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April 1st is

http://www.tarhs.com/bonustrack/voss.html
http://www.tarhs.com/b_mihab/b_miha1.html
홈페이지에 공개된 생일 연작 SS 중 2편인 미하루의 생일 겸 콤비 투표결과 SS입니다. 네버지스타 단편집 1권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https://booth.pm/ja/items/1268
ㄴ단편집 booth 판매링크

※본편 ED28부터 이어지는 형태의, 올클리어를 전제로 한 스포일러를 아주 많이 포함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아직 플레이중 혹은 하지 않으신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미하루와 카야가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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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아래 맛키의 손에서 바람개비가 돌고 있었다.

유령동 바깥 수도에서 신발을 닦고 있던 나는, 손을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앞머리가 이마에 콕콕 찔려서, 손등으로 긁었다. 손가락 끝은 거품투성이였다.

"어떻게 된거야, 그거"

바깥 수도꼭지 부근에, 바람개비를 고무줄로 세우려고 하면서, 맛키는 말했다.

"잡지 부록에 붙어있길래 만들었어"

"헉, 대단하네! 맛키가 만든 거야?"

감격스러운 목소리를 내자 맛키는 기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덩달아 뺨을 느슨히 하면서 나는 수세미로 운동화를 문질렀다. 진흙이 떨어지자 희끗희끗한 본래 색이 보여 상쾌했다.

"바람개비, 옛날에 다같이 사왔었어. 카야씨랑 막과자 가게에 가서."

"카야군이랑? 희한하네"

맛키는 몸을 굽혀, 내 머리카락에서 거품을 닦았다. 들여다보는 얼굴이 가까워서 부끄럽다.

아래를 향하자, 다시 앞머리가 따끔거려서, 손등으로 쓱쓱 이마를 긁었다. 1년 전의 봄을 떠올리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 다 내 잘못이지만"

"또 비굴한 소리를 하네"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 그날만큼은 진짜야. 카야씨가 길을 잃어서."

"이마 간지러워?"

"에?"

"긁어줄까?"

"돼, 됐어......"

얼굴이 빨개진 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었다. 손가락 끝에 묻은 거품이 이마에 묻는다.

새하얗게 되어가는 구두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작년의 생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교회에 버려진 건 12월

내 이름이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가 같이 있었다.

아기를 본 교회 목사님은 동네 병원으로 데려갔다.

8개월 정도 아닐까요, 의사가 말했다.

그래서 목사님은 시간을 빙 돌려, 내 생일을 4월 1일로 정했다.






4월 1일이 생일이라는 건 어렵다

생일 축하는, 거짓말일 수도 있으니까.






4월 1일 아침에 핸드폰을 들고 삿쨩이 식당에 내려왔다.

"미하루, 아키히로가...... 아, 생일 축하해"

"아, 고마워"

아침을 먹으면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생각난 듯, 부엌 쪽에서 렌렌 목소리가 날아온다.

"맞다, 축하해"

생일 축하는 삼일 후에 카야씨랑 같이 받기로 했다.

사무적인 인사는 오히려 쑥스러웠다.

나는 익살스럽게 테이블 위에서 무릎을 꿇는 제스처를 하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여러분을 따라잡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맨 위잖아"

"맨 밑이야. 4월 1일까지는, 왠지 위에 학급이거든."

"그래?!"

엉뚱한 정책을 들은 정치기자처럼, 삿쨩이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랐다기보다는 비난하는 눈치였다.참으로 유감스럽다는 느낌이다.

"뭐야, 전에도 말했을텐데"

"형같으니까"

"예전에도 말했어"

"잊었어"

"너랑 세이시로는 막내 같은 느낌이고"

"나는 맏형. 진짜 막내는 이쪽"

핸드폰을 건네받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아키히로 길을 잃었대"

낫토밥을 먹으면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카야씨는 런닝을 하러 나섰을 것이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여느 때 같으면 벌써 돌아올 시간이었다.

"하루토가 안 나오길래, 나한테 달려왔구나"

쉬는 날에 하루땅이 이 시간에 깨어있을 리가 없다.

"미하루가 근처에 대해 더 잘 알잖아"

"세이쨩도 잘 알잖아"

"세이시로는 없어"

"어디 갔어?"

"몰라. 준비하는 거 아닐까"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라고 삿쨩은 덧붙였다.

마지못해 휴대폰을 잡으려고 하자 '낫토 닦아' 라며 행주를 건넸다.

손끝을 닦고 나는 핸드폰을 귀에 댔다. 소리를 냈을 때, 긴장됐다.

'여, 여보세요?"

[너구나]

노골적으로 언짢은 목소리다.

뱃속의 낫토가 조약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웃었고 스스로 자신의 텐션을 올렸다.

"으―음, 으―음, 지금 현재 어디에 계신가요?"

[모르겠어. 쌀가게가 있어.]

"무슨 쌀집이야?"

[사와구치 미곡점]

"모르겠네……. 또 다른 건?"

[밭]

"다른 건?"

[길]

왜 이 사람은 미아인 주제에 잘난 척을 하는 걸까.

질려하면서, 상냥하게 질문을 계속했다.

"혹시말이야, 전봇대 없어? 전봇대에 주소 써 있을 텐데"

[조금 앞에 있어. 가보는 게 나을까?]

"수고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만."

[알았어]

카야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나는 침묵했다.

내 밥을 먹으면서, 옆에서 삿쨩이 참견한다.

"평소 가던 코스 바꿨어? 미아라니"

"잠, 너…… 미트볼 먹지 마!"

"내 거 세 개밖에 없었어"

"나도 세 개 밖에…… 렌렌, 미트볼 먹혔어―"

"이제 없어. 시라미네랑 카야 몫밖에."

"또 있어?"

"없다고 했잖아!"

삿쨩이 부엌을 향하자, 공방이 벌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카야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었어]

"역시네요. 주소 안 적혀있슴까"

[쿠보타니쵸 고하라 789]

"아―, 고하라까지 갔구나. 거긴 모르겠네, 잠깐만 기다려줘"

전화번호부 옆에 놓인 지도를 찾는다.

다람쥐처럼 뺨을 우물거리며 삿쨩이 말했다.

"GPS는?"

"이 자식― 다 먹었냐"

"아키히로한테 GPS 쓰라고 해"

삿쨩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카야씨는 주소장 버튼과, 발신 버튼밖에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화면이 뜨면, 전원을 한 번 껐다가 다시 켜는 기술은 얼마 전에 취득했다.

"카야씨, GPS 기능 좀 사용해 줄 수 있나요"

[전신주에서? 전신주의 어떤 기능?]

"아니, 카야씨의..."

[내 기능?]

"아니......"

[나의 어떤 기능?]

미아의 목소리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울고싶어지면서, 전화기를 누르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카얏페한테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냉동한 베이컨을 한 손에 들고, 렌렌이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미트볼이 없어지는 바람에 베이컨을 구울 처지가 된 것 같다.

"택시 잡고 돌아와. 그게 제일 빠르잖아?"

나는 카야씨에게 전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었다.

"돈 없대"

"이쪽에 도착하고 지불하면 돼"

"택시는커녕, 차 한 대도 못 찾겠대"

"뛰어서 돌아와. 달리기 잘하잖아."

"그래서 달리다가 길을 잃었는데..."

"미아가 될 바에야 러닝 같은 거 하지 마"

명언을 쏟아낸 듯 렌은 몸을 뒤로 젖힌다.

자체가 조금도 호전되지 않는,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을 모아두고, 렌렌은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의무는 다했다는 듯이 삿쨩도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다들 자유인이다. 각오를 다지고, 난 말했다.

"알았어. 카야씨, 마중 나갈게."

[언제쯤?]

"어디서 자전거를 빌려서 고하라라면 서둘러 30분 정도..."

[지금은 절 앞이라는 곳에 있어.]

"왜 가만히 있지 않슴까!? 왜 고속으로 이동하는 거야!?"

[달리고 있으니까...]

"멈춰!"

[여기서?]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지만, 역시 온정이 작용하였다.

"어딘가 햇빛에 쉴 수 있는 곳에서 말이야"

[전주의 그림자밖에...]

"아아, 카야씨는 안 들어가네. 큰일났네."

[그렇네]

"주변에 밭밖에 없어?"

[닭장이라면 있어.]

"거기서 쉴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생각해?]

"죄송합니다..."

전화를 하고 있어도 결말이 나지 않는다.

나는 통화하면서 웃옷을 껴입었다.

"어쨌든 갈게. 이거 삿쨩 핸드폰이니까, 내 핸드폰으로 전화해줄 수 있을까?"

[알았어. 또 한 가지 곤란한 일이 있어.]

"왜 그래?"

[배고파]

"렌렌, 주먹밥 만들어줘―!"

전화를 끊고 난 부엌으로 뛰어들었다.

식단이 스케줄대로 되지 않는 렌렌은, 핏대를 올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

"돌아와서 먹어! 베이컨 다시 넣었잖아"

"배고픈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

"베이컨 어떡할 거야. 네 몫도 있다고. 시라미네 혼자 먹이는 거냐"

"그럼, 베이컨말이 주먹밥 해줘"

시선을 들어 궁리해 본 뒤, 렌렌은 양해를 구했다. 만들어 보고 싶어진 것 같다.

베이컨 말이 주먹밥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몸차림을 정돈했다. 창밖을 보니까 겉옷은 필요없을 것 같다.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삿쨩 핸드폰 여기 놔둘게."

"그래, 얼른 다녀와"

핸드폰이랑 도시락 싸들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초겨울 날씨여서 더울 정도였다.

어딘가에서 자전거를 빌려 가자.

가능하다면 학교 친구들에게 빌리고 싶지만, 봄방학이라 기숙사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도츠카씨라는 주임 목사님이 분명히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본인만큼이나 연배가 든 덜컹덜컹한 녀석.

목사사로 가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날 목사사로 가기 싫었다. 작년에는 목사사에서 생일 축하를 받았지만, 올해는 서로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까.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이에 상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했어]

"응. 진정할 수 있는 데 찾았어?"

[야채 무인 판매소가 있었어. 처마를 빌리고 있어.]

지나가던 사람에게는 카야씨가 파는 것처럼 보이겠지.

"알았어. 근처 주소 알 수 있어?"

"쿠보타니쵸 테라마에 42"

"OK. 안 가봤지만, 아마 알 거야"

통화를 끊으려다가, 나는 조금 망설였다.

카야씨는 혼자서 불안할 수도 있다. 무뚝뚝한 대응도 외로움의 반항일지도.

"……이대로 전화 연결해둘까?"

[아니]

"네. 죄송합니다"

부끄러워하면서 나는 통화를 끊었다.

품행방정, 성적우수, 문무양도의 인물인데, 초면의 인상이 강해서, 아무래도 나는 과보호가 되기 쉽다.

그래서 성가셔하는 걸까.

(쿨하게 가자, 쿨하게...)

벚꽃 봉오리는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며칠 후에는 꽃구경에는 안성맞춤이 될 것이다.

봄바람은 거셌다. 바람을 앞지르듯 나는 달려나갔다.



"――미안해, 자전거 빌려서. 바람 넣어서 돌려줄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 자전거 주인은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반말을 해온 바람에,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토츠카 씨는 좋은 사람이고, 주임 목사라기보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괜찮아, 괜찮아. 조정까지 해줘서 살았어. 끼익끼익 시끄러워서 말이야."

"원래 기름 부으면 안 되는데, 바로 내가 바로 써야하고. 다시 고쳐서 돌려줄게."

"기름 넣으면 안 돼? 소리가 고쳐졌는데"

"브레이크가 안 듣는다니까. 기름이 떨어지면 원래대로......"

"그런 자전거를 타면 안 돼!"

갑자기, 토츠카씨는 고함을 질렀다.

도장을 깨러온 사람을 내쫓는 도장 주인 같았다. 붙임성 있게 웃으면서, 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괜찮다니까, 전에도 해봤고. 안장도 내렸으니까, 발로 멈출 수 있고."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해. 버스를 타세요."

"하지만 급하니까..."

"칸나미군한테 데려다 달라 하면 돼. 아직 방에……"

"괜찮아, 괜찮아. 완전 괜찮아"

다 됐다, 하고 나는 페달을 밟았다. 도망치듯이, 자전거를 밟았다.

"미하루군!"

"괜찮아, 꼭 갚을게! 또 봐!"

얼버무리듯 웃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 직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담배를 입에 문 불량목사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거야"

"...당신이야말로"

"세차 준비"

한 손에 든 양동이를 들고, 세이지가 말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누구나 밖에 나가고 싶어지는 것 같다.

"아, 그래"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페달을 밟았다.

연기를 피하는 행동을 과장한 것은, 스스로도 어린아이 같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들어도 착잡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화가 난다.

내 존재의 가벼움은, 익숙하긴 하지만.

"미하루군, 기다리세요!"

"왜 그러세요?"

"고장난 자전거로 나가려고 해서 말이야..."

두 사람의 대화소리를 등뒤로 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4월의 바람은 기분이 좋아, 머리카락을 간지럽힐 때마다 귓가가 산들산들했다.

흐린 구름은 하나도 없고 새하얗고 큰 구름이 떠 있다.

뭉게구름이 저 정도였나. 더 컸나?

하늘에서 산길로 시선을 돌려, 나는 오른쪽 핸들의 브레이크를 잡았다.

역시 효과가 안 좋다. 하지만 발을 땅에 붙이면, 쭈뼛쭈뼛 멈춘다.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시골뜨기의 자전거 경력을 얕보지 말았으면 한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엄청난 속도로 차가 나를 앞질렀다.

바퀴에 차인 자갈돌이 껑충껑충 높이 튀었다.

눈에 익은 차체는, 전방에 정차하여, 나를 항복시켰다.

"태워다 줄까"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세이지는, 도깨비의 목을 잡은 것 같았다.

페달을 밟으며 나는 옆으로 지나간다.

"괜찮아, 딱히..."

"자전거 펑크 났지"

"펑크 난거 아냐"

"어디 가?"

"카야씨, 데리러 가"

"그럼, 그냥 차로 가면 되잖아. 2명을 태우고 돌아올 생각이야?"

운전석을 돌아보며, 나는 세이지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래. 괜찮으니까 가도 돼"

나는 돌아보지 않고 산길의 나무 그늘을 뛰어갔다. 나뭇가지가 복잡한 무늬를 땅바닥에 그리고 있다.

그 위를 간다.

계속 전진해도, 타이어가 움직이는 소리는 한동안 나지 않았다. 세이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차체는 옆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유턴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

갑갑해 보이는 차의 움직임은 쓸쓸한 듯도, 화난 듯도, 퉁명스럽게도 보였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듣지 않는 브레이크를 잡는다.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외웠다. 충분해.

충분하다.

발을 땅에 붙이면 자전거는 멈춘다. 이름밖에 없어도, 성은 받을 수 있다.

진짜 생일을 몰라도, 나에게는 생일이 있고, 축하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낳은 사람은, 나를 낳은 날에, 나를 떠올리곤 할까?)

마음으로 앓고 있다면 불쌍할 것 같다.






20분쯤 달리자 정비된 길로 바뀌었다. 큰 국도를 지나, 역을 곁눈질로 나아간다.

마침 교차로 바로 앞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카야씨에게서였다.

"네 네, 무슨 일이야―?"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어서, 한손 운전하면서, 나는 나아갔다.

[쿠보야, 지금 어디에 있어?]

"역을 지나던 참이야. 10분인가, 15분 있으면 절 앞일 텐데."

[알았어. 그럼 됐어.]

"왜?"

[근처에 있던 사람이 차로 데려다 준다고 했어.]

"아......"

[네가 온다면 기다릴게. 고마워.]

통화가 끊기고, 페달이 탁 무거워졌다.

고맙다고 말한 카야씨는 화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르는 장소에서 기다리다 지쳐있다. 차로 돌아가는 게, 분명 더 나았다.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세이지의 차에 태워달라고 할 걸. 그렇게 했다면, 카야씨가 기다릴 일도 없었다.

난 항상 쓸데없는 짓을 해버린다.

도움이 되는 셈치고, 열심히 하는 셈치고, 항상 쓸데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세찬 봄바람이 밭의 모래를 하늘로 날리고 있었다. 까칠까칠한 것이 눈과 입 속으로 날아든다.

이를 악물고, 꾹 소매로 눈을 문질렀다.

모래 연기 속으로 돌입했다. 등을 구부리고, 나는 자전거를 밟았다.






동류는 친구를 부르는 걸까.

카야씨는 대농가의 집에 신세지고 있었다.

훌륭한 담장 안쪽에는, 여러 개의 헛간과 곳간이 있고, 손질된 소나무와 진달래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무덤이나 절이나 같은 곳에 있는, 돌로 된 작은 집 같은 것의 밑에서 살찐 고양이가 졸고있다.

"어서 오세요. 바람이 엄청 부는데, 남자애는 아주 건강하네."

품위 좋은 부인이 나와서, 나도 툇마루에 들여보내 주었다.

먼지와 땀투성이였던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부인은 차가운 보리차를 내주었다. 단숨에 들이켜 목마른 목을 축였다.

"오늘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배려에 송구스럽습니다."

카야씨는 툇마루에 정좌를 하고, 농가의 부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카야씨의 정좌는 딱 각져서, 아주 멋있다. 나를 돌아보며 카야씨는 미소지었다.

"아드님이 우리 학교에 같이 다녔다시네"

"벌써 10년 전 이야기지만요. 인연이 있는 분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니, 오히려 저에게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아주 많이 신세졌습니다."

머리를 숙이는 방법도, 카야씨는 예뻤다.

나는 카야씨를 따라 해야 하나 난감했다. 정좌를 하려면 신발을 벗고 툇마루로 올라가야 한다.

남의 집에 마음대로 올라가도 되는 것일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카야씨가 일어섰다.

"갈까, 쿠보야."

"앗, 네. 실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아뇨. 또 다시 와주세요. 괜찮으면 이거 가져가"

젊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고 부인은 야채를 주었다. 본 적은 있지만 이름 모를 야채였다.

"뭘까"

'츠지무라에게 물어보면 알 거야'

대농가의 집을 나와, 우리는 자전거를 굴리며 걸었다.

카야씨가 실황했던 대로 주위는 밭뿐이었다.

"카야씨, 두 명이서 타봤어?"

"없네. 할 수 없진 않을 텐데"

"그럼, 두 명이서 타기 전에, 먼저 주먹밥 먹어버리자. 아니면 뭐 좀 먹었어?"

"아니. 뭔가 따 오겠다고 해주셨지만 사양했어"

"잘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장어도 먹을 수 있었을 거야."

따끈따끈한 햇빛에 저절로 하품이 나왔다.

전방에 논둑이 보였다. 한 그루만 밤나무가 자라서, 자연의 차양이 되어 있었다.

"저기서 밥 먹자"

카야씨는 이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둑 밑에 자전거를 세우고, 허벅지를 밟고 올라선다.

밤나무 밑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도조신^[각주:1]이다.

누가 준비한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돈다.

"이거, 이거. 이 근처에 앉아도 벌 받지 않으려나"

"장난을 치면 목이 없어진다던데"

뒤숭숭한 대사에 흠칫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카야씨는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낡아서, 괴담의 보물창고야. 시라미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지만."

"예를 들면?"

"선조들이 흰 뱀을 죽였기 때문에, 수난으로 죽는 인간이 많다던가. 땅 개척으로 절을 태우는 바람에 요절이 많다든가."

한 번 말을 멈추고 카야씨는 말했다.

"기슭의 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을 앓는 인간이 많다든가"

엷은 구름에 태양이 가려져, 카야씨의 옆모습이 어두워졌다.

나는 가방을 안고, 무릎을 껴안았다.

"이런 도조신이 집 근처에 있었어. 월초일에는 도조신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다고 들었어."

"왜?"

"글쎄. 그런 규칙이 많았어. 가까이 가면 안 될 곳간이라든가, 산나물을 캐서는 안 될 산이라든가, 불을 태워서는 안 될 땅이라든가."

"헤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도조신을 등지고, 빙글 카야씨 쪽을 향했다.

"오늘은 월초야. 얼굴 봤으면 위험해? 나 봤을지도 몰라"

"글쎄. 그것보다 배고픈데"

나는 눈썹을 내리고 가방에서 밥을 꺼냈다.

하루땅만큼 많이 겁내지는 않지만, 괴담을 들은 탓에, 괴담과 관련된 것 가까이에 있으면 긴장된다.

등의 기척을 떨쳐버리듯이, 나는 척척 행동했다.

"자, 이거 물티슈. 그리고 페트병에 든 차. 이 주머니 안에 주먹밥이 들어있어. 그리고, 땀 흘렸을 것 같아서,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너는 가정부 같구나?"

"주먹밥 몇 개 들어있어?"

"세 개"

"그럼 지장보살 하나 드리자"

비닐랩^[각주:2]에 감긴 베이컨말이 주먹밥을 집어서 나는 바람개비 옆에 놓았다.

팡하고 손을 모으고, 나무나무 하고 절을 했다. 교회 사람들이 보면, 실소할 모습일지도 모른다.

"카야씨, 베이컨말이 맛있었어?"

웃으며 돌아보자, 주먹밥을 쥐고 카야씨는 정지해 있었다.

바코드를 읽을 수 없는 계산대처럼, 가만히 베이컨말이 주먹밥을 바라보고 있다.

"...이건 뭘까"

"주먹밥이야"

"김이 아닌데"

"굳이 베이컨으로 감았어. 고기말이 주먹밥 같은 거 유행이잖아, 고안한 요리야"

"고안하지 말고 안에 넣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불만을 토로하면서 카야씨는 주먹밥을 먹었다.

맛을 물었더니, 베이컨과 흰쌀 맛이 난다고 했다. 역시 츠지무라 선생님의 요리다.

구름은 흐르고, 햇빛이 돌아왔다. 푸른 풀밭에 바람이 잠겨 간다.

둑에는 많은 식물이 있었다. 뺑뺑이풀, 제비꽃, 유채꽃, 강아지풀.

예쁜 녹색 메뚜기가 날아와, 나는 두 손으로 잡았다.

"카야씨, 메뚜기 잡았어요!"

카야씨는 주춤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니까"

"어, 메뚜기도 싫어함까. 죄송합니다."

나는 슬그머니 메뚜기에게 작별을 고했다. 카야씨 엉덩이 쪽에 개미 행렬이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풀피리를 만들었다. 옛날이 더 잘한 것 같다.

삐―삐― 소리를 내자 카야씨가 재미있어했다. 카야씨는 들 놀이^[각주:3]를 몰랐다.

"피리도 만들 수 있고, 물감도 만들 수 있어. 민들레 줄기는 비눗방울 빨대가 되고, 토끼풀은 뜨개질하면 화환이 돼."

"저건? 만지면 씨가 튀어나오는......"

"봉숭아 말하는 거야? 초등학교 통학로에 있었지. 분꽃은 분필 가루 같은 게 나왔어."

"잘 아네"

"놀 수 있는 걸로는, 뭐든지 갖고 놀았으니까"

"그렇구나, 장난감이 없으면, 만들면 됐구나"

카야씨는 상냥한 얼굴을 했다.

기뻐져서, 나는 달변이 됐다.

"연날리기도 내가 만들었어. 대나무잠자리도 만들었어. 대나무잠자리 알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

"세이쨩……세이지가 잘 만들었어. 세이지는 손재주가 좋아. 언제나 제일 먼저 내게 주었어."

바람이 불고, 도조신의 풍차가 빙글빙글 돈다.

"세이지가 인기쟁이였어. 가끔밖에 오지 않아서, 다 같이 서로 뺏었었어. 세이지가 나를 귀여워해 주었기 때문에, 그 녀석이 있을 때만, 나는 부러움을 샀어."

"또 다른 건?"

"없어. 부러움 받을 일 따위. 난 항상 부러워하는 편."

쓴웃음이 섞인 듯 고개를 들자 카야씨는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 흙을 털고 난 일어섰다.

"갈까? 미안, 축축한 얘기라"

"그렇네"

"...죄송합니다..."

"난 네가 부러운데. 시라미네가 편애하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편애라니, 그렇게 보여?"

"그래. 부럽다를 넘어서 미워"

"자 자, 갑시다. 발 밑 조심해――"

카야씨의 어깨를 밀어, 둑을 내려간다. 자전거를 굴리기 전에, 다시 한 번 도조신에게 손을 모았다.

얼핏 보니 도조신의 풍차와 똑같은 물건이 골목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불량식품 가게 같다.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카야씨, 생일답례 사 가자"

"어디서?"

"저기"

바람개비가 도는 처마 끝을 빠져 나갔다.

그리운 불량식품과 함께 대나무 세공 장난감들이 즐비했다.

옛날의 나처럼 눈을 빛내며 모두가 기뻐했으면 좋겠다. 대나무 잠자리^[각주:4]나 바람개비나 종이풍선을.

세이쨩이나, 렌렌이나, 하루땅이나, 삿쨩의, 추억에도 있었던 것이라면 좋다.

조금이라도, 웃어줬다면.






선물을 사들고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카야씨를 뒤에 태울 생각이었지만, 자전거는 카야씨가 타겠다고 했다.

"네가 더 가볍잖아"

"그렇긴 하지만, 힘들어. 거리가 꽤 멀고..."

"기어 없는 자전거^[각주:5]를 써본 적이 없어. 안장을 올려도 될까?

"응, 기다려줘"

안장의 위치를 카야씨에게 맞추고 나는 뒤에 올라탔다.

난 평소와 다르게 긴장했다.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은 지극히 서투른데, 이렇게 알기 쉬운 짐은 없다.

짐받이에 올라앉으며, 카야씨의 등을 바라봤다. 앞으로 나선 카야씨는 두말없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시야를 가로막는 등은 단단하여 강인하다는 말까지 할 수 있었다. 가냘픈 소년의 그림자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이상하게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카야씨 등 크네..."

"…………"

기분 나쁜 듯이 돌아봐서, 나는 실언을 후회했다.

얼굴에 불이 날 것 같다. 죽어버리고 싶다.

기초체력이 다른지, 자전거는 부쩍 속도를 올렸다. 긴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몸 옆을 스쳐가는 바람이 상쾌하다.

기분 좋게 머리를 날리면서, 나는 새파랗게 질렸다.

까먹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안 듣는다는 걸.

"카, 카야씨......"

"왜 그래"

"정말 미안해, 어쩌지? 내가 미안하지만, 저기..."

"간결히"

"브레이크가 안 돼"

카야씨는 오른쪽 레버를 움켜쥐었다. 그런데도 타이어는 매끄럽게 가속해 간다.

사살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야씨는 나를 돌아보았다.

"왜, 먼저 말하지 않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미안! 정말 미안, 잊어버려서..."

"오르막길을 찾자, 속력이 떨어질 거야!"

"이 근처 조금 내리막에서…!"

"너는 바보냐?!"

비탈길은 구불구불하면서 경사를 더해간다. 오르느라 고생한 비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내려왔다.

페달을 돌리지 않은 채, 카야씨는 균형을 잡기에 바빴다.

불안정한 두 바퀴 위에, 청소년이 둘이나 타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내리막길에서는 아이들이 길바닥에 퍼져 놀고 있었다.

피가 마르고, 난 외쳤다.

"카야씨! 벨 울려, 벨!"

"벨!? 어디!?"

"오른쪽 핸들 위! 레버가......"

"소리 질러!"

"비켜―......!"

우두커니 고개를 든 아이들은 거미줄치듯 떠났다.

막다른 곳에는, 가파른 커브가 다가온다.

자칫하면,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절벽 아래 묘지에 낙하한다.

카야씨는 몸을 뒤로 젖히고, 핸들은 그닥 쓰지 않고서, 무게중심만으로 커브를 돌았다.

아스팔트에 닿을락말락하게 몸이 넘어지고, 매달린 가방끈이 닳아 끊어졌다.

"해냈다......!"

안심한 것도 잠시, 나의 머리와 30cm 떨어진 곳을, 술집의 오토바이가 달려간다.

서서히 차체의 각도가 돌아와, 나는 안장에 매달렸다.

"어디까지 내리막길은 계속 되는 거야!"

"이 산을 내려갈 때까지!"

"너는 언제나 시시한 농담을 하니까, 이런 때 쯤은 안심 시키기 위해 금방 끝날 거라든가..."

"뭐?! 안 들려!"

"알려줘서 고마워!"

꼬불꼬불하며, 내리막길은 계속된다. 원래 산길이라 전망도 꽤 안 좋다.

갑자기 나타나는 차에 섬뜩해졌다.

나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 큰 사고가 나겠다.

카야씨의 귓가에, 나는 소리쳤다.

"카야씨! 나, 뛰어내릴 거야!"

"무리다, 다칠 거야!"

"내가 내리면 가벼워져서, 속도가 느려질지도 몰라!"

"밸런스가 깨져! 상관없으니까 제발 타줘!"

"하지만......!"

경적이 귀를 찢고, 지나간 차의 풍압을 뺨에 느꼈다.

핸들을 고쳐 잡고 카야씨가 나직이 속삭인다.

"전망 좋은 차도에서 쓰러지자. 그래야 사람이 말려들지 않고 끝나."

카야씨의 말에 나는 울고 싶어졌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 때문에 카야씨가 다치고 말거야.

귀찮아하지 말걸. 괜히 고집 부리지 말 걸 그랬다.

다 내 탓이다.

딸랑딸랑하고 자전거는 계속 비명을 지른다.

나는 꼬옥 카야씨에게 매달렸다. 적어도 카야씨를 감싸고 쓰러지자. 다치게 하지 말자.

제발, 아스팔트가, 나만 문질러주길.

"...........쯧"

카야씨가 혀를 찼다.

전망이 좋은 길은 나타나지 않은 채, 전방에, 갑자기 교차로가 보였다.

저기에 들이받으면 분명히 차에 치이게 된다.

이쯤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다.

각오를 다졌을 때, 오른쪽 턱 아래로 밭이 펼쳐졌다. 카야씨의 어깨를 잡고, 나는 소리 질렀다.

"밭에 뛰어들자!"

카야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속 차량의 앞을 가로질러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둥실하고, 몸이 무중력이 됐다.

경적이 울리는 하늘을, 자전거가 흩날렸다.







"안경이 깨졌다..."

진흙투성이의 카야씨는, 빠진 렌즈를 응시하며 탄식했다.

제대로 접어서, 가슴 주머니에 안경을 넣는다.

곁의 나를 들여다보며, 카야씨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일어날 수 있어?"

몸을 일으키려다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비틀어버린 것 같다. 운동화는 진흙투성이였고 발목까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자전거로 돌아가는 건 무리네. 부서졌고......"

넘어진 자전거는 절그럭절그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핸들과 앞바퀴가 삐뚤어졌다.

너무나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택시를 부르자. 밭 주인이 저 집 사람 같으니까, 사과하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줄래?"

찰과상을 닦으며 카야씨는 막힘없이 고했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무슨 말을 하는지, 울고있어서 잘 모르겠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카야씨가 가방을 뒤져서 물티슈를 내밀었다.

"그렇게 아파? 발목은 움직여?"

나는 고개 흔들었다. 귀찮은 듯이 카야씨가 숨을 내쉬었다.

"울면, 탓하기 어렵잖아"

"죄송해요..."

카야씨의 무릎을 잡고, 나는 밭 위에 둥그렇게 앉았다.

"나, 언제나, 당신을 도울 수가 없어서…….엄청난 짓만 해서 죄송해요......"

맑게 갠 푸른 하늘을, 흰 구름이 헤엄쳐 간다.

따뜻한 흙 위를, 작은 도마뱀이 걷고 있었다.

절그럭절그럭 돌고 있던 바퀴 소리가 멈췄다.

카야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생일이니까 봐줄게"







밭 주인이 수도와 반창고를 빌려 주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날이다. 카야씨는 붙임성 있게, 마중을 나올 동안에, 아저씨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뛰어든 건 양배추밭이었다.

망쳐버린 채소를 아저씨는 웃으면서 나눠주었다. 황송해하는 우리에게 아저씨는 말했다.

"생명의 은인이니 가리지 말고 먹어라"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저것 가려서, 나도 모르게 은혜를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나를 살리는 착한 기적에 대해서.

(마음에 앓고있지 않다면 좋을텐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생각하게 됐다.

(엄마가, 나때문에, 뭔가 마음에 앓고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과거의 선택에 사로잡혀서 불행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

나처럼 헛돌지 않게. 나처럼 움찔움찔하지 않게.

적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하는 대신.

마중 나온 건 택시가 아니었다. 익숙한 차를 보고, 난 꾸욱 속이 쓰려왔다.

"폐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차에서 내린 인물은 밭 주인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웃는 아저씨에게 큰절을 하고 우리 앞에 다가온다.

세이지가 무서운 얼굴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떠올랐다. 세이지한테 혼나는 게, 무엇보다 무서웠던 날을.

콩, 하고 세이지가 내 머리를 때렸다.

하나도 안 아픈, 상냥한 손이었다. 세이지는 카야씨도 콩 하고 때렸다.

난 진심으로 세이지에게 미안했다.

"...죄송해요..."

"그러니까 말했잖니. 위험하니까 그만두라고."

"칸나미씨. 저는 왜, 맞은 건가요?"

"어? 아아, 으으음..."

"잇따라서......?"

"아니야. 봐봐, 2인승 했으니까"

카야씨는 불합리한 것 같았다. 나는 눈썹을 내리뜨리고, 세이지에게 호소했다.

"카야씨는 나쁘지 않아. 내가 자전거로 데리러 갔으니까......"

"알고있어. 다친 곳은? 괜찮았어?"

난 입을 다물었다. 카야씨가 내 발밑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다리를 삔 것 같아요. 조금 부어 있고"

세이지가 눈썹을 치켜들고,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세이지의 머리 위로,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멀리서 벚꽃이 피어있다.

발목에 손을 대면서, 세이지가 말했다.

"아―아― 부었네. 가서 파스 붙여줄게. 생일에 다치다니 바보 같은 아이네"

찰싹하고, 세이지가 발등을 두드린다.

깜짝 놀라서, 나는 눈을 크게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산바람이, 벚꽃잎을 몰고 온다.

어딘가에서 시작되던 새로운 계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칸나미씨, 다친 부분을 때리지 않아도……"

다시 울음을 터뜨릴 뻔한 나에게, 카야씨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일어선 세이지가 말없이 돌아봤다.

말끝을 올리며, 세이지가 웃었다. 달래듯이, 이겨내듯이.







부서진 자전거를 싣고 우리는 초봄길을 돌아간다.

제일 처음에 받은 야채의 이름을 세이지가 가르쳐 주었다. 머위야, 하고 그는 말했다.





April 1st is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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