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세이시로와 켄타로의 생일

http://www.tarhs.com/bonustrack/ken_14.html

tarhs 홈페이지에 기고된 세이시로와 켄타로 S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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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걸어줘"

 

　과장없이 신성한 마음으로, 나는 마키하라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생일날보다, 크리스마스보다, 몸을 떨며 고대하던 날이 온다.

 

　내일, 형의 집에 자러 간다.

 

　몇 년 만의 비원을 이뤄, 미치도록 갖고 싶었던 것을, 24시간 독차지한다.

　꿈 같은 시간.

　아무래도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정말 형을 너무 좋아하지만, 뭔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형 넉다운 시켜버릴 것 같은 말을 해버린다.

　수다스러운 파이어드래곤처럼, 무심코 쓸데없는 불꽃을 흘리고, 뜻밖의 업화로 형을 큰 화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바랐다.

"절대, 절대로 싸우지 않도록 마법을 걸어줘. 방금 만든 가짜 주문이라도 좋으니까."

　마키하라 선생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흘렸다. 선생님은 눈치채고 있다. 나에게 무른 미하루도 아니고, 기적에 가까운 사키도 아니고, 선생님에게 소원을 빈 이유를.

　텟페이를 무척 좋아하던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새끼손가락을 세웠다.

"좋아. 자, 손가락걸기"

　기도를 담아서, 나는 새끼손가락을 감는다.

"미카게 군은 싸우지 않고 츠쿠이 군과 사이좋게 지냅니다. 새끼손가락 걸고. 비비디바비디부―"

　눈을 감고 기도하면서, 설렘으로 고동이 울렸다.

　발사한 미사일처럼 마음이 풀려간다. 선생님이 용서해준다면, 난 형을 좋아하기만 할 수 있다. 아아, 뭐 하지. 뭐든 할 수 있어.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다. 난 다 형이랑 하고 싶어. 미숙한 개라면 흘려버릴 정도로, 나는 흥분해 있었다.

　그날 밤은 잘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전철을 타고 도쿄로 향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했다. 오늘 형 집에 자러 가거든.

　"어머, 잘됐네"라고 모두 말해 주었지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제대로 모른다. 내가 장거리 여행을 자랑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예를 들면 말이야,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샐러리맨 아저씨의 신문을 내리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저씨는 겁먹은 듯 고개를 돌렸다.

"...텐동, 이려나."

"계속 참아왔던 텐동을 10년 만에 먹을 수 있다는 거. 그런 기분인 거야!"

"아아.... 좋은 날이겠구나."

　아저씨가 납득해주자,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최대한 말로 애써, 형이 얼마나 멋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착한지를 설명했다. 말하면서 내가 제일 설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어머나 세상에. 그렇게 좋은 형이랑 왜 10년이나 떨어져 있었던 거야?"

　눈썹을 내리고, 나는 외국인처럼 어깨 으쓱했다.

"그게 형의 유일한 결점이야"

"어머어머"

"이 얘기만 하면 싸움이 되니까 이제 안 할 거야. 싸우지 않기로 마음먹었어. 좋은 일만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엄마랑?"

"아니 선생님이랑"

　꿈꾸는 듯한 마음으로, 앞으로 만날 형을 상상했다. 착한 얼굴이나, 혼낼 때 얼굴. 방심하면 금방 10대인 형의 얼굴이 되어버렸지만, 열심히 지금의 형의 얼굴로 만들어간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아마, 좀, 너무 흥분했다.

　심장 소리가 커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형의 얼굴을 떠올리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된 걸까.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동경하는 대스타를 만나는 여자아이처럼,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런 일은 어렸을 때도 가끔 있었다.

　형이 너무 멋있다고 느꼈을 때나, 어디선가 외박을 하고 온 형이 돌아왔을 때. 왠지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내성적인 아이처럼 말을 잘 못하고 그늘에서 형을 들여다보곤 했다.

"곧 도쿄야. 형은 마중하러..."

"형 얘기는 하지마"

　정장을 입은 여자의 대사를 가로막고,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형을 떠올리면 얼굴이 빨개져버린다. 그런데, 머리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자꾸 형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 교복을 입은 형이, 주방에 숨어있는 나에게 호소하고 있다.

"푸딩 사왔어"

"나중에..."

"아, 부끄러워하고 있다"

　형은 쓴웃음을 머금고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다. 이상한 아이, 하고 엄마가 투덜거린다.

"아까까지, 아직 안 왔어, 아직 안 왔어 라고 보채더니"

　엄마에게 맞장구를 치면서, 형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그 얼굴과 손과 발을 바라보다가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분명 어린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이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가만히 숙인 형이 "착하게 지냈냐"며 나를 안아 올린다.

　슬픈 듯 기쁜 듯 이상한 마음이 가득 찼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다정함이었겠지.

　히라가나밖에 읽을 수 없는 머리라도, 다정함이 가슴을 조이는 감각은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너무 애달프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약속시간까지 앞으로 5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는 맹렬한 대쉬로 근처의 ATM 박스로 도망쳤다.

　나는 미하루에게 상담 전화를 했다.

"미하루, 긴장돼"

"긴장!? 세이쨩이!?"

　미하루는 고질라를 발견한 듯 소리를 질렀다.

"왜 긴장하는 거야"

"왠지... 형이 너무 멋있어서..."

　미하루는 "헉" 하고 웃은 뒤, 고양이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안심해. 금방 실망할 테니까"

　나는 렌지에게도 어드바이스를 구했다.

"아, 알아. 가족이랑 단둘이 있으면 떨리지. 화제도 저녁메뉴밖에 없고."

　아키히로는 위로해 주었다.

"츠쿠이 씨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덤벼들지 않으니까 괜찮아"

　하루토는 누구보다도 납득해 주었다.

"켄타로는 그런 면이 있지. 나도 가끔 설레. 좋겠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럴듯해질까아"

　사키는 부추겨왔다.

"여어, 세이시로. 사랑해. 오늘 밤은 재우지 않겠어."

　여러 가지 의견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자, ATM 박스의 문이 덜컥 열렸다. 당황해 얼떨떨한 내 눈에 형의 모습이 날아들었다.

　예고 없는 등장에 심장이 멎었다.

"이런 데 있지 마. 찾고있었어."

　그렇게 형이 말했다.

　난 머리가 새하얘졌다. 화악 피가 올라, 줄줄 이상한 땀을 흘렸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

　그 입이 움직인다.

"몇 번이나 전화 했어. 통화 중이었어."

　몹시 당황해 버린 나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형이 눈썹을 대고 핸드폰을 집어올린다.

　화면을 확인하고, 귀에 딱 갖다 대는 동작마저, 충격적인 영상으로 눈에 새겨졌다.

　너무 멋있어......

　알고 있었지만, 우리 형, 세계에서 제일 멋있어!

　위성을 빼앗아 세계 전달하고 싶은 마음과,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쭈그리고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머리 속에서 빙글빙글 돈다. 난 꽉꽉 찼다. 평소에 긴장을 안 하니까, 이럴 때, 굉장히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숨을 냉장고는 없다.

　잠자코 있는 나에게 형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부끄러워하는거냐?"

　간파당했다!

　아니야, 라고 말하려다가 입꼬리가 해질 뻔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상냥하게 웃으며 형이 살며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껴안는 건 이제 무리니까)

　그때와 같은 장면을 상상하며,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자, 예상 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냐, 너"

　퉁명스럽게 형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수치가 섞여 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겸연쩍은 듯이 턱을 당기고 있었다.

　형은 허둥지둥 눈을 돌려 박스의 문을 밀쳐 열었다. 그 목덜미 뒤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형도 쑥스러워하고있다)

　그렇게 자각했을 때 고동이 튕겨 나왔다.

　나의 부끄러움이 형에게 옮고, 형의 부끄러움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버렸다.

"형"

　나는 형의 등에 매달려서, 박스로 되돌아갔다. 행인 아저씨가 닫히는 문을 돌아본다.

　ATM 화면에 그려진 여자가, 정중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어이, 이 녀석"

"형, 형"

　여러가지 마음이 북받쳐 올랐지만, 전부 전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나 불렀다.

　팔에 꽉 힘을 주고 형의 존재를 확인한다.

　겨우 되찾은 보물을 나는 곱씹고 있었다. 이제 형은 나를 안을 수 없으니까, 내가 손을 뻗어야 해. 예를 들면 이렇게.

　볼을 누르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형 냄새 났다. 난 아주 안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새삼 깨달았다.

　이러고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고.

"밖이다만... 몇 살인거냐"

　뒤돌아보지 않은 채, 형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 목소리에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었다.

　수줍어하면서 나는 뺨을 들이댔다.

"착하게 지냈어. 형한테 안부 전해달래."

"누가?"

"도쿄역 역무원. 형이 보고 싶다고 하더라"

　착잡한 얼굴로 형이 나를 떼어놓았다. 한 팔로 박스 문을 밀어 연다.

"잘 모르는 놈한테 내 얘기 하지 마"

"왜? 난 형 얘기하는 게 좋아"

　ATM에서 나오자 바람이 세졌었다. 형의 오토바이 뒤에 타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형은 걸어서 역까지 온 것 같다.

　나란히 걸으면서 형의 아파트에 갔다. 나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저녁은 스키야키였고, 디저트는 멜론이었다.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메뉴다. 형 나름대로 나를 반겨주려고 해준 거겠지.

　호화로운 식사는 즐겁지만, 약간은 서먹서먹하다. 가족의 특별한 날 같기도 하지만, 손님 접대 같기도 하다.

　하지만 먹기 시작하자, 고기가 맛있어서 쓸데없는 것은 잊어버렸다.

"맛있네"

"응"

　고기를 먹으면서, 형은 당연한 듯이, 맥주 뚜껑을 열었다. 난 뚫어져라 쳐다보고 말았다.

　당황하면서도 아버지에게 하던 일이 생각나, 캔에 손을 뻗었다.

"부어줄게"

"하?"

　이번에는 형이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어. 마키하라가 시켜?"

"무슨 소리야? 아빠한테도 했잖아"

"그래?"

"맥주, 언제부터 마시게 됐어?"

"18"

"응? 술은 스무 살부터 아니었나?'

"법적으로는"

"형 쑥갓 치워줘"

"먹어"

"표고버섯 먹고 싶어"

"안 들어갔어"

"왜?"

"맛없으니까"

　밥을 다 먹고 나서, 형은 일어서서 접시를 치웠다. 물론 나도 도와줬다. 옛날보다 도움이 돼서, 난 득의양양한 얼굴이었다.

"고기, 너무 많이 샀네"

"너무 배불러! 그래도 멜론 먹을래"

"벌써 먹는 거냐"

"응!"

"잘 먹네. 알았어 잘라줄게"

"도와줄까?"

"됐어, 앉아있어"

　좁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형은 환풍기를 켰다. 담배를 피우며 접시를 치워나간다.

　형의 등을 바라보면서, 나는 옛적에 형이 하고 있던 앞치마 색깔이 갑자기 생각났다. 베이지색과 빨간색 줄무늬였다. 형의 발밑에서 이야기할 때, 나는 그 무늬로 사다리 타기를 하고 있었다.

"형 몇 번이 좋아?"

"몇 번까지 있어?"

"으으음, 1, 2, 3, 4… 8번"

"그럼 3번"

"딴딴딴딴딴...'대박, 일등상! 하와이 여행 당첨입니다!"

　부엌에서 불을 안 쓸 때는 형 발 밑에 있어도 됐다. 불 쓸 때 장난치면 형이 엄청 혼냈다. 그래서 부엌 밖에서, 나는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 형, 들어봐, 들어봐!"

　주방대가 얼추 깨끗해지자 형은 도마 위에 멜론을 올려놓았다.

 

"뭐야"

　멜론에 칼을 댄 채, 형이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뒤에서 목덜미에 팔을 감았기 때문이다.

　가볍게 무릎을 굽혀보았다.

"이제 못 매달려?"

"하지 마. 허리 빠져"

"지금은 내가 더 키가 크니깐―"

"장난치지 마"

　식칼을 움켜쥔 채, 형이 험악한 소리를 냈다. 깜짝 놀라서 나는 뒤로 물러난다

"장난치는 거 아니고. 비교하는 느낌, 내가 크지 않아?

"바보같은 소리. 그 기둥에 등을 대봐"

　칼로 협박을 당하면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형은 신중한 손놀림으로, 내 머리 부근에 선을 긋는다. 장소를 교환해서, 이번에는 내가 형의 키를 쟀다.

"아―...... 형이 좀 더 위야?"

"이것 봐라"

　형은 우쭐해져서 펜을 케이스에 던져 넣었다. 휘파람을 섞어가며 멜론을 새겨나가다.

　그래도 역시 저 등에 매달릴 수는 없겠지. 옛날처럼 힘차게 달려들면 형은 몸이 반대로 꺾여버린다.

　어부바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형의 종아리를 사다리 삼아 애슬레틱 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했던 회전바퀴도, 목마도.

"어이 무리라고"

　어느새, 나는 또, 형에게 팔을 두르고 있었다. 자른 멜론을 늘어놓으면서 형이 쓴웃음을 짓는다.

"늘 그랬었지. 부엌에 서 있으면 뒤에서 장난치고..."

"마지막에는, 형의 도움 없이도 형한테 올라갈 수 있었어. 기억나?"

"아, 잘랐어, 비켜"

　접시를 든 형이 돌아본다. 내가 비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이서 마주보는 느낌이 되었다.

"비키라니까"

"형... "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어리광 부린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멜론의 달콤한 냄새가 그립다.

　멜론을 그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형을 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덤벼드는 게 아니라 살짝 정면으로 껴안자 형은 기억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늘었다.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이런이런 하고 형이 숨을 내쉰다. 멜론을 얹은 접시의 가장자리로 달래듯 토닥토닥 나의 등을 두드렸다.

"덩치가 커도 어리광쟁이네. 앉아."

"나 어리광쟁이였어?"

"때때로. 자, 세이시로."

"옛날 형은, 지금 나보다 동생이었는데도 착했네."

　무심코 중얼거렸다.

"나, 미움받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시야가 바뀌어서 나는 눈을 돌렸다.

　형이 난폭하게 접시를 내려놓고 내 두 팔을 잡고 있어. 숨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형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누가 했어, 그런 말"

"아니야? 엄마도 아빠도, 나한테 애먹었다고 했어"

"그건 싫은 게 아니야"

"딱히 상관없어. 형은 날 좋아했잖아? 난 형이 있었으면 됐었고"

　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웃으면서 나는 형을 끌어당겨 데굴데굴 따라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엄마 아빠도 형을 제일 좋아했어. 그래도 형은 나를 제일 좋아해줬어. 그렇지?"

"세이시로, 그건 아냐.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아빠도 다 너를 좋아했어. 나보다 너를......"

"난 둘 다 싫어. 왜냐면, 형을 울렸었고, 우리를 조각내기도 했고."

　형은 할 말을 잃고 어딘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큰일났을지도? 나는 움찔하고 당황해서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안 싸우겠다고 선생님이랑 약속했었지.

"멜론 먹자, 형"

　형의 손을 잡아끌며, 나는 부엌에서 데리고 나왔다.

"멜론 맛있다. 한 조각 더 먹으면 안 돼?"

"그래"

"시무라먹기^[각주:1] 해도 돼?"

"그래"

"엄청 빠르니까 봐봐!"

"더러우니까 하지마"

　멜론을 자르고 나서, 형은 멍해져 버렸다. 형은 엄마나 아빠에 대핸 그닥 잘 다루지 못한다. 화제로 삼은 것은 위험했다.

"목욕 하고 와"

"같이 들어가자"

"안 해. 좁아서 못 들어가"

"그럼, 버터플라이맥스 할 테니까, 그때만 보러 와"

"뭐야, 그 기술"

　드디어 형이 웃었다.

　저녁, 식사, 수면과, 공장처럼, 형은 나에게 작업을 시킨다. 모든 게 다 재밌었지만, 뭔가 허전했다. 진짜 중요한 것을 얘기 하지 않고, 진짜 중요한 것을 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방학이랑 똑같다.

　불꽃놀이, 축제, 수영장, 강놀이. 즐거운 일을 많이 했어도, 기억에 남는 추억은, 누구와 얼마나 소중한 일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 비오는 날의 버스 정류장의 경치마저, 우리는 평생 기억할 수 있다.

　오늘 밤도 그런 날로 만들고 싶었다.

　스키야키도 멜론도 평생 추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다음에 생각난 형의 얼굴이 20대의 얼굴이 될 수 있도록.

"형, 형"

"응?"

"나한테 질문 좀 해줘. 항상 내가 물어보기만 하니까, 가끔은 형이 나에 대해 물어봐줘."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며 형은 턱을 괴었다.

"너에 대해서라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왜?"

"여러 가지 정보망이 있어서 말이야"

"스파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스파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 잔뜩."

"헤에"

"저기, 들어 봐, 들어 봐!"

　주의를 돌리려고 컴퓨터 덮개를 닫자 형의 손가락이 끼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본다.

"신경쓰이는 여자애는"

"없어. 다른 질문은?"

"옛날 이야기도 괜찮아. 누구 없었어?"

"없어"

"...첫사랑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좋았어"

"좀 더 자아가 있는 연애 얘기를 좀 해. 인기가 없을 리 없잖아, 내 동생인데."

"인기 없어"

　난 점점 기분이 안 좋아졌다.

"난 여자가 싫고, 여자도 날 싫어해"

"그래?"

　형은 충격을 받았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오빠는 갑자기 자세를 고쳤다.

"거기 앉아"

"앉았어"

"정좌다"

"에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정좌했다. 노골적으로 지루해 보이는 나에 비해, 형은 오늘 처음으로, 기분좋게 말을 꺼낸다.

"친구는 많겠지. 여자인 친구는 있잖아."

"있지"

"그중에 좋아하는 놈은 없는 거냐"

"다 좋아해"

"뭐야, 헷갈려. 여자는 싫어 한다니까."

"친구가 아닌 여자애는 별로 안 좋아해"

"그건 다 똑같아. 취향이 있지. 마음이 맞는다든가, 시간이 맞는다든가, 몸이 맞는다든가"

　나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만들어"

　불쾌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싫은데"

"왜. 너랑 비슷한 나이인 녀석들은 모두 여자친구를 원하잖아. 사키에게 소개…… 하루토에게 소개받아. 그 녀석은 기꺼이 협조하겠지."

"하루토랑 함께 여자를 만나는 건 싫지 않아. 하지만 그건 여자 앞에 있는 하루토가 재밌는 거지, 여자 자체는 재미없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여자를 찾아. 그리고 특별한 상대를 찾으면 돼."

　조금 전까지의 우울한 얼굴은 어디론가 형은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여자에 관한 일이라면 어드바이스 할 수 있어. 너한테 뭘 해줘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야 답이 보이네."

"잘못 본 거 아니야?"

　내 시무룩한 얼굴을 무시하고, 형은 싱글벙글 팔짱을 꼈다.

"그저 그래. 시험 삼아 낚아 봐."

"낚아보라니?"

"취향의 여자를"

"형도 누군가를 낚았어?"

"뭐 그렇지."

"그래서 지금은? 누가 낚였어?"

"지금은..."

"안 걸렸구나. 다 놓쳐버렸네. 그럼 처음부터 쓸데없는 짓 안 해도 되잖아."

"기다려"

"저기 저기, 다른 질문은?"

"기다려. 얘기 안 끝났어"

　형의 집요함에 나는 탁자를 탁탁 두드렸다.

"이 얘기 재미없어"

"왜 재미없어. 남자들끼리 모이면 이런 얘기말고는 할 말이 없잖아."

"여자 얘기를 할 바에는 형 얘기를 해줘!"

"진지하게 대답해. 너 여자는 안 믿는 거냐? 엄마나 이복동생이랑 무슨..."

"몰라! 나는 여자애랑 있는 것보다 형이랑 있는 게 좋고, 여자애 얘기하는 것보다 형 얘기를 하는 게 더 좋아! 왜인지 말하자면, 여자는 길을 걸으면 여러 명 만날 수 있지만, 형은 10년 동안 못 만났으니까!"

　한쪽 무릎을 세우고, 나는 기염을 토했다.

　말문이 막힌 형을 내려다보며, 옷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여자애보다, 장난감 같은 것보다, 난 형을 갖고 싶었어. 형의 편지를 받고 싶었어. 겨우 참지 않고 배불리 텐동을 먹을 수 있게 됐을 때에, 왜 피망 고기말이를 권유받아야 하는 거야."

"텐동...?"

"너무해, 당신은 항상... 아아, 싸우지 않겠다고 선생님한테 약속했는데 깨뜨렸어."

　피해망상적인 말투였지만, 형은 표정을 고쳐 주었다. 울음을 터뜨릴 뻔한 내 손을, 살며시 잡아 빼게 했다.

"알았어. 잘못했어. 이 얘기는 다음에 하자."

"난 여자보다 형을 더 좋아해....."

"급하게 결론 내지마. 조금만 더 침착해지면, 너도 알 거야."

"난 변하지 않아"

"그 정도는 변해도 좋아. 기사처럼 한결같이 나에게 충성할 필요는 없어. 나보다 특별한 사람이 생겼다고 해서, 경박한 건 아니야. 소중한 건 성장하면서 변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야."

　흐뭇한 듯 형은 볼을 풀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네, 라고 생각하면서,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다.

　10여 년 동안 형이 부족했다. 만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여 년이 걸린다. 다른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건지.

"...저기, 형. 스키야키도 멜론도 맛있었어. 하지만, 음식만 그런게 아니라, 형이 더 잘 대접해줘. 진수성찬이라고 할까, 포상이라고 할까, 특별한 것 말이야. 오늘은 그런 날 아니야?"

"특별한 날이 됐지. 처음으로 너랑 여자 얘기를 했어. 새삼스럽게, 많이 자랐후하…"

　의기양양한 얼굴의 뺨을 나는 잡아당겼다.

"...뭐야!"

"당신, 정말 모르는 거야. 모른 척하는 거야."

　귀찮은 듯이 형은 담배를 물었다. 드디어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뭐가 특별이야. 목마는 무리야."

"그런 건 보면 알고. 뭔가 추억 같은 게 좋아!"

"저 고기 말이지. 분발했어."

"고기는 맛있었지만! 그게 아니라..."

　이제 정좌 그만하면 안 돼?하고 나는 물었다.

　허락을 받고 다리를 허무는 김에 형한테 손을 뻗는다.

　팔을 돌려 매달렸다. 담배를 피우면서 형이 뒤로 손을 짚었다.

"무겁다"

"마법을 걸어줘"

　형의 몸에 달라붙으면서,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렸을 때, 몇번이나…… 형이 뭐라고 말하거나, 뭔가 할 때 마법이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반짝거리고, 설레고, 엄청난 느낌"

"…………"

"저런 식으로 행동 하고"

　내 팔 안에서 형은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담배를 재떨이에 놓고 살며시 멀리했다.

　가볍게 몸을 숙이고 자세를 가다듬고 나서 형은 내 등에 팔을 둘렀다.

　어린 시절, 안아올렸을 때와 같은, 온기가 나를 감싼다.

　형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 세계는 빛나고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

　손바닥을 등에 쓸어내리면서 형이 웃었다.

"놀러와줘서, 기뻤어"

　두서없는 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서, 나는 형의 어깨로 닦았다. 꽉 매달리면서, 애틋한 호흡을 떨었다.

　가슴을 조이는 그 감각―― 다정함이 마음에 넘쳐 흐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을 놓지 않을 자신이 있다.

　여기에 낚인 채, 나만은 어디로도 떨어지지 않는다.

　드디어... 드디어 잡았다.

 

"뭐야, 너. 특별하다든지 까다로운 말을 하고선..."

　몇 번이나 내 등을 쓰다듬으면서 형이 조용히 웃었다.

"응석부리고 싶었을 뿐이잖아"

"...읏 왜냐하면, 왜냐하면..."

　형의 옷에 주름을 잡더니, 확인하듯 다시 잡았다.

　옛날에는 이 몸이 내 정글짐이었다. 발을 사다리로, 팔을 철봉 삼아 질리지 않고 놀았다.

　하지만, 비슷한 정도의 키가 된 지금, 어떻게 응석을 부려야 좋을지, 잘 몰랐다.

"울지 마. 남자가 훌쩍훌쩍하면 이상해"

　형의 손이 꾹꾹 내 눈물을 닦는다. 그 손놀림도 옛날 그대로, 나를 응석부리게 한다.

　고맙다고 해줘서 기뻤다.

　기뻤다는 말을 듣고, 진심으로 안심했다.

　어딘가 불안했다. 형도 나한테 신경 쓰기 싫은 게 아닌지.

　여기 있는 걸 허락받아서 정말 다행이다.

"내일, 오토바이 태워줄게"

"응..."

　유령동에 아무도 모르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형이 속삭인다.

　이 목소리는 옛날부터, 나만의 것이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것은 있었다.

"좋은 데 데려가 줄게"

 

"응..."

"울 일은 아니지?"

"응..."

"그치?"

"응..."

　무의식적으로 몸을 흔들면서, 툭툭 형이 내 등을 두드린다. 그 리듬이 기분 좋다.

　행복한 마법을 받은 것처럼, 몸이 후끈후끈 따뜻해져 간다.

　그때랑 똑같이.

　형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 세계는 빛나고 있었다.

 

 

 

2014.01.29 기획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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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youtu.be/Uf93wCuwyho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