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The Unbirthday Party - 1

http://www.tarhs.com/bonustrack/voss.html
http://www.tarhs.com/bc_47/bc_4701.html
홈페이지에 공개된 생일 연작 SS 중 3편인 콤비 투표결과 SS입니다. 네버지스타 단편집 1권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https://booth.pm/ja/items/1268
ㄴ단편집 booth 판매링크

※본편 ED28부터 이어지는 형태의, 올클리어를 전제로 한 스포일러를 아주 많이 포함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아직 플레이중 혹은 하지 않으신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츠지무라와 이즈미가 이시노가에서 소개팅을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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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지는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인의 집에서 요리 좀 알려달라고?"

"응"

주방에 있는 렌지와, 식당에 있는 나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목소리가 닿았다. 이대로 대화할 수 있는데도, 렌지는 일부러 주방에서 나왔다.

긴장한 것 같다.

"나한테? 언제?"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닦으며, 렌지는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흥미진진한 주제에 솔직하지 못해.

"주말"

나는 일부러 무뚝뚝하게 말했다.

렌지는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렌지는 언제나 자기 요리가 칭찬받기를 기다린다. 선생님 역할이라니 정말 기뻐하는게 틀림없다.

그러면서 '난감하군' 이라고 했다.

"월요일이 마감이야. 평소의 감으로 말하자면, 교섭에 따라 늘어날 것 같은데……"

거봐 왔다. 나는 내심 웃었다.

내키지 않는 척이라니 거짓말. 렌지는 좀 더 내가 설득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뿐. 추어올려지는 시간을 늘리고 싶을 뿐.

힐끔힐끔 쳐다보는 렌지에게 나는 눈을 마주쳐주었다. 잘난 척 팔짱을 끼고, 내가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내가 어리둥절했다면 이렇게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든 해줘. 부탁할게, 렌렌. 당신밖에 없어.

"그럼 됐어"

"어이, 기다려. 어떻게든 안 될 건 없어. 어쩔 수 없네, 조정해 줄까?"

차에 뛰어 올라타듯이 렌지는 황급히 OK 사인을 했다. 시나리오대로야. 하지만, 우쭐해진 만큼 나는 심술을 부릴 것이다.

"바쁘다며"

"뭐. 너희들과는 달리, 나는 할 일이 많으니까."

감점 1.

"귀찮은 부탁이지만, 숨 돌릴 정도는 되잖아. 꼭 해달라 한다면, 받아들여도 상관없어."

감점 2.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네 부탁이니까."

어이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로 귀여운 말을 했다. 어쩔 수 없으니, 만점으로 올려주자.

"고마워"

렌지는 아주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안색에 그늘이 졌다. 렌지는 경계 신호를 보내며 진지하게 내게 물었다.

"여자 집이냐?"

렌지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거북했다. 있는그대로 대하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울리거나, 킥킥거리거나 하니까.

나는 렌지를 안심시켜줬다.

"남자의 집이야"

걱정이 없어지자, 렌지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거짓말 하지 않았다.

그가 싫어하는 우리 누나는, 옛 애인과 재결합하여, 그의 집에 굴러들어와, 남자 명의의 집에 살고 있으니까.








키가 크고 말이 많은 렌지. 키가 작고 과묵한 나.

정반대인 점이 많은 우리에게도, 아주 조금의 공통점이 있다.

오른손잡이인 것. 친구가 적은 것. 칫솔은 부드러운 것보다, 딱딱한 것을 좋아하는 것.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The Unbirthday Party ( with R )　　



"어서오세요―"

하나가 현관을 열자, 렌지는 입을 벌린 채 경직되었다.

의욕적으로 가져온 소품이나 레시피 책을 털썩 떨어뜨린다. 무거운 가방을 보았을 때, 나는 잠깐 렌지를 동정했다. 지저스, 렌지. 그렇게 기대했다니.

"...이녀석은 여자잖아!"

"그렇지"

"속인 거냐!"

"남자 집이야"

이시노라고 적힌 문패를 나는 가리켰다. 렌지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분명히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렌지잖아, 오랜만이야"

렌지의 비극을 모르는 하나는 쾌활하게 웃으며 툭하고 그의 가슴을 쳤다. 활짝 피어나는 미소는 여전히 예뻤다.

하나는 내 누나다.

여신처럼 아름답고, 범죄적으로 성적 매력이 넘친다.

찰랑찰랑 피부에 닿는 버릇 없는 긴 머리도, 반짝반짝 빛나는 고양이 같은 눈도 멋지다. 가슴이 큰 것이 자랑이니까 일부러 딱 붙는 옷을 입는다. 잘록한 허리는 아무래도 야하다.

하나는 유난히 다리가 예뻤다. 호리호리하고 하얗고 종아리의 부드러운 모양이라니 비상식적일 정도로 섹시하다. 감촉도 좋다. 한 번 만지면 계속 쓰다듬고 만져버린다. 허벅지는 더 하얗고......

…………

가족 칭찬은 그만두자. 오해를 낳기 전에.

아무튼, 나는 하나의 부탁을 받고 렌지를 불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요리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단순히 내가 렌지를 부르고 싶었다. 왜냐고?　

오늘 밤 이 집에서 홈파티가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시노 마코토라는 변태와, 그 아내가 될 누나의 홈파티. 가엾은 나에게 고통밖에 남지 않는 시간에, 나는 초대되어 버렸다. 하느님도 이해해 줄 것이다. 마음의 기댈 곳이 나한테는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부터 시작될 홈파티를 렌지는 전혀 모른다. 불쌍한 희생자이긴 하지만 총명한 그가 말했었지. 숨통이 필요하다고.

오케이, 렌지.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워. 난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뭐든지 몰두하는 남자야.

"어서, 올라와"

자신의 집처럼, 하나는 우리를 불렀다. 그 행동은, 조금 재미가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랑 살았으니까, 남자를 데리고 들어오긴해도, 동거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나랑 살던 방을 무단으로 없애다니, 조금 매정하다. 이제는 완전히 이 집 여자다.

짜증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렌지를 올려다보았다. 이마에 땀을 글썽이며 당황해하는 그의 옆모습을 보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치유되었다.

렌지를 데려오길 잘했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가자, 렌지"

"...가르칠 상대가 남자냐는 의미로, 남자 집이냐고 물어본 거야."

알고있어, 렌지.

"공교롭게도, 여긴 변태 새디스트의 집이고, 상대는 네 누님이잖아. 진지하게 할 맘이 생기겠냐."

"그럴리 없다니까"

"너희 누님이라고"

"설득력 있네"

눈살을 찌푸리며, 렌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사랑스러워져서, 상냥하게 등을 쓰다듬었다.

"속여서 미안해. 너의 힘이 필요해, 렌지"

"...칫, 어쩔 수 없군."

풀썩 기분을 가다듬고, 렌지는 현관으로 올라갔다. 복도를 벗어나 거실 다이닝에 들어간다.

실내를 바라보는 동안 렌지는 금세 눈썹을 찡그렸다.

멍하니 서서, 짐을 카운터 테이블에 놓았다.

"뭐야, 이 간접조명밖에 없는 방은..."

섬뜩한 렌지의 얼굴도, 카라멜 빛과 그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넓은 거실 다이닝에, 밝은 백열등은 하나도 없다. 조명은 모두 벽이나 천장을 향해, 교차하고, 뒤섞여 가구와 사람 위에 빛과 그림자의 수풀을 만든다.

세피아 숲 속에서는 누구의 피부도 매끈하게 비친다. 렌지마저 섹시하다. 분명 나도 그렇겠지.

일찍이, 마코토는 말했다.

이 방은 어디에 앉아도, 여자가 예뻐 보여요.

"거실에 왜 침대가 놓여 있어? 침실이 없는 거냐."

"있어. 있는데, 옷장으로 써"

섹시한 렌지의 중얼거림에, 섹시한 하나가 대답했다.

"왜 그래? 침실에 놔둬. 킹사이즈 정도 아냐, 저 침대"

"내가 왔을 때부터 이랬던걸"

"배치가 이상하잖아. 이렇게 널찍한데 식탁도 없고. 어디서 밥을 먹는 거야"

"러그 위에서 먹고 있어"

마루를 가리키며 하나는 대답했다. 렌지는 더욱 의아해 보였다.

나는 마코토의 의도를 이해한다. 여자애를 직접 앉히고 싶은 것이다. 옆으로 내던진 발을 보고싶은 거겠지.

진짜 징그러운 녀석.

"분위기가 이상해, 이 방!"

음란한 간접조명에서 나타나, 렌지가 건전한 소리를 지른다. 저항도 헛되이 렌지는 섹시한 그대로였다.

부엌 카운터에 하나가 턱을 괴었다. 마주앉은 두 사람은, 마치 정사를 시작하기 전의 남녀였다.

"마코토에게 가장 좋은 동선이야. 여기서 밥 먹고, 저기서 바로 엣찌할 수 있어"

"그......읏"

렌지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문이 막혔다.

팟하고 하나에게서 눈을 뗐다. 렌지는 이래서 안심이다. 그렇지, 허니―. 나랑도 시도해 보지 않을래? 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

벽을 가리키며, 렌지는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저 사진은 이시노가 찍은 거야?'

침대와 러그와 벽걸이 액정 TV 정도밖에 없는 심플한 방 벽에는 사진 패널이 걸려 있었다.　

흥미를 향해 렌지가 판넬로 다가갔다. 그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장식된 흑백 사진의 90%가 누드 사진이라는 걸.

이제 깨달은 것 같다. 입꼬리를 누르고, 시선을 헤엄치게 했다.

"알몸이잖아......"

"맞아. 이거 나"

"에?!"

말 그대로, 연자는 펄쩍 뛰었다.

저 사진은 나도 안다. 마코토가 상을 탔을 때의 그거다. 발가벗은 하나가 책상다리를 하고, 드라이기를 머리에 대고 있다.

"너...... 괜찮은 거냐, 이거."

렌지는 하나가 아니라 나에게 물었다. 그의 옆에 서면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잡지에도 실렸고. 이제 와서"

"작품이니까……. 그렇지, 작품이지."

문화인으로서 렌지는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다. 확실히 진정한 누드 사진은 포르노라기보다 아트다. 피부 느낌이 차갑다가, 따뜻하기도 하다.

전에 왔을 때부터, 사진 판넬은 달라져 있었다. 없어진 게 있거나, 새로운 게 있기도 했다.

무릎을 껴안은 누드인 여자, 근육질 누드인 외국인 남성, 차고에서 순진하게 웃는 세미 누드인 여자, 뱀같은 등의 누드인 여자, 침대에 잠자는 세미 누드인 소년….

"여자 사진은 짜증나니까, 한 번, 전부 떼버렸어"

"헤에"

"그랬더니, 게이 방 같다고 하지 말라더라"

"게이 방으로 해주면 좋았을텐데"

하나에게 대답하는 내 옆에서, 갑자기 렌지가 소리쳤다.

입꼬리를 누르고, 한 판넬 가리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거, 시라미네다"

"어?"

나는 판넬을 들여다보았다.

색깔을 잃은 세계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하루토였다.

카라멜색 조명의 방 벽, 낯익은 하루토가 낯선 미소년처럼 흑백 사진에 갇혀 있었다. 역에 붙은 포스터처럼 하루토는 멋졌다.

하루토를 만나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하루토에게는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실크로 만든 탑 같은. 비에 젖은 석양 같은.

나는 하루토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만, 대체로, 찍히면 무드는 없어져 버린다. 또렷한 얼굴은 좋지만, 재미없는, 평범한 남자아이가 된다.

하지만, 패널의 하루토는, 하루토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섹시하고, 이노센트하고, 리스키한 느낌. 말하자면 향기가 난다는 느낌. 내 사진 중 어느 것보다 제일 좋았다.

마코토는 카메라의 프로다. 겨뤄도 별 수가 없지만, 나는 분해졌다.

"헤에. 비싼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좋네"

나는 억지를 부렸다. 렌지의 가세를 기대했지만, 그는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이게 뭐야... 이건 아니잖아! 멋대로 시라미네한테 뭐하는 거야!"

"남자친구인 척하네"

"머리가 이상하잖아, 저 녀석! 성모 역할은 싫어해놓고, 어떻게 변태 새디스트 앞에서 벗는 거냐고!"

"카메라 수업료 대신, 모델이 된 거야. 저번에 왔을 때 찍었었어. 이 침대야."

킹사이즈 침대에 뒹굴며, 팡팡 하나는 시트를 두드렸다.

그렇군. 같은 침대다. 식은땀을 흘리며, 렌지는 동요하고 있었다.

"이 방의 마력이야. 분위기에 휩쓸린 거야. 난 무조건 제정신으로 버틸 거다......."

"마코토의 테크닉이야"

"무슨 테크닉이야...!"

"대화말이야. 외설스런 상상했어?"

렌지는 나를 목졸라 죽이려고 했다.

목이 졸리면서, 나는 냉정하게 멘트했다.

"카메라맨은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하댔어. 모델에게 좋은 표정을 짓게 하거나, 벗기거나, 평소에 좀 하지 않던 포즈를 취하게 만들어가."

"…………"

"우리한테는 어렵지"

눈살을 찌푸리며 렌지는 손을 뗐다. 우리는 친구가 적다.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하고, 최고를 보여주다니, 야마타노오로치^[각주:1] 퇴치보다 더 힘든 미션이다.

 

 

 

 

 

"좋아! 그럼 요리를 시작하자!"

운동 경기처럼 렌지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역전^[각주:2]의 변태가 만들어낸 공간에 물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있다.

앞치마를 하는 렌지와, 하나도 앞치마를 걸친다. 미니스커트가 가려져서 하체가 알몸 에이프런처럼 됐다.

"네, 선생님! 열심히 할게"

렌지의 흥에 이끌려, 하나도 기합이 들어간 소리를 질렀다.

"일단 손을 씻어"

"씻겠습니다"

"손이 어둡네. 부엌의 전기는 어딨어?"

"여기"

하나가 딱, 하고 스위치를 누르자, 조명은 위에서가 아닌 아래에서 비추었다.

부엌은 캬라멜색이 아니라 창백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쇼타임의 시작 같았다. 이번에는 손가락 끝과 가슴의 음영이 포인트입니다. 그의 손가락 끝도, 그녀의 손가락도 금방이라도 얽혀 버릴 것 같네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렌지는 탄식했다.

"이제 이 집에서 밥 짓기 싫어......"

"신경쓰지마. 재료 많이 사왔으니까"

렌지를 격려하며 하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일단, 이라는 느낌으로 식재료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토마토, 양배추, 피망, 당근, 마늘, 감자, 무, 호박....마치 야채 도감같다.

힘없이 렌지는 웃었다.

"최소한 야채 한 봉지는 사 주길 바랐어..."

"어떤 게 필요한지 몰라서"

"뭘 만들고 싶은데?"

 

"할 줄 아는 여자 같은 것"

"할 수 있는 여자..."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것 같은"

"하나의 요리는 레스토랑 같았어. 레토르트적인 의미로."

냉장고에서 바나나를 꺼내, 나는 먹기 시작했다.

하나는 자취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건 괜찮지만, 가끔 준비하는 것도 까먹었다.

하나가 하루종일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나는 혼자 냉장고에 있는 것을 다 먹었다. 냉장고 안이 비었을 때는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서 웅크려있었다.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이곳만의 이야기로,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

그 탓일 것이다. 아직도 음식을 앞에 두면, 배가 불러도, 위장에 넣고 싶어진다.

"맞다, 야채로만 만들어줬으면 해. 마코토, 야채밖에 안 먹어."

"아, 그랬구나. 귀찮게 하네……"

"저기―. 저번에 고기를 구웠더니, 고기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 고기 냄새가 뭐야? 그런 게 있어?"

"없―어, 기분 탓이겠지"

렌지의 시동이 걸렸다

"호박과 무는 크니까 양이 많네. 그리고 두부인가. 두부로 햄버거라도 만들까"

"햄버그라면 고기로 먹고 싶어"

"나도 그래. 다진 고기에서 양파만 골라 먹으라고 해. 중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편식하지 말라고."

렌지는 순조롭다.

"렌지네 파파는 편식하지 않았어?"

주방에 줄지어 선 두 사람을 바라보며, 카운터 너머로 물었다.

렌지는 시선을 들어,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불호는 없었지. 아, 한번 짜증나는 일이 있었어"

"뭔데?"

"요리하기 시작했을 때 말이야, 식혀둔 걸 꺼냈어. 여름이니까 말이야. 대충 한 게 아니라고."

"응"

"그랬더니 말이야. 가만히 차가운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거야. 싫어하는 건 아니었어. 먹는 건 몇 번이나 봤고"

렌지의 아빠와 렌지가 차가운 것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그림을 나는 상상했다. 긴장감때문에 손에 땀을 쥘 것 같다.

"그래서?"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렌지는 무표정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렌지네 파파의 성대모사인 것 같다.

"...가쓰오부시, 깎지 않은 건가..."

나도 하나도 폭소했다. 당시의 분노를 떠올리며 렌지가 행주를 카운터에 내던졌다.

"집에서 깎는 게 더 좋다면, 그렇게 말하란 말이야! 그보다, 깎는 게 얼마나 힘들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기숙사에서도 자기가 깎는 거구나"

"가쓰오부시가 깎을 수 있는 거야?"

"깎을 수 있어. 이런 덩어리가 나와있어서 말이야, 가쓰오부시 절삭기라는 게 있어서..."

해설을 시작한 렌지는 하나의 손을 보고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렸다.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낮게 내뱉었다. 너무 기세를 탄 것 같다.

"뭐야, 그 손톱"

"귀엽지 않아?"

하나는 두 손끝을 입가에 갖다 댔다. 하나의 네일은 길게 다듬어져 있었고, 펄 핑크를 바탕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하나의 귀여운 포즈에도 렌지는 기분이 언짢은 그대로였다.

"그런 손톱으로 칼을 쓸 수 있겠냐. 텔레비전 속의 여자가 긴 손톱으로 요리하는 것도 화가 나."

"왜? 무슨 일 당했어?"

"됐고, 손톱 깎아"

"싫어! 살롱 간 지 얼마 안 됐어"

"알 바냐. 손톱 따윌 길러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렌지도 머리 기르고 있잖아. 무슨 의미가 있어?"

하나의 억지에, 윽, 하고 렌지는 막혔다.

"빡빡이어도 될 거 아냐. 근데 안 하잖아. 멋내고 싶어서 그런 거지. 나도 멋내는 거야."

"저기 말야..."

"렌지가 머리를 민다면, 손톱 깎아도 돼"

새침하게 하나는 고개를 돌렸다.

귀여워. 난 흐물흐물해졌다. 황홀해져있는 나에게 렌지는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이 녀석, 완전 어린애야! 정말 할 맘 있는 거냐?!"

"하나는 예쁜 게 더 좋아"

"네가 부탁하니까, 내가 와준 거라고!"

"저기, 빨리 알려줘. 서두르지 않으면 손님이 올 거야"

"손님......?"

어이쿠.

하나가 입을 잘못 놀려 버렸다.

애처로운 렌지의 시선이 꽂힌다.

"손님이라니 뭐냐, 이즈미"

하나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홈파티인걸. 홈파티의 음식을 만드는 거야."

"...못 들었어!"

나는 렌지에게서 등을 돌렸다. 핸드폰 만지작거리며 하소연을 무시했다.

"뭐냐, 파티라니. 누가 오는 거야"

"몰라. 여자 모임이래"

"여자 모임!?"

"사실은 평범한 홈 파티였지만, 사키가……. 아, 렌지!"

하나의 목소리에 돌아보자, 렌지는 앞치마를 벗고 짐을 싸고 있었다.

현관으로 향하는 렌지를 나는 쫓아갔다

"어딜 가는 거야"

"돌아갈거야"

"왜"

"왜냐고?! 너의 거짓말도, 옷을 입고 있는 쪽이 죄책감이 드는 방도, 저 재료로 급한 대로 밥을 내가 만들었다는 말을 손님에게서 듣는 것도 진절머리나서야!"

"잠깐만, 렌지. 지금 메일이..."

"시끄러워! 네 부탁 따위, 두 번 다시 듣을 것 같냐!"

내 목소리를 막고 렌지는 현관문을 열었다.

"꺄..."

문 저편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서 있던 것은, 얌전해 보이는, 소박하고 귀여운 여자아이다.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었지만, 길을 잃었는지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부끄러운 듯이 땀 닦는 게 귀엽다.

하려던 말을, 렌지의 등에 고했다.

"문자가 왔어, 거의 다 왔대"

렌지는 할 말을 잃었다.

엄청난 긴장감에, 뒤돌아보자, 얻어맞는 건가 했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하고.

"알고있겠지만, 내 메일 친구인 히로코"

눈을 치뜬 렌지를 향해, 렌지의 계모인 츠지무라 히로코는 인사를 했다.

"오... 오랜만이야..."













침묵한 렌지는,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순전히 패닉만 일으킨 거라면 좋겠다. 나의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입을 열기까지, 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여기 있는 거야"

"미, 미안해요. 저기, 초대받아서……"

"누구한테...?"

"이즈미군에게…….이즈미 군, 말 안 했어?"

렌지는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았다.

맞지는 않았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러니까, 메일 친구야"

"왜..."

"네가 대답을 안 하니까, 내가 사이좋게 지냈어"

렌지는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심했을지도?

"여러모로, 렌지에 대해 가르쳐줬어. 얼마 전, 튀김에 데일 뻔했다고……」

"그런 것까지 보고하는 거야?"

렌지의 목소리는 낮고, 어쩔 줄을 몰랐다.

렌지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공기가 팽팽했다.

"손님 왔어?"

하나만 태평하다.

나는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얼떨떨해 하고있었다. 렌지의 등이 아슬아슬했다. 손가락질하며 웃을 수가 없다.

망설인 끝에 나는 정색을 하기로 했다. 적어도 여자아이를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

"히로코, 들어와"

렌지의 몸을 치우고, 히로코를 재촉하였다. 히로코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렌지의 얼굴을 살폈다.

"실례합니다…… 렌지군은요? 장 보러 갈 거라면……"

"돌아갈거야"

"아.... 그렇구나...."

렌지는 침묵했다.

나는 점점 연자가 얄미워졌다. 렌지만 환하게 웃으면 자리의 분위기가 원상태로 돌아갈 텐데.

"저기... 저기, 저, 죄송합니다..."

"사과하지마. 마감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돌아가서 해야지"

렌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렌지는 렌지대로, 어른스러운 태도를 취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히로코는 고개를 흔들었다. 히로코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저, 렌지 군도 온다고 들었으니까. 벌써 돌아갈 줄은 몰라서, 그래서……"

"그래서?"

"고로 씨가 렌지 군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아서, 여기 있다고 해버렸어."

렌지는 현기증을 일으킨 듯이, 현관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생각났다. 내일이 마감이라고, 렌지가 말했었다.

"괘, 괜찮아? 렌지군..."

안절부절하면서 히로코는 재차 타격을 가했다.

"왠지 말이야, 렌지 군과 내일 약속한 게 있어서. 오늘 여기에 있다는 건, 내일 약속은 어떻게 되는 될까,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어."

"...살해당할거야..."

"일 끝나고 근처까지 온다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어떨까?"

"괜찮아, 렌지. 평소 감으로 얘기하자면, 협상에 따라 늘어날 것 같다고 렌지가 말했어."

"너, 숙부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렌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평소같은 상태였다. 난 안심하고, 내 페이스대로 렌지의 팔을 잡았다.

"비밀로 해줄게. 요리 만들어줘"

"뭐냐고. 왜 이 지경이 된 거지. 내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냐"

덩치가 큰 몸으로, 렌지는 축 늘어졌다.

섹시한 조명을 받은 렌지는 당황한 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속눈썹보다, 속눈썹의 그림자가 길게 자라 있었다. 이 방에서는 누구나 그렇다.

나는 렌지와 팔짱을 끼고, 바짝 그를 끌어당겼다. 상처입은 그를, 똑바로 마주보자.

약간 용기가 생겼다.

눈을 딴 데로 돌린 이유는, 내가 겁이 많아서인 것같다.

"하나와 마코토의 집에 혼자 오기 싫었어"

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가지 말아줘"

렌지는 침묵했다.

한숨을 내쉬는 기색 뒤에 렌지는 팔을 뽑았다.

고개를 돌리면서 난폭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리 말해"

렌지는 다시 한 번, 앞치마를 걸쳤다. 나는 기분 좋게, 그에게 달라붙었다.

"밥 만들 수 있어?"

"장을 봐야하지만. 몇 명 더 오는 거야."

"세 명 정도? 고로 씨를 포함한다면 네 명."

렌지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등을 두드리며, 나는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평소의 감으로는, 교섭에 따라..."

"절대 말하지 마!"

"알았어"

"……그런데, 어째서 히로코가 있는 거야. 하나랑 아는 사이였어?"

"아니. 내가 불렀어"

"왜..."

"렌지에게도 나랑 똑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싶어서"

"…………"

"화났어?"

"빌어먹을. 화내도 될 텐데..."

쓴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로 렌지는 손을 씻었다. 친애의 표시로 나는 뒤에서 포옹을 했다.

나를 밀어내면서, 렌지가 생각나는 대로 제안을 했다.

 

"시라미네도 부르자"

"하루토? 늦지 않았나, 지금부터면"

"알 바냐. 너도 어색하니까 나를 불렀잖아. 내가 한다고 나쁠 건 없잖아"

"하하하. 카스트 제도의 최하층에서 벗어나고 싶구나."

"명확히 최하층이라고 부르는구나..."

"유감이지만, 렌지. 여자 모임이면 하루토는 물 만난 물고기야. 계급은 변하지 않아."

"빌어먹을.... 어떻게든지 상황을 타파해야만..."

심각한 렌지는 탈출을 꾀하는 켄타로 같았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렌지를 바라보고 있자, 하나와 히로코의 대화가 들려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츠지무라 히로코입니다.초대해 주셔서……"

"하나야, 렌지의 누나?"

"아.... 어... 새엄마인데, 저기, 렌지 군이 항상 신세를 지고......"

"아아, 계모다. 심술궂어?"

"심술궂다...?"

"렌지가 더 나이가 가깝잖아. 왜 렌지가 아니야?"

"어, 음..."

"렌지네 파파면, 아저씨지. 엣찌 농밀해?"

"...어..."

히로코는 귀까지 빨개졌고, 렌지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공격하기 전의 모션 같았다.

나는 번쩍 눈을 번뜩였다. 알고있어, 렌지. 내가 나설 차례다.

렌지는 나의 위기를 구해준다. 나도 그를 구조해야지.

올―라잇, 맡겨줘.

"히로코, 같이 장보러 가자"

"왜!"

렌지의 역린을 건드려서 나는 당황했다. 챙겨줬는데 너무하네.

"누나를 데리고 가"

"하지만"

"뭐야"

"히로코와 둘이서 뒀다가 실수가 생기면 안 될 것 같아서"

"…………"

아, 또 역린을 건드렸다.

지금 렌지는 맨손으로 싱크대를 쥐어부술 수 있을 것 같다.

"……알겠냐. 나도 히로코도 제대로 신경쓰고 있어. 저 여자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잖아."

"좋은 울림이네. 마코토에게도 말해줘."

"지금부터 장보기 쪽지를 만들 테니까, 그대로 장을..."

렌지의 목소리를 가리듯이, 인터폰이 울렸다.

"손님이야, 사키, 나가줘"

히로코와 잡담하는 하나는, 좋을대로 나를 사용했다.

집사처럼 충실하게, 나는 현관으로 향했다. 열쇠를 돌리고 게스트를 초대했다.

"어서오..."

문이 열리는 순간, 햇볕에 잘 그을린 발이 들어섰다.

단단한, 근육질인 여자의 다리였다. 갈색 발은, 탁 문을 멈추고, 그대로 힘차게 열었다.

"미안해요, 양 손이 다 차있어서"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건강한 거무스름한 피부와, 기가 강해 보이는 아몬드형의 검은 눈.

키는 하나보다 작지만 어깨와 가슴팍이 두껍다. 가슴도 크다.

전형적인 수영 체형이다.

종이 봉지를 두 개나 안은 그녀는, 잠입한 간첩처럼 민첩하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옷 갈아입게 해줘. 아직 남자는 안 왔지?"

"나랑 렌지가 있는데"

"학생은 숫자에 끼지 못해. 주선자는 너희 누나? 인사해야겠네"

신발을 벗는 동작조차 그녀는 활동적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짐을 보관했다. 방금 감은 머리에서 샴푸랑 염소 냄새가 났다.

짐의 내용물은 갈아입을 옷과 집들이 선물 같았다.

"오늘은 고마워. 미팅에 불러줘서"

"윳코를 위해서라면"

"허물없네"

친근한 애칭에 못을 박고, 토리사와 유이는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렌지는 대담했다.

내 어깨를 잡고 주방 벽에 밀어붙였다. 에로틱한 공간에 난 달아오르고 만다.

"싫어, 하지마"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연자는 큰 손으로 억지로 내 입을 막았다. 약간 흥분해버릴 것 같다.

"왜 마키하라의 전 여친까지 있는 거야"

"내가 불렀으니까"

"저 녀석하고도 메일 친구냐?"

"맞아"

"거기까지는 좋다. 아니, 전혀 안 좋나. 내가 묻고 싶은 건, 뭐라고 해서 그 여자를 불렀냈는지야."

"미남 집단과의 소개팅"

"...히로코는 뭐라하고 불렀어?"

"나와 너희 집의 친목회. 우리 파파가 너희 파파의 은사인데, 얼마 전에 죽었다고 했더니 왔어."

"거절하기 어려운 유인 대사를..."

미간을 찌푸리고 렌지는 거실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복장이 제각각인 거야."

하나는 캐주얼, 히로코는 청초한 포멀, 윳코는 승부복으로,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냐. 손님이 모이면, 알아차릴 거라고."

"각자 즐기는 거 아니야?"

어떤 이는 손수 만든 요리를 선보이고, 어떤 이는 고인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만남을 즐기고, 어떤 이는 멋진 애인을 찾는다.

시선은 다르지만, 파티의 내용따윈, 대개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렌지도 몰랐다면, 요리 선생님역을 즐겼을 것이다.

"사실은 하루토의 마마나, 미카게 사야카도 부르려고 했지만"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나도 모르겠어"

렌지는 머리를 싸매고 기절했다. 그런 연자는 사랑스러웠다. 나는 살며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귓전에서 이름을 부르자, 비명을 지르며, 렌지는 경직했다.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사람들이 물어볼 거야."

"이 자식, 이 놈…… 적당히 안 하면 진짜로 죽여버릴 테다...."

"열정적이고 멋지네. 하지만, 리미트가 다가오고 있어."

렌지는 눈을 부릅떴다.

벽에 투영되어 있는, 그림자로 된 시계 바늘.

파티가 시작되기까지, 30분과 여분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부터, 렌지의 분투가 시작되지만, 그걸 자랑하는 것은 그에게 양보하겠다.

내가 얘기하는 건 여기까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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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古事記의 신화에서, 素戔鳴尊가 퇴치했다고 하는 여덟 개의 머리에 여덟 개의 꼬리가 달린 뱀. [본문으로]
2. 歴戦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