오 : 마법사 따위를 의지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마법 과학 기술 장치의 힘이 있어. 원동력이 되는 마나석도 아주 많지. 너희가 지금 보여준 마법 따위, 마나석만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엄청난 일도 뭣도 아니야! 샹들리에에서 내려와라, 원숭이 흉내나 내는 광대놈!

안토니오 씨는 샹들리에를 가리켰다. 무르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르 : 원숭이 흉내? 우끼끼!?

 

안토니오 : 그 얼굴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은 그만둬라! 어차피 마법의 힘으로 변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우리 서쪽이 자랑하는 세기의 천재 무르를! 무르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다! 너는 진짜 무르가 아니야! 무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어!

 

 

원숭이를 흉내 내는 무르를 힐끔 쳐다본 샤일록이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샤일록 : 그렇게 생각하시는 기분 잘 알아요. 그래도 익숙해지면 귀엽답니다.

 

무르 : 우끼 우끼끼!?

 

샤일록 : 애교가 많죠.

 

무르 : 애교 있어! 끼끼!

 

안토니오 : 시끄러워, 나는 속지 않는다! 빨리 샹들리에에서 내려와!!

 

클로에 : 무, 무르! 이쪽, 이쪽으로 와!

클로에가 손짓하자 무르가 착지했다. 안토니오 씨는 한숨을 쉬며 하찮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안토니오 : 위대한 무르는 이제 죽었다… 그의 유령을 내 카지노 룸에서 봤지.

 

아키라 : …무르의 유령?

 

 

 

6화

 

안토니오 : 그렇다… <거대한 재앙>이 습격해왔던 때에. 전설에 따르면 무르는 도박을 사랑했다고 하지. 이 천궁 이궁의 카지노 룸을 영원히 지키라고 나에게 전해준 게 분명해. 위대한 발명가 무르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이 천공 이궁을 신전을 되살리게 놔둘 수 없다! 이 케케묵은 마법사놈들!

안토니오 씨의 매도에 이끌린 듯이 귀족들도 마법사들을 비웃었다.

귀족 : 정령에 신전이라고? 할머님도 안 믿으실 미신 같은 얘기네.

 

귀족 : 마법사는 과학보다 미신을 더 좋아하니까. 아름다운 외모로 부인들을 속여도 우리는 안 속아.

 

아키라 : 속이는 거 아니에요. 제대로 설명하게 해주세요. 지금도 이변으로 곤란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네로 : 그만둬, 현자씨.

 

아키라 : 네로…

 

네로 :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녀석들이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이 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짜증난 표정도, 쓸쓸한 표정도 짓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네로가 말했다. 등을 돌리는 그들을 따라서 동쪽의 마법사들도 살롱을 뒤로 했다. 안토니오 씨는 크게 웃으며 잔을 높게 들었다.

안토니오 : 빨리 나가거라! 그렇지만 아까의 요술은 꽤 괜찮았다! 다들, 마법사가 보여준 요술에 보수를 주도록 해!

 

귀족 : 아하하! 자, 은화야! 이거라도 받고 돌아가도록 해! 마법을 보여줘서 구걸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지!

 

귀부인 : 아아 아쉬워라. 벌써 돌아가는 거니…? 멋진 꽃 고마워, 마법사 씨. 또 마법을 보여주러 와!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살롱에서 멀어져가는 마법사들에게 은화가 날아왔다. 귀족들의 웃음에는 모멸감이 아니라 진짜 선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부채를 손에든 귀부인이 히스클리프에게 달려와, 커다란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그에게 쥐여줬다.

귀부인 : 당신은 달처럼 아름답고 멋져. 다음에는 당신의 마법을 보여줬으면 좋겠네. 이건 당신에게만 주는… 특별한 보수야.

 

히스클리프 : …

히스클리프는 말문이 막힌 듯 보였다. 달콤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눈빛에 친절과 호의밖에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녀의 발언에 화를 낸 것은 시노 쪽이었다.

시노 : 까불지 마. 이 녀석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동쪽의 대귀족, 블랑셰…

 

히스클리프 : 됐어, 시노.

히스클리프가 시노를 제지했다. 예쁜 눈을 내리깔고 말을 고른 후에, 귀부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가까운 거리에서 히스클리프의 시선을 받자 귀부인은 희미하게 볼을 붉혔다.

히스클리프 :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귀부인 : 어째서… 마음에 들지 않니? 아니면 사양하는 거야?

 

 

매달리는 귀부인에게 히스클리프는 슬픈듯한 미소를 지었다.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보석을 돌려줬다.

히스클리프 : …당신은 친절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우리의 기분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게 너무나도 슬프니까…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히스클리프는 가볍게 인사하며 그녀의 앞을 떠났다. 그녀는 계속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노 : 대귀족의 아들이라고 말해주지 그랬어. 그딴 보석 산더미만큼 갖고 있다고.

 

히스클리프 : 보석을 갖고 있으니 원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랐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서쪽은 조금 무섭네…

 

파우스트 : …서쪽은 풍요로운 나라다. 금화만 있으면 손에 넣지 못할 것은 없지. 하인과 악단들의 얼굴을 봐라.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지만 야위었어. 금화를 먹이로, 목줄에 묶여있는 동물들처럼 움직이고 있는 거겠지.

 

 

파우스트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귀족들은 즐거운 듯이 지내고 있지만 급사들은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롱은 우리를 잊은 듯이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가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아까 전에 봤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요술을 부리듯이 손끝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귀족들은 지루하다는 듯이 그녀가 보여주는 신비한 힘을 보고 있었다.

 

 

귀족 : 얘, 그건 이제 질렸다. 조금 전의 마법사들처럼 대규모의 마법은 못 쓰는 거냐?

 

소녀 : 죄… 죄송해요…

 

아키라 : (저 애도 마법사…?)

 

7화

클로에 : …저 여자애, 거품의 거리 출신일 거라고 생각해.

 

아키라 : 거품의 거리라니, 클로에가 태어난 곳…?

 

클로에 : 응… 서쪽의 빈민가야. 부모님의 가게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어. 마녀라는 소문이 있는 애였고 미움받았었어. 집에서 쫓겨나 길가에서 자고, 손끝에서 내는 불로 자신을 따뜻하게 하면서… 혼자서 자장가를 부르는, 집 없는 마녀라고 불렸어. 부모님이 화낼 때마다 말했어. 너도 똑같이 되고 싶냐고. 키워주니까 감사히 여기라고…

 

라스티카 : 클로에…

 

클로에 : …저 애가 이곳에 있다니… 힘이 약한 마법사가 귀족들에게 팔려서 구경거리가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게 진짜였구나…

 

시노 : …구경거리라고? 마법을 쓸 수 있으면서 왜 그런 프라이드도 없는 짓을 하는 거야.

 

클로에 : …나쁜 짓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클로에는 슬픈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클로에 : 마법사를 기분 나빠하니까 누구도 감싸주지 않아. 그럼 어쩔 수 없잖아? 마법을 써서 나쁜 짓도 할 수 있고, 마법사가 아닌 척을 해서 사람을 속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람과 같이 살고 싶으니까, 이런 방법밖에 선택할 수 없는 거야…

 

시노 : …

 

 

시노는 분한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마지못해 웃으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끝에 불을 밝혔다. 불면 꺼질 듯한 작은 불은 천장에서 빛나는 샹들리에의 빛보다도 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살롱을 나온 우리들은 밤하늘에 떠오르며 회의를 시작했다.

시노 : 최악.

 

네로 : 최악…

 

파우스트 : 최악이다.

 

히스클리프 :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할까…

 

시노 : 현자. 사람을 내쫓아야 하는 거지. 저 녀석들 전부 봉지에 담아 창문 밖으로 던져줄게. 이걸로 됐지?

 

파우스트 : 제대로 밑조사를 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다음부터는 제대로 신중하게 조사해서…

 

네로 : 이제 됐어… 오즈를 불러서 빨리 해치워달라고 하자. 저 살롱에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아.

회의라기보다는 불평대회였다. 동쪽 마법사들의 저주를 한가득 들은 후에 서쪽 마법사들이 밝게 웃었다.

무르 : 응응. 이해해 이해해.

 

샤일록 : 이제 기분이 좀 풀리셨어요?

 

라스티카 : 이제 즐거운 이야기를 하지 않겠어?

 

파우스트 : 제대로 듣긴 했어!?

 

시노 : 좀 더 화내라고!

 

 

샤일록이 파이프를 물고 연기를 내뱉었다. 요염한 눈빛으로 밝게 웃었다. 매력적인 그 웃음은 먹구름마저 개게 할 것 같았다.

 

 

샤일록 : 제대로 들었고 화나 있어요. 우리가 마음에 들어 하는 마법사들을 불쾌하게 만들었으니까.

 

히스클리프 : 마음에 들어 하는 마법사라니?

 

라스티카 : 너희 말이야.

 

 

동쪽의 마법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으로 미안한 듯이 라스티카가 속삭였다.

라스티카 : 모처럼 서쪽에 와줬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지 못했어.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 무척 아쉽고 슬퍼. 미안해.

 

 

동쪽의 마법사들은 잠시 침묵한 후 동시에 등을 돌렸다.

 

 

시노 : …별로 화 안 났어.

 

파우스트 : …너희가 나쁜 게 아니잖아.

 

히스클리프 : 이쪽이야말로 당신들의 고향인데, 죄송해요…

 

네로 : 뭐, 나도 말이 지나쳤어…

 

 

갑자기 기세가 꺾인 동쪽의 마법사들을, 서쪽의 마법사들이 가만히 지켜봤다. 종알거리는 고양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고양이 같았다.

 

 

아키라 : (재밌네, 서쪽의 마법사와 동쪽의 마법사… 서로 부딪치는 것 같으면서도…)

 

파우스트 : 게다가… 저 살롱에서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어.

 

아키라 : 묘한 기운?

 

파우스트 : 그래. 공간의 질서가 흐트러져서, 저곳에 있는 행운이 균형을 잃었다. 한쪽에 행운이 모이고, 한쪽으로부터 행운을 빼앗고 있어.

 

샤일록 : 저주상인 당신이 말하는 거라면 확실하겠죠. 저도 비틀림을 느꼈습니다. 서쪽 사람들이 향락을 좋아하긴 하지만… 귀족들은 멈출 줄 모르는 톱니바퀴처럼 사람의 마음을 잊고 욕망에 삼켜졌어요. 반대로 노동자들은 욕망을 잊고 있고. 본래라면 욕망에 부푼 발에는 갑갑한 신발을, 지친 발에는 맨발을 허락해, 인간의 마음은 균형을 잡아가죠. 그렇지만 쉬지도 않고 불만을 말하지도 않은 채 귀족들에게 은화를 구걸하는 고용인들은, 마치 파골타 같네요.

 

아키라 : 파골타…?

 

네로 : 먼 옛날에 멸종된 요정의 한 종류야. 거지인 척을 하면서 나타나 무언갈 베풀어주면 행운을 줘.

 

아키라 : 혹시 <거대한 재앙>이 가까워진 영향으로 옛 요정이 되살아난 걸까요…?

 

라스티카 : 있을 수 있는 이야기네요. 고용인들에게 되살아난 파골타가 씌인 걸지도 모르겠어요. 고용인들은 지쳐 피폐해지면서도 행운을 계속해서 주고, 행운을 너무 많이 받은 귀족들은 사람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돌아가려는 손님에게 은화를 던지다니, 품위가 없고 이상한 일이죠. 진짜 귀족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그렇지?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 말씀대로예요. 영민들이 있기에 영주가 있는 것이고, 손님이 있어야 파티니까요.

 

 

정말 그 말대로였다. 그 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려 상처를 받았지만 여러분 이상하시네요, 라고 말해도 될만한 상황이었다.

아키라 : 그럼 파골타를 토벌하면 귀족들도 고용인들도 제정신으로 돌아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줄까요?

 

샤일록 :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높아요. 오늘밤 천공 이궁에 몰래 들어가 파골타의 기운을 찾아볼까요?

 

파우스트 : 파골타가 천공 이궁에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우리는 고용인들의 숙소를 탐색해 보지. 저 살롱에는 별로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고.

 

네로 : 나도야. 그쪽은 당신들에게 맡길게. 조심해서 갔다 와. 특히… 재봉사 씨.

 

클로에 : 아… 나?

 

네로 : 평소의 활기참이 없잖아. 무리하지 마.

 

클로에 : 괜찮아! 고마워!

네로의 격려를 받은 클로에가 밝게 웃었다. 그렇지만 조금 무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키라 : (집 없는 마녀… 그녀에 대한 걸 신경 쓰고 있는 거겠지. 그 애도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8화

 

집 없는 마녀 : …겨우 정리가 끝났네… 아침부터 계속 일해서 피곤해… …내가 요령이 나쁜 게 문제겠지… …피아노다… 이 살롱에 오고 난 뒤로 노래를 전혀 부르지 못했어… …길 위에서 지내던 때는 혼자긴 했지만 내가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할 수 있어서 즐거웠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더 일해야지… 더 사람의 도움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녀인 나에게 가치는 없으니까…

 

안토니오 : …60살 생일이라… 오늘도 유쾌한 날이었지. 내일도 유쾌한 날이 될까… 더, 더 열기에 들뜨고 싶어. 다이스, 카드, 룰렛…! 부를 손에 넣어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고 싶어. 이 카지노 룸에서 그의 유령이 나온 순간부터 내게 패배란 없게 되었지… 크게 지더라도 금세 부가 손에 들어와. 카지노 룸을 수호하는 위대한 천재시여, 숫자와 확률과 도박을 사랑한 당신의 가호로 저를 더 즐겁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즐길 수 없어! 죽기 전에 삶의 기쁨을 맛보고 싶어! 더, 더…!

 

아키라 : …아무도 없게 됐네요…

 

클로에 : 그렇네… 안토니오 님, 혼자서 뭘했던 걸까.

 

샤일록 : …이건…

 

라스티카 : 뭔가 발견한 거야? 샤일록.

 

샤일록 : 카지노 테이블이 젖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시선을 주니 금방 말라버렸네요. 마치 숨어버리는 것처럼.

 

라스티카 : 요정의 기운이네. 파골타가 완전히 살아나지 못했나 봐. 그러니 운이 없는 사람들에게 씌어있는 상태인 걸지도 모르겠어.

 

아키라 : (젖은 테이블에 요정의 기운… 그럼 혹시 집 없는 마녀가 한순간 젖어 보였던 것도…)

 

 

그때, 아무도 없었을 터인 테이블에서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룰렛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테이블을 돌아봤다. 어디선가 은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클로에 : 뭐, 뭘까…

 

샤일록 : 파골타의 장난…? 아니, 이건… 그의… …!

 

 

갑자기 강한 바람이 일어났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트럼프 카드가 돌풍에 춤추며 살롱 안에 흩날렸다. 팔랑팔랑 어지럽게 날리는 킹과 퀸, 하트 에이스. 그건 어느샌가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치며 검은 인영을 감싸고 있었다. 인영이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트럼프 카드가 얌전히 그 손바닥에 모여 한 묶음이 되었다.

아키라 : …당신은…!?

 

??? : 어서 오세요, 현자님. 한밤중의 카지노 룸에.

이상한 바람이 사라지며 신사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받자, 수수께끼 같던 인영의 얼굴이 드러났다. 지적이고 영리한,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대담하고 오만한 신사적인 미소… 무르와 꼭 닮은 고양이 같은 눈동자…

 

 

아키라 : (무르…가 아니라! 실체화한 무르의 영혼의 조각…!? 그러고 보니 안토니오 씨가 무르의 유령을 봤다고 했었지… 그건 실체화한 무르의 영혼 조각이었던 거구나!)

그는 내 눈앞에 나타나서는 모자를 벗고 우아하게 인사해 보였다.

 

 

무르 : 저는 서쪽의 마법사 무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자님. 샤일록, 너도. 서쪽의 마법사들도.

 

 

그는 입 끝을 올려 웃었다. 그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에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9화

 

영혼의 조각의 무르는 스테이지를 걷는 기술사(奇術師)처럼 깔끔한 스텝을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무르에게 다가가 턱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검사했다.

무르 : 야아.

 

무르 : 야아!

 

무르 : 기분은 어때?

 

무르 : 달려들어 물고 싶어!

 

 

자유분방한 고양이처럼 무르는 조각난 무르의 손가락을 물었다.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물린 채로 샤일록을 돌아봤다.

 

 

무르 : 네 취향으로 키웠구나, 샤일록. 이건 나라기보다는 너야. 네 욕망 그 자체지.

샤일록은 눈썹을 찌푸렸다. 차갑게 영혼의 무르를 노려봤다.

 

 

샤일록 : 주제넘는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죠. 영혼이 부서진 무르에겐 애먹고 있어요.

 

무르 : 말 그대로야. 너는 나 때문에 곤란해지길 바라지. 너의 공포도 너의 자극도 나니까.

영혼 조각의 무르는 무르의 코를 꼬집었다. 숨쉬기 곤란해진 무르가 입을 연 틈에 손가락을 빼고, 그 대신에 트럼프 묶음을 처박았다.

 

 

무르 : 그거라도 물고 있어. 미안하지만 아직 먹히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아키라 : 하고 싶은 일…?

 

 

영혼 조각의 무르는 고양이처럼 웃고, 나를 향해 수중의 카드를 펼쳐 보여줬다.

무르 : 갬블에 열중하는 심리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곳은 관찰하기 알맞은 장소죠. 안토니오 님에게 파골타가 강한 운을 계속해서 주고 있고, 그는 저를 유령이라고 생각해 카지노 룸의 수호자라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키라 : 역시, 파골타라는 요정 때문에 이 살롱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해진 거네요.

 

무르 : 네. 행운이 계속돼도 불행이 계속돼도 마음은 마비되어 가니까요. 다들 언밸런스하고, 비정상입니다.

 

아키라 :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안토니오 씨를 원래대로 돌려놔야 사람과 마법사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채 사람들을 물릴 수가 있어요. 맞아… 안토니오 씨가 당신을 존경하고 있다면, 당신의 설득이라면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까요?

 

무르 :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협력할 수는 없습니다.

 

아키라 : 어째서…

 

무르 : 저는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니까. 죄송하지만 제 욕망은 파골타의 욕망보다도 강합니다.

 

샤일록 : 제 욕망은 당신의 욕망보다 강해요.

 

 

샤일록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영혼 조각의 무르는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자 눈을 크게 떴다. 빛나는 퍼플 사파이어 조각… 전에 본 적이 있는 무르의 영혼 조각이다.

 

 

샤일록 : 이걸 무르에게 먹이면 당신은 무르의 영혼의 일부로 돌아갈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좋아하는 관찰도 연구도 계속할 수 없겠네요.

 

 

샤일록의 목소리가 차갑게 퍼졌다. 영혼 조각의 무르는 신랄하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르 : 샤일록, 협박이라니, 품위도 깊이도 없는 짓은 너답지 않아. 이건 우리가 사랑하던 심리전이 아니야.

 

샤일록 : 무르, 입을 벌려요.

 

무르 : 아앙!

 

무르 : 못 해, 너는.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를 잃는 게 아니야. 나에게 경멸당하는 거지.

 

 

샤일록은 영혼 조각의 무르를 힐끗 한 번 보더니 웃었다.

 

 

샤일록 : 저는 서쪽의 마법사. 공포도 상실도 경멸도 즐겨 보이겠습니다. 안녕히, 무르.

 

 

영혼 조각의 무르가 어렴풋이 눈을 크게 떴다. 샤일록이 무르의 입안에 퍼플 사파이어 조각을 넣으려 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샤일록의 손목을 붙잡았다. 놀란 듯이 두 사람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키라 : 싸… 싸우길 바란 게 아니에요.

 

샤일록 : …

 

무르 : …

 

 

샤일록이 손을 내리고, 영혼 조각의 무르가 모자를 고쳐 썼다. 입가에 웃음을 가득 담고서.

 

 

무르 : 네가 마음에 들었어, 현자님. 어드바이스를 해주지. 파골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행운의 균형을 되찾아야 해. 행복한 자에게 불행을, 불행한 자에게 행복을.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행운과 불행은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 당연하다는 듯이 계속되는 행복도, 당연하다는 듯이 계속되는 불행도 없어. 행운을 빌어줄게, 현자님.

 

 

그렇게 말한 영혼 조각의 무르는 사라져 버렸다. 샤일록이 퍼플 사파이어 조각을 살며시 내 손에 쥐여줬다.

 

 

샤일록 :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현자님.

 

아키라 : 그렇지 않아요. 영혼 조각의 무르로부터 조언도 받았는걸요. 행운의 균형…

나는 카지노 룸을 둘러보고 모두에게 제안했다.

 

 

아키라 : 안토니오 씨를 카지노로 이기는 건 어떨까요?

 

무르 : 좋네! 내가 승부할게! 갬블 좋아!

 

샤일록 : 무르에게 맡기죠.

 

라스티카 :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는 건?

 

클로에 : 나… 그 아이… 집 없는 마녀와 얘기해볼게.

 

아키라 : 클로에…

 

클로에 : 나도 똑같았으니까… 마법사에 쓸모없는 나는, 나의 행복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고 싶어. 내가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 마법관에 오고 알게 된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아키라 :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한 번 살롱에 와요. 이번에는 정면으로.

 

 

 

10화

 

그리고 날이 밝았다.

무르 : 그럼 시작할까! 클로에, 언제라도 축제를 시작할 수 있도록 축제 의상을 입혀줘!

 

클로에 : 알겠어! 간다, 다들!

 

클로에 : 《スイスピシーボ•ヴォイティンゴーク》

 

시노 : 앗… 화려한 의상이네…

 

라스티카 : 무척 잘 어울려.

 

파우스트 : 그럼 우리는 축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천공 이궁 주변에서 마법진을 준비해 놓겠어. 사람들을 물리는 건 부탁하지.

 

샤일록 : 네. 잘 부탁드려요.

 

히스클리프 :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네로 : 조심해.

동쪽의 마법사들이 빗자루에 올라타며 변두리 방향으로 날아가려 했다. 떠나기 전에, 시노가 돌아봤다.

시노 : 즐겨라, 서쪽 마법사.

 

 

서쪽 마법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시노 : 즐거운 일이 좋잖아. 당신들에게 갑갑한 일은 어울리지 않아. 평소처럼 마음대로 하고 오라고. 그런 당신들이 좋으니까.

 

 

어느샌가 동쪽의 마법사도 서쪽의 마법사도 웃음을 띠고 있었다.

 

 

클로에 : 응! 우리답게 열심히 하고 올게!

 

무르 : 엉망진창으로!

 

샤일록 : 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라스티카 : 오후 한때에 홍자를 마시듯이 우아하게. 고마워, 시노. 모든 게 끝나면 다 같이 티파티를 하자.

 

무르 : 그 전에 귀찮은 쪽의 파티를 끝내 버리자! 자, 파티의 시작이다!

 

사용인 : 어서 오십시오, 초대장을 맡아드리겠습니다.

 

무르 : 네!

무르가 품에서 꺼낸 트럼프 카드가 사용인의 손에 건네지기 전에 훌륭한 초대장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초대장을 열어본 사용인이 상냥하게 웃었다. 우리는 바람처럼 스르륵 살롱 안으로 들어갔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눈이 밝은 위병들이 달려왔다.

 

 

위병 : 너희, 어제의…!

샤일록이 파이프를 피우자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를 마신 위병은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마법사. 인간들의 룰로 묶어 놓을 수 없다. 살롱의 악단이 화려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최고로 설레고 최고로 두근거리는 리듬이었다. 마치 쇼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이 밤도 들떠 흥분하고 있었다.

 

 

클로에 : …있다! 그 애야!

 

라스티카 : 그녀는 우리에게 맡겨줘. 무르, 샤일록, 도박 쪽은 맡길게.

 

샤일록 : 알겠습니다.

 

무르 : 현자님은 우리랑 같이 카지노 룸으로!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살롱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 없는 마녀 : 자… 자, 봐주세요. 손끝에서 양초처럼 빛이 나고 있어요.

 

클로에 : 잠깐 실례!

 

집 없는 마녀 : 앗…! 아… 의상 때문에 눈치 못 챘는데 당신들은 어제의 마법사…

 

라스티카 : 쉿. 그건 비밀이야. 네 행복을 알려줘. 같이 이루자.

 

집 없는 마녀 : 에…?

 

클로에 : 얘기가 너무 성급해, 라스티카! 그게, 이건 크게 보면 세계를 구하기 위한 거야. 네가 행복해 지면, 어떤 요정의 힘이 약해져서 이 살롱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렇게 되면 축제를 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변을 진정시킬 수 있어.

 

집 없는 마녀 : 내가 행복해지는 게 세계를 구하는 일…?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 진짜일 리 없어… 진짜라고 해도 나는 선택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클로에 : 어째서.

 

집 없는 마녀 : …그야 마법사고… 마법사인 주제에 약한 마법도 쓸 수 없어. 나보다 좋은 사람이나 곤란한 사람이 많이 있으니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행복을 잡는 건 내가 아니라, 좀 더 훌륭한… 다른 누군가가 선택받아야 하니까…

 

클로에 :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자신이 없어서, 내가 싫어서, 미안하다는 말만 했어. 그렇지만 라스티카가 알려줬어. 자신을 가지고 나를 좋아해도 된다고. 누구에게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행복을 양보하기보다, 내가 행복을 붙잡고 강해지는 편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걸!

 

집 없는 마녀 : …정말…?

11화

 

안토니오 : 뭐야! 또 너희냐!?

 

무르 : 야아, 안토니오 님! 생일 선물을 미처 못 전해줬다는 게 생각나서 말이야!

 

안토니오 : 생일 선물…?

 

무르 : 짜잔!

 

안토니오 : 오오…! 굉장해! 본 적 없는 크기의 마나석에 다이아, 루비… 이걸 준다면 어젯밤의 무례를 용서해줄 수도…

 

무르 : 진짜 선물은 그게 아니야. 나와 갬블을 하자. 이기면 더 좋은 걸 줄게!

 

샤일록 : 그렇지만 안토니오 님이 지셨을 땐 이 천공 이궁에서 의식을 치르게 해주세요.

 

무르 : 어때? 두근두근하지 않아?

 

안토니오 : …후후후… 좋다. 후회하지 마라. 요즘의 나는 패배를 모르니. 그렇지만 조건이 있어! 승부를 시작하기 전에 약속해라. 마법이나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고. 마법사는 약속을 어기면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지. 너희를 신용할 수 없으니까.

 

무르 : 좋아.

 

샤일록 : 무르…

 

무르 : 약속할게. 서쪽의 마법사 무르의 이름을 걸고. 마법이나 속임수는 일절 쓰지 않겠어.

 

안토니오 : 좋아! 이 게임 해주지.

 

클로에 : 자, 네 행복을 알려줘.

 

집 없는 마녀 : …내 행복… 뭘까…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클로에 : …파골타 때문에 바로 기억나지 않게 된 걸까…

 

집 없는 마녀 : 그게, 지시받은 걸 잘하게 되고, 화나게 만들지 않고, 미움받게 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이 되면…

 

라스티카 : 으응, 이렇게 하자. 눈을 감아줘.

 

집 없는 마녀 : 이… 이렇게…?

 

라스티카 : 너는 드넓은 초원에 있어.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주변에 아무도 없지. 거기서 뭘 하고 싶니?

 

집 없는 마녀 : …

 

라스티카 : 행복을 줄 상대가 없을 때, 너는 너 자신에게 어떤 근사한 행복을 주고 싶니?

 

집 없는 마녀 : …노래… 멋진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어… 슬픈 노래도, 나를 칭찬하는 노래도 아니고, 내… 내가…

 

클로에 : 네가 즐거워지는 노래!

 

집 없는 마녀 : 미… 미안해요… 뻔뻔한 얘기를 해서 부끄러워…

 

라스티카 : 뻔뻔하지 않아, 근사해.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지. 악단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빌리자.

 

집 없는 마녀 : 에…?

 

라스티카 : 나는 쳄발로 연주자야. 피아노 연주 또한 특기지. 조금 차이가 있지만.

 

클로에 : 라스티카라면 칠 수 있어! 내가 아는 한 세계 최고의 음악가인걸!

 

라스티카 : 고마워. 너도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재봉사야.

 

클로에 : 우리가 최고?

 

라스티카 : 최고지! 그녀에게 멋진 드레스를 준비해주렴.

 

안토니오 : 아하하! 내 승리구나! 보석은 받아 가겠다, 가짜 무르놈.

 

무르 : …

 

샤일록 : 파골타의 영항 때문에 남다른 강운을 얻었네요…

 

무르 : 한 판 더! 다음엔 이 반지를 걸래!

 

아키라 : 그, 그건 무르의 마도구…

 

안토니오 : 아하하! 좋지! 네가 몸에 지닌 것 전부 털어주마!

 

클로에 : 《スイスピシーボ•ヴォイティンゴーク》

 

집 없는 마녀 : 앗… 고급스럽고 멋진 검은 드레스…

 

클로에 : 생각했던 대로 잘 어울려! 다음은 예쁘게 화장하자! 어떻게 되고 싶어?

 

집 없는 마녀 : …그게…

 

클로에 : 사양하지 말고 말해! 공주님? 여신님? 여기사?

 

집 없는 마녀 : …서쪽의 마녀… 멋진, 서쪽의 마녀가 되고 싶어.

 

라스티카 : 이미 됐는걸. 너는 태어났을 때부터, 멋진 서쪽의 마녀야. 그럼 무르쪽은 어떠려나? 안토니오 님에게 이기고 있을까?

 

안토니오 : 아하하하! 아깝게 됐구나! 네 반지도 받아가마!

 

무르 : 젠장…!

 

아키라 : 위험하네요…

 

샤일록 : 마도구인 반지마저 넘어가다니…

 

안토니오 : 자 이제 걸게 없나? 없다면 여기서 나가줘야겠다!

 

무르 : …

 

샤일록 : …알겠습니다. 제 가게를 걸죠. 옛날부터 신주의 환락가에 있는 술집이에요.

 

무르 : 샤일록!?

 

안토니오 : 호오. 신주의 환락가는 일등지지. 좋다. 네 가게를 허물고 새로운 별장을 지어주마.

 

아키라 : 괜찮나요, 샤일록. 샤일록의 소중한 가게가…

 

샤일록 : 무르를 믿고 있으니까. …부탁해요, 무르.

 

무르 : 응!

 

 

 

12화

 

집 없는 마녀 : 매니큐어 예쁘다!

 

클로에 : 그치! 엄청 잘 어울려!

 

라스티카 : 정말 예뻐. 자 지금 태어난 가희. 너의 불꽃과 너의 노래로 세계를 바꾸자.

 

클로에 : 악단에게 부탁해서 스테이지 준비를 하자! 이쪽은 준비 끝났어! 뒤는 부탁할게, 무르!

 

안토니오 : 후후후…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이기게 될 거 같구나! 신주의 환락가에 있는 가게는 내 것이야.

 

무르 : 우우… 아직이야!

 

아키라 : 어쩌지… 이대로면 샤일록의 가게마저…

 

샤일록 : …

 

 

그때… 주머니에 넣어뒀던 퍼플 사파이어 조각이 희미하게 빛났다. 머릿속으로 직접, 신사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자님. 무르에게 영혼의 조각을 먹이도록 해.』

 

아키라 : (이 목소리는, 영혼 조각의 무르…?)

 

아키라 : …그렇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당신의 연구가…

 

샤일록 : …현자님? 누구와 얘기하고 계신가요?

 

『연구는 영혼이 원래대로 돌아간 뒤에 계속하도록 하지. 샤일록의 가게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거든. 잃으면 곤란하니까. 자, 영혼의 조각을 글라스에 넣고 무르에게 건네줘.』

나는 각오를 굳히고 글라스를 손에 들었다. 그 순간, 화려한 피아노 선율이 살롱 안에 울려 퍼졌다. 마음에 정렬의 불꽃을 밝히는 듯한, 용감하고 대담한 여성 보컬과 함께.

귀족 : 와아, 멋진 곡…!

 

귀족 : 춤춥시다! 가만히 듣고만 있기에는 아까워!

 

귀족 : 이렇게 즐거운 밤에!

심벌즈의 소리와 함께 영혼의 조각을 글라스에 떨어뜨렸다. 드럼롤의 리듬을 들으며 글라스를 무르에게 건넸다.

아키라 : 한 번에 다 마셔주세요.

 

무르 : 괜찮아, 이번에야말로…

카드에 열중한 채 무르는 단숨에 글라스를 비웠다. 경쾌한 피아노의 선율이 튀었다. 무르는 글라스를 떨어뜨렸다.

안토니오 : 뭐야. 질 것 같으니 손이 떨리는 건가.

 

샤일록 : …무르?

 

 

이상하다는 듯이 들여다본 샤일록이 한순간 숨을 삼켰다. 지적이고 영리한,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대담하고 오만한 신사적인 미소… 부채처럼 시원스럽게 카드를 늘어놓으면서 무르는 입 끝을 올렸다.

 

 

무르 : 승부는 지금부터야.

 

클로에 : 굉장해, 굉장해! 멋있어, 둘 다…!

 

귀부인 : 정말 근사한 노래야! 도박 같은 거보다도 더 두근거려!

 

귀족 : 자네들도 일하지 말고 이 노래를 즐기는 게 어떤가?

 

하인 : 괘, 괜찮을까요…?

 

귀족 : 물론이지! 근사한 것은 다 같이 즐기는 게 좋네! 자 한잔 받아.

 

하인 : 가… 감사합니다! 아아 이렇게 행복한 기분 잊고 있었어.

 

안토니오 : 젠장! 또 졌어…! 갑자기 이기기 시작하다니 이상해! 속임수지!

 

무르 : 마법도 속임수도 아니야. 확률의 계산과 암기력과 심리전이지. 갬블은 운이 아니야. 숫자는 철학과 같아.

 

 

안토니오 씨의 코인과 보석을 가까이 끌어당기며 무르는 다리를 높게 꼬았다.

 

 

무르 : 이걸로 내 반지도 내 보석도 되찾았어. 계속 승부를 할 건가?

 

안토니오 : 다… 당연하지!

 

무르 : 그렇다면 천공 이궁을 걸어줘야겠어.

 

안토니오 : 그… …좋다! 그 대신 나는 네 목숨을 받아주마!

 

무르 : 상관없어. 손이 떨리고 있네, 백작.

 

샤일록 : …현자님. 무르의 상태가 이상하지 않나요?

 

 

나에게 살짝 물어보는 샤일록에게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했다.

아키라 : 무르의 영혼의 조각을 먹였어요. 영혼 조각의 무르가 그렇게 해달라고.

 

샤일록 : 어째서…

 

아키라 : 샤일록의 가게가 사라지면 곤란하니까. 마음에 든다고도 말했어요.

 

 

샤일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젠 사라지고 없는 그림자를 찾기라도 하듯이 시선이 방황하다가 아래를 향했다. 이윽고 입가에 기쁜듯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샤일록 : 그런가요. 그럼 저도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행운의 균형을 되찾아가는 지금이라면, 파골타의 기운을 지울 수 있겠죠.

 

 

샤일록이 파이프를 물고 연기를 내뿜었다. 하얀 연기가 방황하는 영혼처럼 살롱을 떠다니며 인간들 사이로 퍼져갔다.

샤일록 : 《インヴィーベル》

샤일록이 주문을 외우자 안개 같은 연기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등에서 작고 검은 그림자가 몸부림치면서 벗겨졌다. 벗겨진 작고 검은 그림자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급스러운 융단을 흠뻑 적시며 검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이윽고 그 물웅덩이도 어딘가로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아키라 : (지금 게 파골타…?)

 

 

나는 눈을 깜빡이며 눈을 의심했다. 어쩐지 실내 채도가 밝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두 개의 목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종막의 팡파레처럼.

 

 

집 없는 마녀 : 여러분! 제 노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토니오 : 에잇, 젠장…! 내 패배다…!

 

 

안토니오 씨가 머리를 싸맸고, 손끝에 불을 밝히던 서쪽의 마녀가 악단 사람들과 즐거운 듯이 춤추고 있었다.

라스티카 : 파골타의 기운이 사라졌어!

 

클로에 : 해냈다!

 

샤일록 : 축하해요, 무르.

 

 

돌아보며 웃어준 무르는, 평소의 무르였다.

무르 : 이겼다! 기분 최고!!

나도 정말 똑같은 심정이었다.

 

 

아키라 : (기분 최고!!)

 

 

 

13화

 

안토니오 씨에게 천공 이궁의 살롱을 받는 대신 천공 이궁을 비워주기로 했다. 아무도 없게 된 살롱에서 서쪽과 동쪽 마법사들이 모여 태고의 신전을 부활시키기 위한 축제를 시작했다.

샤일록 : 그럼 시작하죠. 무슨 일이 생겼을 땐 잘 부탁드려요.

 

파우스트 : 그래.

샤일록이 눈을 감았다.

 

 

샤일록 : 《インヴィーベル》

 

아키라 : …!

세계에서 빛이 사라지고 배속이 무거워졌다. 느껴본 적 없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 덮쳐왔다. 몸이 조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길게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한, 작은 폭발이 계속 일어나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무서워져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깐, 갑자기 즐거워지고 간지러워져 크게 웃고 싶어졌다. 오싹오싹하게 만들다가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무언가의 기운이 가까워졌다.

아키라 : …!

눈을 떠보니 그곳은 신전이었다. 별과 달의 빛밖에 없는 고독한 신전이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이 들려왔다. 성스러운 축제의 음색이었다. 서쪽의 마법사들이 소리 높이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이 희미하게 빛을 띠기 시작했다.

 

 

무르 : 《エアニュー•ランブル》

 

라스티카 : 《アモレスト•ヴィエッセ》

 

클로에 : 《スイスピシーボ•ヴォイティンゴーク》

 

샤일록 : 《インヴィーベル》

 

 

어느샌가 나타난 동쪽의 마법사들도 서쪽의 마법사들을 지원하듯이 주문을 외웠다.

 

 

시노 : 《マッツァー•スディーパス》

 

히스클리프 : 《レプセヴァイヴルプ•スノス》

 

네로 : 《アドノディス•オムニス》

 

파우스트 : 《サティルクナート•ムルクリード》

그러자 별들의 빛보다도 눈부시게, 태고의 신전이 빛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빛의 기둥이 신전의 중앙에 우뚝 솟아났다. 마법사들을 감싸는 희미한 빛이 유성처럼 반짝이며 커다란 기둥으로 빨려들어 갔다. 눈부신 빛에 시야가 하얗게 변해갔다… 정신이 드니 우리는 원래의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아키라 : …돌아왔어…

 

클로에 : 하… 이걸로 성공…?

 

무르 : 성공! 원시의 정령들이 서쪽 태고의 신전에 정착했어!

 

라스티카 :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걸로 세계의 이변도 조금은 진정됐을까?

 

샤일록 : 네, 분명. 혼란한 세계도 조금씩 안정되어 가겠죠. 수고하셨습니다. 현자님. 동쪽의 마법사들도.

 

시노 : 나는 좀 더 활약하고 싶었어.

 

히스클리프 : 동쪽 태고의 신전을 되살릴 때를 위해 아껴둬. 그때는 의지할 테니까.

 

파우스트 : 이 뒤로 일을 더 해야만 하는 건가… 뭐어 됐어. 오늘 밤은 모처럼이니 서쪽의 술이라도 마시고 돌아가지.

 

네로 : 하하. 그렇게 서쪽에 대한 불평을 말해놓고선. 그래도 찬성이야. 이곳의 술은 맛있으니까.

 

샤일록 : 좋은 가게를 소개해드릴게요.

 

무르 : 그럼 내가 사줄게! 엄청 많이 벌었으니까!

 

클로에 : 정말이네! 금화가 이렇게 많이!

 

무르 : 안토니오 님, 라스티카를 생각해 냈어. 한동안 갬블은 그만두고 음악으로 마음을 위로하겠대.

 

라스티카 : 그거 좋네. 살롱의 악단은 멋지니까. 그녀도 분명 계속 노래할 수 있겠지.

 

샤일록 : 그럼 가볼까요. 성스러운 축제의 성공을 축하하러.

 

아키라 : 네!

 

 

이렇게 서쪽 태고의 신전을 되살리고, 무사히 성스러운 축제를 거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되살려야하는 태고의 신전은 아직 네 개나 남아있다. 그렇지만 오늘 밤은 큰일을 성공시킨 것에 대한 축하를 하도록 하자. 마법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