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프렐류드 -3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 ~동&북~

 

1~7

무르 : 서쪽에 이어서, 중앙 태고의 신전도 무사히 되살아나서 다행이네!

 

카인 : 아아, 어떻게든 됐네.

 

미틸 : 카인 씨의 부상도 다 나아서 다행이네요.

 

히스클리프 : 그러니까 말이야... 카인이 실려올 때는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카인이 용감하긴 해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줘.

 

카인 : 상냥하네, 히스. 걱정끼쳐서 미안했어.

 

오웬 : 나도 병문안 가줄까? 이미 다 나아버렸으니까, 한번 더 다치게 해서 병문안 가도 돼?

 

카인 : 사양할게...

 

무르 : 슬슬 다음 땅에서 성스러운 축제를 할 때지? 다음은 동쪽일까? 북쪽일까? 남쪽일까?

 

미틸 : 혼란스러운 세상을 진정시키기 위해 성스러운 축제를 열고, 태고의 신전에서 원시의 정령들을 소환한다는 거였죠.

 

카인 : 그래. 세계를 위한 중대한 임무야. 북쪽 마법사는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으니까, 슬슬 차례가 오지 않으려나?

 

오웬 : 에에? 귀찮아...

 

미틸 : 북쪽 마법사들과 함께 하는 임무라니, 왠지 무섭네요...

 

카인 : 무서울 건 없지만, 너희는 게으름 피울 것 같아. 함께 협력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고생일 것 같네.

 

오웬 : 협력 따위도 안 할 거고.

 

히스클리프 : 북쪽 마법사랑 짝이 되면 큰일이겠구나...

 

무르 : 남일처럼 말하는데, 그런 힘들어 보이는 거에 당첨되는 건 대부분 너희들이지 않아?

 

히스클리프 : 에....?

 

스노우 : 히스클리프, 오웬. 잠깐 이리 와보게나.

 

화이트 : 다음 축제 일정이 정해졌다네! 동쪽 마법사들이, 동쪽 나라에서 축제를 여는 게야!

 

스노우 : 북쪽 마법사들은, 그들의 서포트를 하는 것이야!

 

히스 : 엣...

 

오웬 : 하아?

동쪽 마법사들이 로비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북쪽 마법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였다.

 

파우스트 : 늦어.

 

스노우 : 미안미안.

 

화이트 : 미스라를 찾는 사이에 브래들리가 없어지고 말았다네.

그 와중에 오웬도 사라져버리고 말이지.

 

스노우 : 전부 모이는 것만으로도 고생이 따로 없구나.

 

동쪽 마법사들의 선생인 파우스트가, 질렸다는 듯이 북쪽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북쪽 마법사들은 힘은 강한데, 횡포하고 제멋대로 구는 면이 있다.

반면 동쪽 마법사들은 사람을 싫어하고 폐쇄적이긴 해도, 막상 할 땐 진지하고 조직적인 행동력도 뛰어나다.

 

궁합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의논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파우스트가 곧바로 내 쪽을 봤다.

 

파우스트 : 이번 임무는 동쪽 마법사들끼리만 가게 해줘.

 

시노 : 찬성.

 

네로 : 찬성.

 

히스 : 나도... 될 수 있으면...

 

스노우 : 이보게이보게.

 

화이트 : 그리 매정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시노 : 나는 기다리는 걸 싫어해.

앞으로 뭘 할 때마다 너희를 기다려야 되는 거라면 사양이다.

 

시노가 북쪽 마법사들을 노려봤다. 북쪽 마법사들은 똑같이 노려보기는커녕, 미스라에 이르러서는 하품도 감추지 않았다.

 

미스라 : 후아암... 졸리네... 응? 뭐라고 했어요?

 

시노 : 죽인다, 네놈...

 

히스 : 시노! 상대는 북쪽 마법사들이니까…!

 

브래들리 : 그래. 착하게 구는 게 동쪽 마법사들 신상에 좋을 거라고.

 

브래들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몹시도 친근하게 네로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렸다.

 

브래들리 : 게다가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나름대로 위험한 상대라는 거잖아?

 

네로 : 팔걸이로 쓰지 마라...

 

브래들리 : 오? 뭐야? 이몸을 거역할 셈이냐?

 

네로 : 떨어져, 성가셔.

 

네로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어냈다. 브래들리는 개의치 않고 껄껄 웃었다.

 

북쪽 마법사들의 불손한 태도에, 동쪽 마법사들은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아키라 : (이번엔, 앞날이 불안하네...)

 

스노우 : 브래들리가 말한 대로, 이번에 가는 곳에는 불길한 소문이 돈다네. 우리 북쪽 마법사들의 힘이 필요할 것이야.

 

시노 : 우리들은 미덥지 않다는 거냐?

 

화이트 : 그렇게는 말 안 했구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라네. 서쪽의 축제도, 중앙의 축제도, 다른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받았잖나. 그대들도 서쪽에 힘을 빌려줬었고.

사소한 것에는 연연하지 말고, 우리의 힘에 의지하면 돼.

 

네로 : ...그래서, 불길한 소문이라니?

 

스노우 : 확실친 않으나, 마법사가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마을이 있다고 해.

 

시노 : ...마을? 마을이라는 건 인간 상대라는 거냐?

인간 따위를 상대로 질 리가 없잖아.

 

화이트 : 수상한 이야기이니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게지. 자, 지도를 봐라.

 

파우스트 : ...동쪽과 북쪽 사이에 있는, 산맥의 옆이군.

나는 가본 적이 없어. 히스클리프는?

 

히스 :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블랑셰에서도 먼 곳이라...

 

오웬 : 그러고 보니 히스클리프.

 

히스 : ....

 

오웬이 말을 걸자, 히스클리프는 흠칫하며 긴장했다.

오웬은 그 단정한 얼굴에 심술궂고 차가운 미소를 띄우고서 고개를 갸웃했다.

 

오웬 : 나랑 또 놀지 않을래?

 

히스 : ...무슨 뜻입니까?

 

시노 : 별거 아냐, 히스. 오웬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

 

시노는 히스의 팔을 잡아당기며 오웬을 노려보았다. 오웬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아키라 : (혹시, 그 일...?)

 

그들의 대화에, 중앙의 왕도에서 일어났던 소동 뒤 시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2화

시노 : ...소동이 한창일 때, 히스의 '기묘한 상처'를 알아냈어.

 

아키라 : 정말요? 어떤...

 

시노 : 흉포한 검은 짐승이 돼.

 

아키라 : 짐승...?

 

시노 : 그래. 우릴 덮쳤었어. 히스 본인은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아. 이 일을 아는 건 나, 카인, 오웬 뿐이다.

 

아키라 : 히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시노 : ....카인에게도 했던 얘기지만, 히스는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

짐승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더 속상해하겠지.

상태를 보고 내가 말하겠다. 그 녀석이 동요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내게 맡겨주지 않겠어?

 

아카리 : ...알겠어요. 부탁드립니다.

아카리 : (예민한 문제니까 끼어들지 않기로 했었는데... 그거, 아직 말 안 했구나...)

 

히스 : 뭐야, 시노... 뭐 아는 거 있어?

 

시노 : 아무것도 아냐. 오웬은 성격이 나빠. 상대해주지 마라.

 

오웬 : 헤에. 그런 말, 감당이 되겠어?

 

시노 : 시끄러워. 쓸데없는 소릴 하면, 네 비밀도 말해버린다.

 

오웬 : ......

 

미스라 : 비밀? 당신한테 비밀이 있다고요?

 

브래들리 : 약점이냐? 나중에 알려줘라, 동쪽 꼬맹아. 용돈 줄 테니까.

 

오웬이 살기를 띈 눈으로 시노를 노려봤다.

 

오웬의 비밀이라는 건, 어느 순간 갑자기 천진난만한 아이와도 같은 인격이 되는, 오웬의 기묘한 상처다.

 

오웬 : 죽고 싶은 거야? 시노.

 

시노 : 닥쳐, 같은 조건이잖아.

 

히스 : 네 비밀'도' 라니....? 시노, 대체 무슨 얘기...

 

시노 : 시끄러워. 괜찮다니까.

 

따끔한 공기를 피부로 감지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아키라 : (.....정말로 이번 일, 괜찮으려나...)

 

그때, 미스라가 천천히, 파우스트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파우스트 : ....?!

 

히스 : 선생님!

 

시노 : 어이, 미스라!

 

네로 : 진정해, 시노!

 

동쪽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바짝 경계를 했다.

 

미스라는 파우스트를 내려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말했다.

 

미스라 : 그 모자, 괜찮다 싶어서요.

 

동쪽 마법사들 : ......

 

맥이 빠진 듯이 움직임을 멈췄던 그들은 곧바로 선생님이 모욕당한 것에 분노를 터트렸다.

 

브래들리가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브래들리 : 아하하하! 겁 주지 말라고, 미스라. 동쪽 놈들은 음침한 겁쟁이들이니까.

 

시노 : 겁쟁이라고? 겁쟁이인지 어떤지 내가 보여줄까?

 

스노우 : 이보게이보게, 시노!

 

화이트 : 브래들리도 그만하게!

 

브래들리 : 아하핫! 재밌네에. 파우스트, 제자를 아낀다면, 버릇없는 짓은 못 하게 교육해두라고.

 

파우스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는 브래들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파우스트 : 스노우, 화이트. 동쪽 마을은 우리들만 가겠다.

 

스노우 : 파우스트.

 

파우스트 : 너희 쌍둥이 둘뿐이라면 동행해도 상관없다.

어떤 마물도 저들보다 위험하지는 않아.

 

오웬 : 그렇게 미움받으면, 더 따라가고 싶어지잖아. 히스클리프한테는 내가 필요할 거고.

 

히스 : ...무슨 뜻인가요?

 

미스라 : 귀찮네… 뭐가 됐든 빨리 끝내죠. 동쪽 마법사들은 구경이나 하면 되잖아요.

 

스노우 : 미스라. 이건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야.

 

화이트 : 동쪽 원시 정령의 성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동쪽 마법사들이라네. 우리는 그들을 따라 힘을 주는 게야.

 

브래들리 : 우리 북쪽 마법사들 보고, 따르라고? 그것도 급 떨어지는 동쪽 녀석들한테? 아하핫! 웃기는구만!

 

크게 웃은 브래들리는 두 팔을 넓게 벌렸다. 그리고 자신감과 박력이 넘치는 큰 목소리를 울려대며 말했다.

 

브래들리 : 알겠냐, 잘 들어! 동쪽의 음침한 마법사 놈들! 앞으로는 내가 너희들의 보스...

 

그 순간, 네로가 어디선가 꺼낸 작은 병을 흔들었다. 후추였다.

 

브래들리 : ...에, 에취!

 

브래들리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키라 : 브래들리...! 재채기를 하면 사라지고 마는 기묘한 상처 때문에…!

 

스노우 : 네로! 왜 갑자기 후추 같은 걸 뿌린 게야?!

 

핏대를 세운 네로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로 : 미안, 한계였어.

...나참, 저 녀석의 저런 점, 정말 요만큼도 안 변했잖아...

 

미스라 : ...응? 가도 되는 겁니까?

 

스노우 : 아니야, 미스라!

 

화이트 : 안 된다, 미스라!

 

미스라 : 그럼, 뒤는 맡길게요.

 

스노우, 화이트 : 미스라쨩...! 

 

미스라 : 《아르시무》

 

공간의 문을 열고, 미스라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뒤돌아보니 어느샌가 오웬도 없어져 있었다.

 

스노우 : 정말, 저 녀석들...! 금방 데려오겠다. 그대들은 여기서 기다리게.

 

파우스트 : 알 게 뭐야.

 

화이트 : 파우스트! 그리고 동쪽 자들이여, 사람을 싫어해선 안 된다네. 타인과 협력하는 것을 기억하라고 했잖... 

 

시노 : 북쪽 놈들이랑은 싫어. 가자.

 

아키라 : 저, 정말 가는 건가요?

 

네로 : 조사나 이런 건 우리끼리 하는 게 더 빨라. 성가신 마물이 나오면 놈들한테 떠넘겨버리자고.

그게 그 녀석들한테도 좋잖아? 강하다느니 약하다느니, 그런 걸로밖에 말이 안 통하니까.

 

히스 : 현자님은 마법관에서 기다려주세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아키라 : ...그렇다면, 더더욱 같이 갈게요.

 

히스 : 현자님...

 

아키라 : 스노우, 화이트. 북쪽 마법사들을 모아서 데려와주세요. 저희는 먼저 가서 사전 조사를 하고 있겠습니다.

 

스노우 : 알겠다. 모쪼록 무리는 하지 말고. 파우스트, 잘 부탁한다네.

 

파우스트 : ...아이들과 현자에게 위험이 되는 일은 하지 않아.

 

화이트 : 이것은 클로에가 준비한, 성스러운 축제의 의상이라네. 미리 입고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게야.

 

스노우 : 조심하려무나.

 

의상을 받은 동쪽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그들은 우울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3화

 

파우스트 : 이곳에 동쪽 태고의 신전이...

 

네로 : 울창한 산기슭의 마을이라... 스노우와 화이트가 준 지도를 보면 틀림없는 것 같긴 한데...

 

시노 : 이런 곳에 인간이 사는 건가?

 

파우스트 : 수원(水源)이 많아. 발밑의 흙도 축축하고, 저기엔 작은 폭포도 있어.

물만 있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지.

 

히스 : 하지만... 깨끗한 물은 아닌 것 같네요.

...이상한 냄새가 나... 동물의 시체가 썩은 것만 같은...

 

아키라 : ......?! 방금 건...

 

시노 : 비명소리로 들렸는데. 인간인가, 동물의...

 

파우스트 : 아니.

 

아키라 : 파우스트...

 

파우스 : ...조심해라. 이곳에는 마법사들을 죽이는 게 익숙한 인간들이 살고 있어.

 

아키라 : 마법사들을 죽이는 게 익숙한...?

 

시노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인간 따위에게...

 

네로 : 쉿...! 무슨 소리가...

 

히스 : ...감각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 기운이, 읽히질 않아...

 

아키라 : ...! 히스, 안색이 안 좋아.

 

히스 : 뭔가 이상해요... 평소 같았으면, 인간의 기운인지 마법사의 기운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시노 : 그냥 동물이겠지. 보고 올게.

 

파우스트 : 시노, 멋대로 움직이지 마라.

 

시노 : 너무 겁이 많잖아. 그렇게 구니까 북쪽 놈들한테 무시당하는 거라고. 그 녀석들이 오기 전에 끝내버리...

 

시노 : ....!

 

시노 앞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파우스트가 마법으로 자취를 감춘 뒤, 순식간에 시노의 곁으로 다가갔다. 시노의 팔을 잡아끌고는 그를 감싸듯 앞에 섰다.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시노와 비슷한 키의 소년이었다.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진흙투성이에 비린내가 났다. 시커멓게 더러워진 얼굴에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소년 : ...아...

 

파우스트 : ...아이인가...

 

시노 : 거봐, 말했지? 유난스러웠다고. 너, 이 근방 마을에 사는 아이냐.

 

소년 : ...그렇기는 한데... 당신들은...?

 

시논 : 우리는 현자의 마법사다. 나는 동쪽의 마법사 시노.

저게 현자고, 히스클리프에, 파우스트, 네로다.

 

소년 : …..현자의 마법사...?

 

시노 : 그런 것도 모르냐? 촌뜨기로군. 뭐, 됐어. 마을까지 안내해줘.

 

파우스트 : 아니, 안내는 필요 없어. 장소만 알려주면 돼.

 

시노 : 파우스트.

 

파우스트 : 나중에 설명하지. ㅡㅡ너, 알려줘.

 

소년은 겁먹은 듯 어깨를 움츠리면서 산 윗쪽을 가리켰다.

 

소년 : 저쪽... 좀 가다 보면 연못이 있는데... 더 올라가면 마을의 교회가 보여.

 

파우스트 : 알겠어. 고맙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겁지겁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긴 것처럼 멈춰 섰다.

 

히스클리프였다. 히스클리프도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소년은 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듯이 놀라고는 울창한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네로 : 하하... 천사라도 본 듯한 얼굴이네.

.....히스, 너 괜찮냐?

 

히스 : 응... 기묘한 냄새에, 비명 같은 소리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시노 : 빨리 마을에 가서 쉬어야겠어. 그러니까, 그 녀석을 따라갔으면 좋았잖아?

 

파우스트 :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쓴다. 마음을 어지럽히면, 평소의 힘을 쓸 수가 없어.

 

파우스트는 염려스럽게 히스클리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파우스트: 사람도, 마법사도, 동물도, 마음을 어지럽히면 불쾌해지는 것은 똑같아.

사체가 썩는 냄새와, 죽음의 소리.

 

시노 : 죽음의 소리라니, 아까 그거?

 

파우스트 : 저건 피리 소리다. 죽음의 피리라는 이름이라, 일부러 죽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

마법사의 정신을 소모시키는 도구야. 인간들이 마법사들과 싸웠을 때 사용했던 적이 있지. 히스, 눈을 감아.

 

파우스트의 말에, 히스는 새파랗게 질린 눈꺼풀을 닫았다. 그의 이마를 만지면서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웠다.

 

파우스트 : 《사티르크나트 무르크리드》

 

히스가 숨을 짧게 내쉬었다. 기분 탓인지 안색도 좋아진 것 같았다.

 

히스 : 냄새와 소리가 약해졌어...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선생님.

 

파우스트 : 감각을 약하게 만든 것뿐이야. 위험에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현자, 너도.

 

파우스트의 손바닥이 다가와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유 향기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어느샌가 불쾌한 소리나 냄새의 감각이 희미해져갔다.

 

아키라 : 아....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파우스트. 다른 분들은 괜찮나요?

 

네로 : 지금은 뭐 그럭저럭. 나도 신경이 예민한 타입이라 힘들긴 하지만...

 

파우스트 : 나도다... 동쪽 마법사들은 감각이 섬세하니까. 시노는 이상 없나?

 

시노 : 별로.

 

파우스트 일행은 감탄한 듯이 시노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시노에게 약해진 기색은 없었다.

 

산 쪽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시노는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을 가늘게 떴다.

 

시노 : 사체가 썩는다거나 죽음의 소리는, 내가 태어난 장소야. 블랑셰에 다다를 때까지 내가 기어 다니던 장소.

 

히스 : 시노...

 

시노 : 내게는 그저 옛 친구일 뿐이지. 가자.

산길을 올라갈수록 생물이 부패한 것 같은 냄새는 강해졌고, 무서운 절규도 늘어나고 있었다.

 

파우스트가 마법으로 줄여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키라 : (냄새와 소리는, 이렇게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게다가 이 어둑어둑한 경치... 버려지고 잊혀진 무덤 같아... 

흐릿하고, 외롭고, 음산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고목마저 무언가를 원망하는 것 같아 보여...)

4화

 

겨우 마을에 도착했더니, 소년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은 건지 마을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있었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검은 구멍 같은 눈으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 : 아아, 정말이다... 왔어...

 

마을 사람 : 신기하네... 손님이 오다니...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미소를 띄우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마을 사람 : 무슨 일이시죠? 길을 잃으셨나요?

 

파우스트 : 동쪽 마법사 파우스트다. 현자의 마법사로서 왔지. 동쪽 태고의 신전을 찾고 있어.

 

마을 사람 : 마법사...

 

동쪽 나라 사람들은 마법사를 기피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마을 사람 : 그렇습니까.... 보잘것없는 마을입니다만,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

 

마을 사람 : 식사하세요. 저쪽에서....

 

네로 : 아니, 됐어. 자유롭게 마을을 조사할 수 있게 해줘.

 

마을 사람 : ......... 그럼, 안내인을 붙여드리죠. 자샤, 부탁하마.

 

자샤라고 불린 건, 아까 만났었던 소년이었다. 마을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들의 앞으로 왔다.

 

자샤 : 이쪽으로 와주세요.

 

우리는 그 말만을 하고 걷기 시작하는 그의 등을 따라갔다. 갑자기, 네로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네로 : 난 중간에 빠져나갈게. 잘 둘러대줘.

 

아키라 : 네로...?

 

네로 : 이 마을 녀석들은 입이 무거운 것 같거든. 정공법 이외의 방법으로 조사해볼게.

 

아키라 : ....나쁜 짓은 안 할 거죠?

 

네로 : 바보구나, 현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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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는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이 느슨하게 웃었다. 표정과는 정반대의 말을 산뜻하게 하면서.

 

네로 : 나쁜 짓이야 하지. 마법사니까.

 

자샤 : 저기가 마을의 저장고입니다. 저긴 마을의 축사...

.....이제 끝입니다. 이 앞엔 아무것도 없어요.

 

파우스트 : 작은 마을이로군... 무엇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지?

 

자샤 : 사냥을 해서, 가끔씩 가죽이나 뼈를 팔러 갑니다. 값비싼 돌을 캤던 적도....

어라...? 한 사람 더 있지 않았나요?

 

시노 : 볼일이 생겨서. 저 교회는? 마을의 교회가 아닌 건가?

 

자샤 : 네.

 

시노 : 안내해줘.

 

자샤 : 죄송합니다... 소중한 신님이 계시는 곳이라 마을 사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파우스트 : .....무슨 신을 모시고 있지?

 

자샤는 이상하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깜빡였다.

 

자샤 : 뭐냐니, 신은 신이시죠.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저희를 지켜주십니다.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세계의 신앙은 다양했다.

신기한 힘을 가져오는 것을 정령이라고 부른다거나 신이라고 부르거나 했다. 부르는 법이 다를 뿐이지 결국 똑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아키라 : (어쩌면 동쪽 태고의 신전과 뭔가 관계가 있을지도 몰라...)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샤가 히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노 : 히스가 신경 쓰이는 거냐?

 

자샤 : 앗...

 

자샤가 붉어진 낯으로 눈을 돌렸다. 그 소년다운 행동에 그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자샤 : 죄송합니다.... 도시의 귀족스러운 사람은 처음 봐서.

 

시노 : 상관없어. 히스는 예쁘고, 멋지고, 똑똑해 보이니까 말야.

나의 주군이다. 굉장하지?

 

자샤 : 아... 네...

 

시노 : 흐흥, 얘기할 수 있게 해줄게. 히스, 자샤한테 뭐라고 말 좀 해줘봐.

자, 만져봐도 된다고?

 

히스 : 장난감 빌려주는 것처럼 말하지 마!

 

자샤는 긴장과 동경이 깃든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히스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 있지만, 낯을 가리고 있는 거다.

 

히스는 긴장을 털어내듯 숨을 내뱉고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히스 : ....히스클리프야. 확실히 귀족이긴 하지만, 대단한 건 아냐. 마을의 일을 돕는 네가 더 훌륭해.

 

자샤는 히스의 손을 빤히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손끝 부분을 움켜잡았다. 악수를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샤 : 당신도 마법사...?

 

히스 : 그래.

 

순간, 자샤는 슬픈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곧바로 결론을 내린 것처럼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자샤: 그렇구나....

 

그것을 끝으로, 자샤가 히스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덤덤하게 안내를 마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네로도 합류했다. 네로에게 귓속말을 들은 파우스트가 자샤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파우스트 :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했다. 우리가 착각했던 모양이야. 이대로 돌아가도록 하지.

 

마을 사람 : 곧 해가 집니다. 저녁 식사라도....

 

파우스트 : 아니, 필요 없어. 그럼 이만.

5화

 

우리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네로가 전해준 정보는 어둡고 소름 끼치는 내용이었다.

 

네로 : 마을 연못으로 향하는 비탈에, 그거 여러 개가 박혀있었어.

 

아키라 : 그거라면?

 

네로 : 마법사의 빗자루.

마치 묘비마냥 흔들리고 있었어. 부러진 빗자루도, 피 묻은 빗자루도, 녹슨 빗자루도 말이지.

 

야밤중에 눅눅한 바람이 불었다.

 

그렇다면, 빗자루 수만큼의 마법사가 찾아왔고, 모종의 이유로 그걸 버렸다는 게 된다.

 

(살해당해서...? 하지만, 인간이 무슨 수로 마법사를?)

 

답답해져서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무거운 구름에 휩싸여서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어둠이 무서웠다.

 

<거대한 재앙>의 빛이 그리웠다.

 

아키라 : (달을 그리워하다니, 무르같네.

아닌가... 무르는 계속 달을 좋아해왔어. 무서워했다가 싫어했다가 하지는 않아.

아까 그 애... 자샤도 그랬어. 히스를 동경했지만, 마법사라는 걸 듣고 나서는 그게 깨졌다는 얼굴을 했어.

언제는 원했으면서, 언제는 무서워하고.... 우린 형편이 좋네... 전에 파우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파우스트 : 냄새와 소리에 적응이 돼서 감각이 돌아왔다. 교회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져. 마법사는 아닌 듯한데...

 

히스 : 묘한 생물인가요?

 

파우스트 : 아니... 살아있는 느낌은 아니다만... 일단, 상황을 보고 올테니 여기서 기다려라.

 

시노 : 나도 간다.

 

네로 : 내가 갈게. 시노와 히스는 여기서 현자 씨를 지켜. 마을 사람들이 다가오면 모습을 감추고.

 

시노 : 기다려. 마물 퇴치라면 내 특기 분야야.

 

파우스트 : 너희는 대기해라. 어떤 게 숨어있을지 몰라.

 

시노 : 그렇다면 더더욱,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따라갈게.

 

파우스트 : 내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시노 : 말을 안 듣는 건 당신이겠지. 내가 있는 편이 좋아. 도움이 돼.

 

파우스트 : 알겠다. 당장 마법관으로 돌아가.

 

엄한 파우스트의 목소리에, 시노는 침묵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시노의 상심과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파우스트는 나직이 시노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우울함뿐만이 아니라, 위엄과 진심이 감돌고 있었다.

 

파우스트 : 너는 영웅이 될 남자야. 하지만, 공을 세우는 데에 급급해서 용기를 헛되이 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런 자들을 나는 몇 번이고 봐왔어.

너의 능력과 미래를,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네 힘이 필요할 땐 내가 명령한다. 다시 한번 묻지. 내 말을 들을 수 있겠나?

 

시노 : ....알았어.

 

파우스트 : 좋아.

 

파우스트는 숨을 내뱉고, 시노의 머리 위에 아무렇게나 손을 올렸다.

 

파우스트 : 히스, 시노와 현자를 부탁한다.

 

히스 : 아...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떠나려는데, 네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로 : 본의 아니게 엿본 것 같네. 옛날, 혁명군의 지도자였다는...

 

파우스트 : 사람 잘못 봤어. 가자.

 

두 사람은 어둠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아키라 : 괜찮을까요, 둘다...

 

히스 : 파우스트 선생님과 네로라면.... 시노, 너도 주눅 들지 마.

 

시노 : 주눅 든 거 아냐.

 

시노는 몸을 돌리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노 : 처음 들었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네로 : 당신도 과보호구나.

 

파우스트 : 너한테 들을 정도는 아니야.

...저기가 교회로군. 아까는 말하지 않았지만, 교회에 있는 것은 아마...

 

네로 : .....! 마을 녀석들이다...

 

마을 사람 : ...마법사들은? 벌써 마을에서 나갔나?

 

마을 사람 : 아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그놈들을 잡아다가, 마을의 사명을 다 해야 해...

 

마을 사람 :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파우스트 :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킨다고...?

너희, 대체 무슨 소리를….읍읍...

 

네로 : 쉿, 내게 맡겨. 잘 좀 맞춰줘.

 

파우스트 : 맞춰달라니...

 

네로 : ーㅡ여어! 그 마을 주민이야?

 

마을 사람 : ......!

 

네로 : 가져온 식량을 떨어뜨려 버렸거든... 저녁식사를 거절해놓고 미안하지만, 물만이라도 나눠줄 수 있을까?

 

마을 사람 : 무, 물론입니다! 마침 물통이 있습니다. 이쪽에...

 

파우스트 : .......! 이런 걸 마실리가 있겠나. 이 물에는....

 

네로 : 이 녀석은 미안!

 

파우스트 : 네로!

 

네로 : ......아, 맛있다. 목이 바짝 말랐었거든. 잘 먹었어! 당신도 마셔, 파우스트!

 

파우스트 : .............알았다.

 

마을 사람 : .......

 

네로 : ....윽....! 뭐야...?! 모, 몸이... 갑자기 저려와....!

으윽... 움직이지가....

 

파우스트 : 네로...!

 

마을 사람 : .....

 

파우스트 : ...어이, 웃기지 마. 잘 맞춰달라고? 절대 안 할 거다. 난 그런 거 해본 적이 없다고. 일어나. 이봐, 네로!

 

네로 : .......

 

마을 사람 : ........

 

파우스트 : .........

 

파우스트 : 으... 으윽... 몸이......!

 

파우스트 : ........

 

마을 사람 : .......다행이다.... 독이 돌았나 보군. 효과는 꽤 늦었긴 해도....

남은 둘을 놓친 건 아쉽지만, 저들을 짐수레에 태우고 성지로 옮기자....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우리의 신을 위해....

6화

 

그림 속 스노우 : 겨우 전부 모였다! 정말, 그대들을 쫓느라...! 밤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그림 속 화이트 : 동쪽 마법사들이 걱정이구먼! 미스라여, 공간의 문을 열게나. 서둘러서 가는 게야!

 

미스라 : 하아...

 

그림 속의 스노우, 화이트 : 미스라쨩!!

 

미스라 : 그림 속에서 그래봤자...

협력 따위 딱히 필요 없지 않나요? 그들도 필요로 하지 않던데요.

 

오웬 : 필요로 한다면 안 갈래. 필요로 하지 않는데 가는 거라 재밌는 거잖아.

 

브래들리 : 오웬은 여전히 삐뚤어졌구만... 나는 뭐, 미스라의 논리도 알 것 같다고.

동쪽 녀석들은 남들과 어울리지 않아. 개입되는 걸 싫어하고 두려워하지. 손을 빌려줘도, 빈축을 살 뿐이라고.

발을 핥고 아양을 떨라는 소리까진 안 하겠는데, 나는 나를 반겨주는 녀석한테 내 힘을 빌려주고 싶거든.

 

그림 속의 스노우 : 동쪽 마법사들이 감사함을 모르는 건 아니라네. 고독을 좋아하고 교류를 싫어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경건하고 예의 바른 자들이야.

 

그림 속의 화이트 : 그들은 조심성이 많고 경계심이 높아. 세심하고 신중한 전투법은, 그대들에게 있어서도 공부가 될 거라네.

 

미스라 : 그들은 어째서 고독을 좋아하는 겁니까? 저도 혼자서 내키는 대로 사는 걸 좋아하지만, 저와는 다른 것 같네요.

그들은 고독을 좋아하면서 고독한 자신을 싫어하고, 남을 싫어하면서 남을 신경 쓰고 있어요. 좀, 알기 어렵네요.

 

그림 속의 스노우 :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으니, 더는 상처받기 싫어서 그런 게야. 아픔을 아는 만큼 주의 깊고 정이 많은 자들이라네.

 

오웬 : 정이 많은 걸까나?

 

브래들리 :뒤끝이 많은 게 아니고?

 

그림 속의 화이트 : 그대들도 이제 알게 될 거라네. 함께 행동하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게야. 미스라여. 부탁해도 되겠는가.

 

미스라 : ...알겠습니다.

 

미스라 : 《아르시무》

자샤 : ........

 

촌장 : 자샤, 뭐 하고 있느냐...

 

자샤 : 촌장님은 가까이서 보셨나요? 금발 마법사의 얼굴을...

 

촌장 : 그래.

 

자샤 : 교회에 계신 그분과, 닮은 것 같길래...

 

촌장 : 바보 같은... 그분은 움직이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분의 충직한 하인인지 아닌지, 조용히 지켜보고 계실 뿐이야.

그 무리들은 그저 마법사일 뿐... 그분께 바치기 위한 제물로 만들어야만 해. 그게 세계가 이 마을에 맡긴 사명인 것이야.

 

자샤 : ....하지만...

 

촌장 : ...아직도, 망설이는 것인가... 마법사들에게 홀린 것일지도 모르겠군. 너의 부모처럼 조종당하고 만 거냐....

 

자샤 : 아... 아니에요, 촌장님.... 저는 조종 따위는...

 

촌장 : 괜찮다... 마법사의 암시는 고통으로 제거되지. 지금, 제정신으로 되돌려주마.

 

자샤 : .......! 그만두세요, 촌장님...!

히스 : ....선생님들, 늦네....

 

시노 : 그러네.... ...앗...

 

아키라 : 무슨 일이에요?

 

시노 : 자샤다.

....다친 것 같아.... 비틀거리면서, 교회로 가고 있어.

 

히스 : 정말이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어두워서 내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검은 덩어리가 움직이다가 툭 쓰러지는 걸로 보였다.

 

히스 : ...넘어졌어. 미동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는 건가...

 

시노와 히스는 걱정스럽다는 듯 시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둘이서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시노 : 저 녀석을 돕기만 할게.

 

히스 : 심한 부상이 아니라면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게요.  ......가도 될까요?

 

여기서 움직이지 말라던 파우스트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다친 소년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키라 : ...알겠어요. 조심하면서 가죠.

 

히스 : 네.

 

시노 : 그래.

 

우리는 빗자루를 타고 어두운 산기슭을 달려갔다.

가까워질수록, 웅크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자샤 : ....으으.....

 

시노 : 자샤!

 

자샤 : ........!  .....윽, 마법사.......

 

자샤는 겁을 먹은 듯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갔다. 비틀거리면서, 교회로 향한다.

 

시노 : 기다려, 자샤! 왜 도망가는 거야...?!

 

자샤 : .....윽, 목소리를 들어선 안 돼.... 마법사한테 조종당할 거야.... 읏...

 

히스 : 자샤! 도망치지 마! 다쳤잖아?!

 

자샤 : .........

 

달리는 자샤의 숨결은, 격하면서도 울음소리처럼 가냘펐다.

교회로 뛰어든 자샤가 낡고 묵직한 문을 닫으려 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우리는 교회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7화

 

시노 : 자샤, 왜 도망친 거야?!

.....너, 상처투성이잖아?! 누구한테 맞은 거냐?!

 

자샤 : .....윽, 외지인을 교회로 들여선 안 되는데..... 나가! 나가줘!

 

히스 : ....여기에 뭐가 있는 건데?

히스 : 《렙세바이블프 스노스》

 

히스가 주문을 외우자, 그가 움켜쥔 회중시계가 마치 랜턴처럼 희미하게 금빛으로 빛났다.

 

어둠에 파묻혀있던 교회 벽이 어렴풋이 비춰져 밝아졌다.

 

시노 : ....뭐야, 이건...!?

파우스트 : .....

 

네로 : ......

 

마을 사람 : 마법사들은 일어나지 않았군.... 이제 곧이다... 마을의 성지가... 연못이 보여....

 

마을 사람 : 저 연못에 마법사를 집어던지면, 기적의 돌이 손에 들어와... 기적의 돌을 그분께 바쳐야만 해....

 

마을 사람 : 그래... 작년에는 제물이 부족했던 거야. 그분의 분노는 과격해서 심한 피해를 초래했었어....

 

마을 사람 :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을 일으킬 순 없지... 이것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우리의 역할인 거다…

 

네로 : (...이 녀석들....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을 사람 : 자, 도착했다.... 마법사들을 집어던지자...

 

마을 사람 : 교회에 계신 그분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기적의 돌을 바치자...

 

파우스트 : (교회에 있는 그 분....? 교회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강한 마력은 느꼈지만, 살아있는 기운은 없었다.)

 

파우스트 : (그곳에 있는 건, 아마...)

교회의 교단 위쪽에서 발견한 그것을, 처음에는 석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석상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산 채로 결정화된 것처럼.

 

뭔가를 원하는 것처럼 괴로운 눈빛으로 어딘가로 손을 뻗은 그 청년은, 히스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의 발밑에는, 그를 위해 바쳐진 듯한 수많은 마나석이 쌓여 있었다. 마나석이라는 건 마법의 힘을 지닌 값비싼 광석이다.

 

나의 세계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조그만 마을의 석상 앞에 다이아몬드가 쌓여있는 듯한, 이상한 광경이었다.

 

히스 : .....돌이 된 마법사....

 

아키라 : ...돌이 된 마법사? 죽은 마법사라는 건가요...?

 

히스 : ...네. 마법사는 죽으면 돌이 됩니다. 보통이라면 부서져서 조각이 됩니다만....

분명 이 마법사는, 무슨 사정이 있어서 돌이 된 후에도 부서지지 않았던 거겠죠....

 

시노 : ....돌이 된 마법사는, 처음 봤어. 히스는 본 적이 있어?

 

그렇게 묻자마자, 시노는 깨달은 듯했다. 히스는 동료를 절반 잃었다.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을 함께 했던.

 

히스는 슬프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흐릿하게 말했다.

 

히스 : ...저번 싸움에서 봤어. 우리의 스승도 이렇게 돌이 됐어.

 

시노 : .......그런가...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시노가 침묵했다.

 

그때, 분노로 떨리는 자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샤 : 무슨 짓을 한 거야....

 

히스 : 자샤....

 

자샤 : 외지인에게 모습을 내보이면, <거대한 재앙>의 화신께서 격노하신단 말이야!

 

시노 : <거대한 재앙>의 화신? 이 녀석이?

 

자샤 : 이 녀석이라고 하지 마...! <거대한 재앙>의 무서움을 모르는 거야...?! 저번에도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어!

 

우리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거대한 재앙>에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이 세계를 지켜왔어!

 

서슬 퍼런 자샤의 태도에, 우리는 당황했다. <거대한 재앙>과 싸우는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 건 우리들일 것이다.

 

선발된 현자의 마법사들... 백합의 문장... 기묘한 상처... 여러 가지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도 자샤의 진지함에, 우리가 잘못돼있는 것인가 하고, 기세에 눌릴 것만 같았다.

 

아키라 : 아... 아니에요, 자샤. <거대한 재앙>과 싸우는 건 우리고, 이 석상은 죽은 마법사....

 

자샤 : 뭐라는 거야?! 우리의 고생은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과 싸우고 있다고?!

하늘에 있는 <거대한 재앙>은 이분의 영혼이야! 여기에 있는 육체를 얻기 위해서 <거대한 재앙>이 이 마을로 찾아오는 거라고!

그 증거로,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면 마을의 연못은 요동치고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찬란하게 빛나!

너희는 그런 것도 몰랐잖아!?

 

우리에게 일갈한 자샤는, 교회 구석에 놓여있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8화

녹슨 칼날이 마치 피 같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핏발 선 자샤의 눈빛이 더 흉흉했다.

 

자샤 : 너희는 역시 거짓말쟁이들이야! 연못에 던져 넣고 기적의 돌로 만들어주마!

아아, 부디 그걸로 용서해주시길...

 

시노 : 자샤, 관둬. 도끼 내려놔라.

 

자샤 : 시끄러워.....!

 

시노 : 닥치고 들어! 세계를 지키는 건 우리다. 너희들이 아니야.

 

자샤 : 우리의 역할이야....!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목숨을 걸고 맡아왔어! 마법사를 제물로 만들고, 기적의 돌을 재앙에 바쳐서....

 

시노 : 틀렸어! 이건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아냐! 너희는 의미 없는 망상으로 죄없는 마법사들을 죽여왔을 뿐이다!

 

자샤 : 그럴 리가...! ....윽, 그럴 리가 없어! 그럼, 이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

 

시노 : 그래. 버려진 무덤 같은 마을. 그뿐이다.

 

히스 : 시노.....

 

자샤 : ......윽, 너....!

시노 : 나도 그랬어! 부모에게 버림받고, 세계에 잊혀졌었어. 아무것도 없었지.

그래서, 너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혼자서 살아가고, 혼자만의 세계에 있었어.

세상을 떼어놓고 고독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잊어버리고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니까.

 

자샤 : .........

 

시노 : 나 이외의 사람들은 전부 바보고, 약하고, 시시하고, 가치가 없다. 나도 가치가 없지만, 너희들도 없다, 라면서.

이 마을은 고독을 지나치게 악화시켜서, 닫힌 세계의 망상까지 악화시켰어.

하지만 자샤는 다르잖아. 히스를 보고 흥미를 가졌었어. 귀족이나, 바깥세상의 일에.

 

자샤 : .....윽, .....아니야.....

 

시노 : 도끼 내려놔. 이 마을에서 임무를 완수하면, 너를 마을에서 데리고 나가주마. 내가 블랑셰에 닿은 것처럼 너도 어딘가에 닿을 수 있게 해주겠다. 자샤.

 

히스 : .....자샤. 부디,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래?

 

히스의 목소리에, 자샤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돌이 된 마법사'처럼, 히스클리프가 자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히스 : 나는 마법사지만, 결코 네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상처 주거나 하지 않을게.

 

자샤 : .......읏....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샤가 천천히 히스에게 다가갔다. 히스는 안도하며 부은 자샤의 뺨을 바라보고는 딱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히스 :  ...심하네... 대체, 누구한테 맞은 거야....?

 

그렇게 묻자마자,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자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갑자기, 시노가 소리쳤다.

 

시노 : 위험해, 히스.....!

 

히스 : 어?

 

히스가 시노를 돌아본다.

 

그 순간, 자샤가 도끼를 다시 잡고서 히스를 향해 힘차게 내리찍었다.

 

자샤 : 마법사의 암시에 걸릴까보냐...!

 

히스 : ......!

마을 사람 : 좋아... 마법사들을 연못에 집어던지자..

....아앗..! 짐수레에 마법사들이 없어....?!

 

네로 : 하아.... 어깨가 뻐근했어. 파우스트 선생, 연기 잘 하더라.

 

파우스트 : 시끄럽군.

 

마을 사람 : ......큭, 네놈들....!

 

네로 : 《아도노디스 옴니스》

 

마을 사람 : 으으... 갑자기 졸음이....

 

네로 : 이 녀석들....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구나...

 

파우스트 : <거대한 재앙>을 마법사들이 물리치고 있다는 건, 내가 태어났던 시대부터 상식이었다.

어째서 이런 오해가 생긴 거지? 그들이 일으킨 참극은, 그들의 헌신이기도 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됐었더라면...

 

네로 : 당신 같은 히키코모리였겠지. 바깥세상을 차단하고 생활하다가,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게 된 거야.

외톨이가 된다고 해서 머릿속까지 텅 비울 수는 없어. 공허가 계속되게 되면 지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이렇게 쇠퇴한 곳이니... 사는 보람이 있는 임무를, 가지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임무라는 건, 때로는 단 맛이 나기도 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놈에게는, 특히나.

 

파우스트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로 : 그거야 당신은. 지금은 굉장히 토라져있고, 부루퉁하고, 주눅 들어서 틀어박혀 있긴 해도…

 

파우스트 : 누가 토라지고 부루퉁하고 주눅 들었다는 거냐.

 

네로 : 뿌리부터가 지도자의 기질이야. 태생이 중앙이니까 말야. 자신 없었던 적 따위, 없잖아?

 

파우스트 : .......

 

네로 : 나는 자신이 없는 남자였으니까... 누구에게 요구되고 임무를 받으면 군침을 흘리면서 기뻐했어.

내 말 따윈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 상대란 걸 알고 참을성을 잃기도 하고....

'네가 없으면 곤란해' 라는 말을 들으면, 꼬리를 흔들면서 감격스러워했었지. ....정말, 꼴사납다니까...

 

파우스트 : .......옛날얘기인가?

 

네로 : 옛날얘기야. 선생한테는 불편한 음식이겠지?

 

파우스트 : 그래. 접시 구석으로 치워주지.

연못에 있는 이놈부터 손을 대기로 하자

 

네로 : ....이 녀석, 마을 사람들은 먹지 않았나 보네.

 

파우스트 : 마법사들을 실어다 준다는 걸 이해하고 있던 거겠지. 물고기 주제에 똑똑한 놈이야. 괴어라고 해야 하려나.

9화

 

네로 : .........!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같이 생긴 커다란 놈이로군!

 

파우스트 : 레모라다! 뱀처럼 몸통이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지니고 있어. 피가로의 집에서 표본을 본 적이 있지.

하지만, 이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어. 아마 교회에 있는 마법사의 돌의 힘을 어떻게 얻게 돼서 거대화된 거겠지.

빗자루에 올라타! 이놈은 독을 내뿜는다. 조심해.

 

네로 : 알겠...

......! 이렇게까지 높이 뛰어오르는 거냐!

 

파우스트 : 네로....!

 

브래들리 : 《아도노포텐스무》

 

네로 : ....브래드...!

 

브래들리 : 네로, 무사하냐?!

 

네로 : .......아아... 덕분...

 

브래들리 : 네놈, 사람이 멋있는 대사하고 있는데 후추 뿌려대지 말라고! 끝까지 못 말했잖아, 젠장.

 

네로 : .......

 

브래들리 : 뭐라고 하려고 했는지는 이미 까먹었지만 말이다!

어라, 뭐야? 화났냐? 왜 성질부리는 건데, 네로 주제에.

 

네로 : 지이이이이인짜로 네놈이랑 연을 끊어서 다행이다... 감상에 빠졌었던 아까의 나를 죽여주고 싶어...

 

브래들리 : 아? 어째서?

 

네로 : 시끄러, 저리 가.

...안고 있는 그 그림은, 스노우랑 화이트냐?

 

그림 속 스노우 : 그래! 파우스트, 네로! 무사했는가?!

 

파우스트 : 늦어.

 

그림 속 화이트 : 늦어서 미안하다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마. 성스러운 축제는 사람이 있으면 행할 수 없어!

 

그림 속 스노우 : 이리 와, 브래들리!

 

브래들리 :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네놈들의 운반 담당이 필요하다면 지금 뽑아주지. ㅡㅡ야, 너.

 

마을 사람 : 히...히익.....?!

 

브래들리 : 아하하! 그래, 쫄아라. 네놈의 주인은 나다. 내게 몸을 내놓고, 새파랗게 질려서 나의 명령만을 듣는 목각인형이 돼라.

《아도노포텐스무》

 

마을 사람 : ......

 

브래들리 : 이 그림을 들고 다니면서, 이놈들의 말에 따라라.

 

마을 사람 : ...알겠습니다...

 

브래들리 : 그럼 이만, 할배들.

 

그림 속 스노우 : 사람을 조종하다니, 나쁜 아이로구나, 브래들리.

 

그림 속 화이트 : 나쁜 아이로구나. 허나, 별 수 없지. 미안해, 아저씨. 저쪽으로 가줄 수 있어?

 

마을 사람 :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 기다려! 축제 준비를 하는 거냐?! 여기 있는 거대 레모라는 어쩌고?!

 

미스라 : 금방 치워줄게요.

 

파우스트 : ....미스라…!

 

미스라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을 사람 : .........?!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왜 이런 곳에서 잠들었지...

 

마을 사람 : 저거 봐...! 수면이 요동치고 있어...! 연못 위에 빨간 머리 남자가...!

 

미스라 : 안녕하세요.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입니다.

안심하세요. 호숫가에서 자라서 낚시는 잘 하거든요.

 

미스라 : 《아르시무》

 

마을 사람 : ....으아아아...! 물보라가...!

 

브래들리 : 대범한 녀석. 저 큰 괴어를 공중에 들어 올릴 셈이냐.

 

마을 사람 : 연못에서 나쁜 짓을 하면...! <거대한 재앙>의 화신의 분노를 산다고!

 

마을 사람 :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평소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무서운 물고기로 변해버려....!

 

마을 사람 : 그리고, 마을의 수원들에서 날뛴단 말이다...!

 

파우스트 : <거대한 재앙>의 화신 따윈 없어. 이 레모라와 교회에 있는 마법사의 돌은 별개다.

너희는 마법사의 돌로부터 힘을 얻어 살아가는 이 괴어를, <거대한 재앙>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마을 사람 : ...바, 바보 같은... 우리가 제물을 바쳐왔던 상대가, 그저 마물이었다고....?!

 

파우스트 : .....잠깐, 마을 수원들에서 날뛴다고? 혹시, 땅속에서 수원이 연결되어 있나?

 

마을 사람 : 그래... 비가 내리면, 산비탈 곳곳에서 물이 쏟아져.

 

파우스트 : ... 설마...

 

네로 : 어이! 파우스트, 어디 가?!

 

미스라 : ....몸통이 꽤 기네. 공중에 들어올려지지가 않아. 이거, 정말로 레모라입니까?

 

파우스트 : 미스라...!

 

미스라 : 파우스트...

 

파우스트 : 무턱대고 공격하지 마! 괴어 레모라에게는 기묘한 생태가 있다고!

 

미스라 : 기묘한 생태?

 

파우스트 : 레모라는 약해지면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개체를 하나로 연결해서 다두(多頭)의 레모라로 변한다.

그 형태 그대로 마나석의 강력한 힘을 얻고, 게다가 <거대한 재앙>의 영향을 받아 거대화되었다면....

 

미스라 : 하아....?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죽여버리면 되잖아요.

 

파우스트 : 미스라...!

 

미스라 : 《아르시무》

미스라 : 머리를 날려줬다. 이걸로 끝....

......? 무언가에 이끌려가는 것처럼, 레모라가 물속으로 가라앉았어....

 

브래들리 : 미스라 녀석, 레모라 머리를 날려버렸구만.

 

네로 : .......?! ....땅이 흔들린다...

 

마을 사람 : 아앗, 저거 봐...! 산비탈 곳곳에서 일제히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

 

마을 사람 : 이제 끝이다...! <거대한 재앙>이 화내고 있어...! 이 세계는 망했어...!

 

네로 : ......!

 

브래들리 : 저건 뭐지?! 물보라가 일어난 곳에서, 레모라 얼굴들이 튀어나왔다!

10화

마을 사람 : 꺄아아아아악!

 

마을 사람 : <거대한 재앙>이 나타났어...! 마을이 멸망한다...!

 

그림 속 스노우 : 뭐라....! 연못에 정착했던 것은, 다두의 레모라였나!

 

그림 속 화이트 : 미스라에게 머리가 날아가서, 마을에서 날뛰기 시작했구나!

 

그림 속 스노우 : 이 정도로 거대한 레모라가 땅속에서 머리를 내밀다니... 잘도, 훌륭하게 자라지 않았는가.

 

마을 사람 : 살려줘...!

 

그림 속 화이트 : 염려 말거라! 우리가 곁에 있단다...! 그림 속에서 나가야겠구나, 스노우.

 

그림 속 스노우 : 알겠다네. 그림자가 뻗어나는 범위로만 돌아다닐 수 있다만, 사람들을 지켜보자. 아저씨, 잘 부탁해.

 

그림을 안은 마을 사람 : ...알겠습니다...

 

그림 속 스노우, 화이트 : 하나 둘.... 음음음....

 

스노우, 화이트 : 《노스콤니아》

히스 :  ....읏, 크윽......

 

시노 : 히스....!

자샤! 잘도 히스를.....!

 

자샤 : ......윽, 너희들이...! 너희들이 나쁜 거야....!

 

아키라 : 히스...괜찮아요?!

 

나는 황급히 히스에게로 달려갔다. 어깨부터 가슴까지가 흠뻑 젖어있다. 히스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며 웅크리고 있었다.

 

히스 :  ....윽, 으으으...

 

아키라 : 히스클리프! 히스! 이걸로...

 

지혈을 위해 상의를 벗어서 그의 상처를 꾹 누르려 했는데, 히스가 거칠게 내 손을 뿌리쳤다.

 

아키라 : ......읏, 히스....?

 

그답지 않은 행동이, 처음엔 통증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고통을 참는 숨결이 점차 신음하는 듯한 소리로 변해갔다.

 

쓸쓸하고 상냥한, 비 오는 날의 창문 같은 히스의 푸른 눈동자가, 야수같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털을 곤두세우는 짐승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을 바닥에 놓았다.

 

이상하리만큼 손톱이 길어져 있다.

 

아키라 : (설마.....검은 짐승이 된다던 기묘한 상처....)

 

아키라 : 히... 히스클리프...! 시노, 히스가...!

 

자샤를 몰아붙이던 시노가 우리 쪽을 돌아보는 순간, 땅이 거세게 울렸다.

 

시노 : ....윽, 뭐야...?

 

자샤 : <거대한 재앙>을 화나게 했어... 이 세계는 이제 끝장이야....

 

시노 : 쳇...

 

혀를 찬 시노는 자샤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았다. 마법으로 도끼를 태워서 질척한 철로 녹여버린 뒤, 우리 옆까지 달려왔다.

 

시노 : 도끼가 녹슬어 있었어. 감염이 될지도 몰라. 마법약으로 치료를...

 

달려오는 시노를 견제하기라도 하듯이, 히스가 목구멍 깊숙하게 신음했다.

 

그의 이변을 눈치챈 시노도 말을 잃었다.

 

시노 : ...히스...

 

히스 :  ........

 

아키라 : ......아앗.....!

 

나는 히스의 가슴께로 퍽 끌려들어갔다. 그 가차 없는 힘에, 쥐었던 주먹이 풀렸다.

 

아키라 : ....윽...

 

시노 : 현자...!

 

흉포하고 차갑고 뜨거운 두 눈이, 사냥감을 내려다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 입은 어깨는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

 

품위 있게 미소 짓던 그의 입가에는, 날카롭고 섬뜩한 이빨이 보였다. 새파랗게 질려가는 내 귀에, 시노의 목소리가 닿았다.

 

시노 : 현자, 괜찮아?!

 

아키라 : 괘... 괜찮아요...

 

시노 : 다행이다. 반드시 구해줄게. ....움직이지 말고. 히스를 자극하지 마.

 

공포와 긴장으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와중에, 차분한 시노의 목소리가 믿음직스러웠다.

 

그저, 점점 강해지는 땅의 진동이 오싹했다.

 

크르르르, 히스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섞여서....

고고고... 아래쪽에서 무서운 기세의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 어째서...?)

 

시노 : 히스, 착하지..... 그래, 내 눈을 봐. 한 번에 잠들게 해줄.....

 

그 순간, 대량의 물보라가 바닥에서 솟구쳤다.

 

아키라 : ......!

 

자샤 : 으아아아악!

 

자샤가 비명을 질렀다. 물보라와 함께 나타난 것은, 시노의 몸만한 물고기 머리였다.

 

마름모 모양의 입에는 이빨이 빽빽하게 박혀 있고, 보름달 같은 금색 눈알을 크게 뜨고 있었다.

 

시노 : 무슨....!

 

물이 튀어 오르는 속도로, 물고기 머리가 이동했다. 그리고는 시노의 몸 반쪽을 물었다.

 

시노 : ........큭.

 

아키라 : ......시노.....!

 

어렴풋한 방 안에서, 히스의 눈도 물고기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 : 우와아아아!

 

마을 사람 : 꺄아아아악!!

 

미스라 : 여기저기서 비명이. 왠지, 큰일 같네요.

 

파우스트 : .......크윽....!

 

미스라 : 와앗.

 

파우스트 : 그러니까 말했잖아! 함부로 자극하지 말라고!

 

미스라 : 당신, 알고 있는 겁니까? 동쪽의 마법사 따위가 누구의 옷깃을 잡고 있는 건지....

 

파우스트 : 그래서 뭐?! 저 중에는, 현자와 시노와 히스가 있어!

만약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천년 뒤까지 저주해서 너를 죽여주마!

 

미스라 : .....역시, 뒤끝이 많은 거였잖아요...?

 

파우스트 : 알아들었나!

네로, 아이들을 찾으러 가자. 너도 분담해서 찾아줘!

 

네로 : 그래!

 

브래들리 : 이몸도 도와주지. 뭘 쳐먹고 이렇게 거대해진 건지, 고생 꽤나 시킬 것 같은 놈들이구만.

이리 와, 네로. 옛날처럼 날뛰어주자고.

 

네로 : ........

 

브래들리 : 뭐야. 따라오라니까.

 

네로 : 이젠 옛날이 아냐. 난 같이 가지 않겠어.

 

브래들리 : .....

 

네로 : 그 녀석들을 찾으면, 부탁할게.

11화

 

아키라 : 시노! 시노...!

 

섬뜩한 거대어에게 물려서 어딘가로 끌려갈 뻔한 시노를 필사적으로 쫓았다.

 

시노 : ...윽, 도망쳐, 현자...

 

아키라 : 싫어요...! 시노, 마법을 써서....!

 

시노 : 《맛차......》 ....크윽...

 

시노를 물고 있는 거대어가, 물보라와 자갈을 흩뿌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교회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려 했다. 나는 전력으로 달렸다. 조금만 더, 이제 곧 시노에게 손이 닿을 것 같다.

 

(분명, 시노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마법사들에게 닿으면, 신기한 힘을 줄 수 있었어.

나는 시노를 도울 수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싫어...!)

 

손끝을, 필사적으로 시노에게 뻗었다. 닿을 뻔한 순간, 등에 들이닥친 충격으로 넘어졌다.

 

아키라 : ....윽, ....히스....

 

나를 깔아뭉갠 히스가 차가운 눈으로 입맛을 다셨다. 금빛이었던 머리가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시노 : ...큭....현자....! 히스....

 

괴로워하는 시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이제 끝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키라 : ......!

 

머리가 세 개 달린 커다란 개가, 어둠을 뚫고 달려와 거대어의 목덜미를 물었다.

 

(뭐야?! 저 개...?!)

 

거대어는 고통스러워하며 나가떨어졌다. 이윽고 큰 입을 쩍 벌렸다.

 

피투성이의 시노가, 그 안에서 굴러떨어졌다.

 

시노 : ......윽, 으으....

 

아키라 : 시노....!

 

시노에게 달려가려 해도, 히스에게 짓눌려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옆에 검은 구두가 보였다

 

뒤이어 트렁크가 털썩 놓였다. 나는 그 트렁크를 알고 있다. 오웬의 마도구다.

 

아키라 : ....오웬...!

오웬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웬 : 여어. 현자님. 도와줄까?

 

나는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웬이 시시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오웬 : 그렇게 간단히 부탁받으면 재미없어.

 

그 순간, 목구멍의 울림을 더욱 키운 히스가 오웬에게 달려들었다.

 

오웬은 슬그머니 몸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 히스의 손목을 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을 확인한 그가 기쁘게 웃었다.

 

오웬 : 또 짐승이 되려고 하네, 동쪽의 귀공자는.

그래도, 나랑 놀기에는 아직 이르려나. 다음에 보자. 《쿠레 메미니》

 

주문을 듣자마자 히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풀썩, 바닥 위로 무너져내렸다.

 

아키라 : 히스....!

 

쓰러진 히스의 건너편에는, 개가 우적우적 거대어의 얼굴을 먹고 있었다.

 

세 가지 얼굴 중 하나가 오웬을 돌아보고는 으르렁거렸다. 이윽고 다른 두 얼굴 모두 앞니를 드러내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아키라 : 어... 어째서 오웬을 위협하는 거예요?

 

오웬 : 내가 싫은 거야. 항상 트렁크에 가둬놓으니까.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끝내버리자.

 

개가 무서운 포효를 하며 오웬에게 달려들었다. 오웬은 트렁크 뚜껑을 열면서 다시 주문을 외웠다.

 

오웬 : 《쿠아레 모리트》

 

머리가 세 개 달린 개는, 환상처럼 트렁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을 사람 : 꺄아아아악!

 

네로 : 빨리 도망쳐! 지반이 탄탄한 곳으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마을 사람 : 우와아아! 여기에도...!

 

네로 : ....젠장! 한 마리가 더....

 

브래들리 : 《아도노포텐스무》!

흥, 별거 아니잖아!

 

네로 : 브래드...

 

브래들리 : 어.

 

네로 : .......그쪽을 부탁해! 나는 마을 사람들을 유도할게!

 

브래들리 : 아아, 맡겨둬!

 

미스라 : 이런이런, 머리가 얼마나 더 있는 겁니까? 나왔다 싶으면 도로 숨고, 귀찮네요... ...응?

 

촌장 : 그만둬! <거대한 재앙>의 분노를 건드리지 마라! 이대로라면 세계가...

 

마을 사람 : 촌장님! 촌장님 바로 뒤에, 입을 크게 벌린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있어요!

 

촌장 : ......!

 

마을 사람 : 촌장님을 노리고 있어요! 움직이지 마세요...!

 

촌장 : ....큭....

 

미스라 : 어쩔까요? 죽일까요? 안 죽여도 되나요? 당신은 잡아먹힐 텐데요.

 

촌장 : .......윽, 사...살려줘.....

 

미스라 : 《아르시무》

 

촌장 : 하...하아... 거... <거대한 재앙>이...

 

미스라 : 이거, 먹을 수 있을까요. 흙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데.

.........? 살아남은 레모라들이, 교회 쪽에 모여서...

12화

 

아키라 : 시노! 시노, 정신 차려요....!

 

시노 : .......윽, 히스는.....?

 

아키라 : 무사해요. 오웬, 시노 좀 도와줘요!

 

오웬 : 헤에. 이 마법사의 돌, 마력이 굉장하네. 왜 부서지지 않은 걸까? 죽는 순간에, 마법으로 형태를 유지한 걸까?

혼자서 돌이 되는 건 외로우니까,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랬던 걸지도. 후후. 나, 여기서 죽겠노라, 하고.

 

아키라 : 오웬...! 시노가...!

 

자랴 : ........읏, 저, 상처를 지혈할게요. 시노... 시노, 힘내.

 

아키라 : 자샤... 고마...

.....! 물고기 얼굴이, 세 개나 더 나타났어....!

 

자샤 : ......으으, 이...이제 끝이야...

 

오웬 : 다두의 레모라….. 마력이 약해져서 마법사의 돌을 노리러 온 거구나. 안 줘. 이건 내 거야.

 

아키라 : 어디 가는 거예요, 오웬!

 

오웬 : 이 돌을 숨길 거야. 미스라한테 들키면 뺏겨버리는걸. 그건 절대 싫으니까.

 

아키라 : 부탁이에요! 도와줘요! 지금은 그럴 때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오웬은 돌이 된 마법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진 지점을 바라보며,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아키라 : ...거, 거짓말이지....

 

자샤 : .......! 이쪽으로 온다...!

 

아키라 : ........!

 

나는 엉겹결에, 떨어져 있던 시노의 대낫을 주워들었다.

 

아키라 : 자샤, 내려가세요! 여... 여기는 제가....!

 

자샤 : 다, 당신도 마법을 쓸 수 있나요?!

 

아키라 : 못 써요! 하지만, 어떻게든 될 거예요! 이건 영웅의 낫이니까...!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불렸던 시노를 떠올리며, 기도하듯이 낫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시노 : .......그 말대로야....

 

시노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흘린 피로 얼굴이 더럽혀졌지만, 눈동자만은 생기를 잃지 않고 괴어를 노려본다.

 

시노 : 그 녀석을 나한테 줘.... 당신은 내가 지킨다. 내 역할이야.

 

히스 :  ....윽, 현자님... 위험해, 도망가세요...

 

시노에 이어서, 히스클리프도 몸을 일으킨다. 너덜너덜 상처 입은 꼴로도, 두 사람은 우리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가슴이 꽉 조였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도 도망가라는 말도 할 틈이 없이, 거대어 머리 세 개가 다가왔다.

 

그 순간, 어둠에 달빛이 비추는 것처럼 진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우스트 : 《사티르크나트 무르크리드》

 

눈을 뜨자, 자신의 마도구인 거울을 공중에 띄운 파우스트가 우리를 감싸듯 서 있었다.

 

거대어들은 거울로부터 넘치는 빛을 받고는, 뭔가의 힘에 짓눌린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키라 : 파우스트...!

 

파우스트 : 늦어서 미안하다.

 

파우스트는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자책하듯 씁쓸한 얼굴을 했다.

 

파우스트 : 시노.... 히스... 내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큭, 끝내주마! 지옥의 괴어놈들!

 

네로 : 파우스트!

 

네로의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들었다. 빗자루로 하늘을 날아온 네로가 파우스트 옆에 섰다.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를 지키려는 것처럼, 등을 맞대고 선 파우스트와 네로를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동쪽 마법사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다친 동료가 있을 때는, 동료가 위험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달려와서 하나로 모여든다.

 

혼자서 도망가는 것도, 혼자서 숨는 것도 가능할 텐데.

 

그들의 그런 점이 좋다.

 

시노 : .....파우스트.... 네로.....

 

네로 : 애썼구나. 이제 괜찮아. 집에 돌아가면, 따로 빼놨던 레몬파이 구워줄게.

 

시노 :......으, 해냈다....

 

파우스트 : 이걸로 끝이다.

《사티르크나트 무르크리드》

 

네로 : 《아도노디스 옴니스》

 

솟구치는 눈부신 빛 속에서, 오싹한 거대어의 머리가 순식간에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간다.

 

자샤는 시노의 상처를 지혈하면서, 숨죽이며 그 광경에 빠져 있었다.

 

거대어의 머리들이 전부 소멸했을 무렵, 나머지 마법사들도 교회로 달려왔다.

 

스노우 :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네! 현자여, 무사했는가?!

 

미스라 : 다른 물고기들도 모아서 죽여놨습니다.

 

화이트 : 시노! 히스클리프! 아아, 크게 다쳤구나, 딱하게도.... 바로 치료해주마.

 

시노 : ....볼품없었어...

 

쌍둥이의 치유 마법을 받으면서, 시노가 작게 중얼거렸다. 시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축 늘어져있었다.

 

나는 시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키라 : 멋졌어요. 계속.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시노....

 

시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걱정스러운 시선 끝에, 히스도 창백하게 웃고 있었다.

 

히스 :  나, 폐를 끼쳤던 걸까... 중간부터 기억이 흐릿해서....

 

시노 : 도끼에 찔려서 의식을 잃었거든.

 

히스 :  ......그게 다야? 뭔가..... 기묘한 꿈을 꾼 듯한....

 

시노 : 그것뿐이야.

 

시노는 아직 말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13화

자샤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교회 안에는 우리들만 남게 되었다.

 

새벽 전까지 시노와 히스도 꽤 회복됐다. 마을 주변에 마법진 준비를 한 파우스트와 네로도 돌아왔다. 성스러운 축제를 치를 준비가 됐다.

 

파우스트 : 그럼 시작하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부탁한다.

 

미스라 : 알겠어요.

 

파우스트는 눈을 감았다.

 

파우스트 : 《사티르크나트 무르크리드》

 

아키라 : .....!

 

세계에서 빛이 사라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쭉 늘어나는 듯한, 작은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충격이 덮쳐왔다.

너무나도 겁이 나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랬더니 갑자기 외로워졌고, 고립된 것처럼 불안해졌고, 고고한 강함을 느꼈다.

혼자일 때에만 알 수 있는,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강해져갔다. 나를 닮은 기운이 다가온다.

 

아키라 : .....!

 

눈을 뜨니, 그곳은 신전이었다. 별과 달빛뿐인 고독한 신전이다. 그런데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이 들려왔다. 성스러운 축제의 음색이었다.

 

동쪽 마법사들이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에 희미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시노 : 《맛차 스디파스》

 

히스 :  《렙세바이블프 스노스》

 

네로 : 《아도노디스 옴니스》

 

파우스트 : 《사티르크나트 무르크리드》

 

어느덧 나타난 북쪽의 마법사들도, 동쪽의 마법사들을 지원하듯 주문을 외웠다.

미스라 : 《아르시무》

 

오웬 : 《쿠레 메미니》

 

브래들리 : 《아도노포텐스무》

 

스노우, 화이트 : 《노스콤니아》

 

그러자, 별빛보다도 눈부시게 태고의 신전이 빛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빛의 기둥이 신전 중앙에 우뚝 섰다. 마법사들을 희미하게 감쌌던 빛이 빛나면서, 거대한 기둥으로 유성같이 빨려 들어갔다. 번뜩이는 눈부심에, 시야가 하얗게 흐려져간다….

이렇게 해서, 동쪽의 성스러운 축제는 끝이 났다.

 

네로 : 하아.... 겨우 마법관으로 돌아가네…

 

파우스트 : 시노, 히스, 다친 곳은 괜찮나?

 

시노 : 아아.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히스 : 자샤도 사과해줬고, 괜찮아요.

 

파우스트 : ....다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너희를 위험한 임무에 데려가는 건 앞으로 삼가도록 하지.

 

히스 :  그런 말씀 마세요. 다음부터는 더 열심히 할 테니까...

 

시노 : 너는 선생이잖아. 그럼, 좀 더 우릴 훈련시켜서 강하게 만들어달라고.

 

파우스트 : ...알았다. 다음 수업부터는 더 엄격하게 하지.

 

네로 : 나는 상냥한 게 좋은데....

 

스노우 : 주민들도 마을로 돌아왔다네! 그러나 몇 번을 설명해도, 현자의 마법사 얘기는 믿어주질 않는구먼.

 

화이트 : 자신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계를 지켜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해.

 

스노우 : 지금도 저렇게 멀리서 우릴 보고 있지 않은가.

 

네로 : .....이봐, 너희들!

 

촌장 : ....뭐, 뭐야...

 

네로 : 지금까지 수고했어. 당신들 덕분에 살았어. 세계를 지켜줘서 고마워.

 

촌장 : ......

 

네로 :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우리의 일이 됐어. 이제, 그런 힘든 생각은 안 해도 돼.

당신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야. 이 마을을 개척할 수도 있고, 이 마을을 떠나 자유롭게 살 수도 있어.

 

촌장 : ...미, 믿을까 보냐... 마법사가 하는 소리 따위...

 

자샤 : 믿어요!

 

촌장 : ....자샤...

 

자샤 : 저는 믿어요... 현자의 마법사님들을...

마을을 구해줘서 고마워.

 

시노 : 또 보자, 자샤. 중앙의 나라에 올 일이 있으면 마법관에 들러라.

 

히스 : 블랑셰에도 놀러 와.

 

시노와 히스가 자샤에게 손을 흔든다. 자샤도 맑은 눈동자로 둘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브래들리 : 그럼, 돌아갈까?

 

미스라 : 그런데 오웬. 당신 트렁크 안에서 강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희소가치가 높은 마나석이라도 들어있는 겁니까?

 

오웬 : 몰라. 기분 탓 아냐? 너야말로 그 큰 물고기 시체, 어디다 쓰려고?

 

미스라 : 마법관에서 구워볼까 해서요.

 

네로 : 어이, 주방 쓰지 말아 줄래...

 

힘든 임무 뒤인데도 화기애애한 대화에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선명하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되살려낼 태고의 신전은, 앞으로 두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