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프렐류드-5

긍지와 축제의 프렐류드 ~북&중~

 

1화

 

스노우 : 오즈.

 

화이트 : 오즈여.

 

오즈 : .........

 

스노우 : 머지않아 북쪽의 성스러운 축제를 열 거라네. 북쪽 태고의 신전을 되살려, 원시의 정령들을 불러오는 것이야.

 

화이트 : 북쪽 성스러운 축제도 끝나면, 다섯 나라의 모든 신전이 되살아나는 거라네. 혼란스러운 세상도 조금은 안정될 테지.

 

스노우 : 동행자는 중앙의 마법사들이라네. 힘을 빌려주겠나, 오즈여.

 

오즈 : .....파우스트에게서, 북쪽 마법사들이 동행했던 동쪽 축제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노우 : 아, 그거 말이지.

 

화이트 : 동쪽과 북쪽의 찰떡같은 호흡으로 해결했던 그거 말이지.

 

오즈 : …...북쪽 마법사들이 잘 따르지 않아서, 동쪽 젊은 마법사들이 큰 부상을 입었다던데.

 

스노우 : 아아, 그런 의견도 있지.

 

화이트 : 그게 말이야, 우리 애들은 좀 집단행동이 익숙하지 않다고나 할까.

 

오즈 : ......중앙 마법사들은 아서를 비롯해서 카인도 리케도, 사명감이 강하고 두려움을 몰라.

자신보다 강한 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맞서지. 얼마 전에는 아서와 카인이 죽을 뻔했다.

 

스노우 : 알지알지.

 

화이트 : 오즈 선생님은 애들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로구나.

 

오즈 : .......동행은 거절한다.

 

스노우 : 오즈여! 그대가 북쪽 마법사들을 거느리지 않으면, 누가 거느리냔 말이야!

 

오즈 : 너희가 이끌어라.

 

화이트 : 당치도 않아! 우리의 전성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나! 게다가, 북쪽 원시 정령은 성질도 난폭해!

 

스노우 : 그래그래! 그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곤란해!

 

오즈 : 알 게 뭐냐.

 

스노우, 화이트 : 우와아, 너무해...

 

아서 : 오즈 님, 무슨 얘기 중이셨습니까?

 

오즈 : ......너희들.....

 

화이트 : 오오! 아서! 카인과 리케도 왔구나!

 

리케 : 혹시, 성스러운 축제 얘기인가요?

미틸에게 남쪽 축제 이야기를 듣고, 저희도 슬슬 부름을 받을 때가 아닌가 하고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카인 : 아직 성스러운 축제를 하지 않은 나라는, 분명 북쪽이었지.

 

스노우 : 그렇다네. 그대들, 힘을 빌려주겠는가?

 

카인 : 물론이지!

 

아서 : 기꺼이!

 

리케 : 저라도 괜찮다면 보태겠습니다!

 

오즈 : .......잠까....

 

스노우, 화이트 : 됐다ㅡ!

 

카인 : 하지만, 북쪽 나라의 임무라니 만만치 않겠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아서 : 걱정 마. 나는 그곳에서 자랐으니까. 두 사람한테 북쪽에서 지내는 법을 알려줄게. 언 호수 위를 활주하는 방법이라던가.

 

리케 : 언 호수 위에서 미끄럼 타는 건가요? 와아, 재밌겠다!

 

스노우, 화이트 : 재밌겠다, 재밌겠다!

 

아서 : 오즈 님, 오즈 님과 함께 북쪽 나라에 가는 건 오랜만이네요.

 

오즈 : ...............알겠다. 북쪽 나라의 축제에 동행해주지. 단, 조건이 있다.

 

스노우, 화이트 : 조건?

 

오즈 : 내가 부족함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시간…

이른 아침에 나가서,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겠다. 북쪽 마법사들에게도 그렇게 전해둬라.

그림 속 스노우 : 미스라, 오웬, 브래들리.

 

그림 속 화이트 : 그대들, 우리의 명을 받들게나.

 

미스라 : ...하?

 

그림 스노우, 화이트 : 음음...!

 

어른 스노우 : 읏차, 그림 속은 역시 답답하구나.

 

어른 화이트 : 둘만의 세계도 좋지만, 조금 불편한 것이야.

 

오웬 : 뭐야, 갑자기 어른 모습을 하긴…

 

브래들리 : 쳇... 그런 모습이라도 안 쫀다고.

 

어른 스노우 : 거짓말거짓말. 효과있어효과있어.

 

어른 화이트 : 눈을 못 마주치고 있지 않은가. 이 모습이 더 강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대들, 의외로 겉모습에 좌지우지된다니까.

 

미스라 : 시끄럽네요... 저희한테 뭘 시키려는 건데요.

 

어른 스노우, 화이트 : 일찍 자기 라네.

 

오웬, 브래들리 : 일찍 자기?

 

어른 스노우 : 그래. 간단하지?

 

북쪽 마법사들 : ........

 

브래들리 : 하! 싫은데!

 

오웬 : 갑자기 절대로 자기 싫어졌어.

 

미스라 : 명령 따위 들을 생각 없어요. 애초에 저, 잠도 못 자고.

 

어른 스노우 : 으음, 성가신 녀석들일세.

 

어른 화이트 : 접근을 잘못한 것 같구먼. 절대 깨어나있으라고 했어야 했어.

 

브래들리 : 애도 아니고 말야. 일찍 자는 한심한 짓거릴 하겠냐. 밤의 제왕이라고 불리던 브래들리 님이시라고?

 

오웬 : 밤의 제왕이래, 들어본 적 있어?

 

미스라 : 글쎄요... 남의 별명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서...

 

브래들리 : 양이 천 마리가 지나간대도 이런 시간에 침대에 들어가겠냐고.

애초에 일찍 자게 해서 뭐 어쩌자는 건데.

 

어른 화이트 : 내일은 즐거운 나들이가 있을 것이야.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한다네.

 

브래들리 : 하! 해가 뜨기 전에! 때려쳐. 늙은이들의 스케쥴이잖아.

야, 들었냐? 해가 뜨기 전이랜다.

 

오웬 : 들었어. 난 안 가.

 

어른 스노우 : 매정하게 그러지 말고. 아침해는 기분이 좋단다, 오웬.

 

오웬 : 하하... 저기, 난 속이는 건 좋아해도, 속는 건 안 좋아하거든.

 

어른 화이트 : 무슨 말이니?

 

오웬 : 행선지도 말 안 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

오즈가 함께인 거잖아. 그 사람, 지금은 밤에 마법을 못 쓰니까.

 

어른 스노우, 화이트 : 뜨끔!

 

미스라 : 아아, 무리입니다. 절대 안 가요.

 

브래들리 : 즐거운 나들이는 무슨. 최악이잖아!

 

어른 스노우 : 음음... 이렇게 된 이상 솔직히 말하마. 내일 아침 일찍, 북쪽 나라로 가서 성스러운 축제를 열 예정이란다.

 

어른 화이트 :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것은 오즈가 마법을 쓸 수 있는 동안, 그대들을 부려먹기 위함인 게야.

 

브래들리 : 더럽게 솔직하네...

 

미스라 : 북쪽 원시 정령은 흉포하고 흉악하고 냉혹하잖아요. 죽고 싶지도 않고, 싫어요.

 

어른 화이트 : 미스라. 그대는 오즈에 버금가는 마력의 소유자. 이른바 마법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지.

 

어른 스노우 : 촉망받는 에이스로서, 현자의 마법사 팀을 짊어지고 활약해주는 것이 어떤가.

 

미스라 : 하아, 고맙네요. 싫어요.

 

어른 화이트 : 가차없구먼....

2화

 

어른 스노우 : 이제 됐다. 좋을 대로 하려무나. 그대들이 어떻게 발버둥 쳐도, 오즈가 있는 한 벌을 받고 강제 연행인 것이야.

 

오웬 : 봐, 본성을 드러냈어.

 

어른 화이트 : 뭐가 말이냐.

 

오웬 : 인간들 앞에서 친절하고 사교적인 척해봤자, 너희의 정체는 난폭하고 독재적인 북쪽 마법사라는 거야.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힘으로 복종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잖아. 그렇지?

 

어른 스노우, 화이트 : 그렇습니다아~

 

브래들리 : 젠장, 이젠 감출 생각도 안 하는 거냐.

 

어른 스노우 : 자, 이제 잘 시간이로구나. 그대들, 축제를 하기 싫다면, 세상 끝까지 도망치도록 해.

 

어른 화이트 : 그대들이 어디에 있다 한들, 우리가 잡아다가 북쪽 나라로 데려갈 것이야. 패배와 굴욕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지.

 

어른 스노우 : 착하게 굴면, 칭찬을 잔뜩 해주고 포상을 내려주마.

 

어른 화이트 : 우리도 그대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네. 그럼, 내일 보자꾸나.

미스라, 브래들리, 오웬 : .............

 

미스라 : .....지금 밤이죠.

 

브래들리 : 보면 알잖아.

 

미스라 : 잘 됐네요. 지금 오즈와 쌍둥이를 죽이고 올게요.

 

오웬 : 찬성.

 

미스라 : 만약을 위해 피가로도 처리해두죠.

 

오웬 : 괜찮네. 내 개도 먹이가 많이 생겨서 기뻐할 거야.

 

브래들리 : 잠깐잠깐!

 

오웬 : 뭐야? 재밌네. 브래들리 너, 겁쟁이였어?

 

미스라 : 말린다면 당신도 죽일 거에요.

 

브래들리 : 화내지 말라고. 나한테 생각이 있어. 이리 와서 들어라.

 

미스라, 오웬 : ......

 

브래들리 : 다음 <거대한 재앙>이 얼마나 위험할런지 알 수 없어. 이쪽의 강한 말을 잃는 건 손해야.

그러니까, 마법사는 죽이지 마라. 하지만 이대로 쌍둥이가 말하는 착한 아이 활동을 계속할 수는 없지.

 

미스라 : 물론이죠. 전 밤의 제왕이라고 불리던 남자니까.

 

브래들리 : 어이, 표절하지 마.

 

오웬 : 마음에 들었어?

 

미스라 : 왠지 말해보고 싶어서요.

 

브래들리 : 우리를 억압하는 방해꾼은 오즈다. 오즈만 없으면 쌍둥이도 피가로도 까불 수 없어.

하지만 <거대한 재앙>과 있을 싸움을 생각하면, 오즈를 죽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냐. 그러니까, 오즈를 봉인해버리자고.

 

미스라 : 오즈를 봉인?

 

오웬 : 그렇구나. 내 트렁크에 들어있는 개처럼, <거대한 재앙>이 왔을 때만 오즈의 봉인을 풀고 싸우게 만들면 되는 거야.

 

브래들리 : 바로 그거라고! 그놈만 없으면 우리 세상이지. 마법관도, 중앙의 성도 빼앗아서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오웬 :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안 해도 되고.

 

미스라 : 뭐,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 지금 오즈를 봉인해오죠. 두근거리네. 어디다 넣어줄까.

 

오웬 : 더럽고 냄새나는 게 좋아. 썩은 생선 통조림이라거나 무덤 속 시체의 장화나.

 

브래들리 : 기다리라니까! 지금 여기서 치는 건 위험해. 쌍둥이도 피가로도 바로 달려올 거라고. 파우스트나 샤일록도 가세하겠지.

 

미스라 : 그럼, 어디서 하는 건데요? 그 인간, 나가는 걸 싫어해서 우리가 불러내봤자 순순히 나올 것 같진 않은데요.

 

브래들리 : 흐흥. 쌍둥이가 한 말을 떠올려봐. 내일은 즐거운 나들이랬잖아?

 

오웬 : 아, 북쪽 나라인가.

 

브래들리 : 그래. 쌍둥이를 따르는 척하고 북쪽으로 가자고. 그리고 이유를 대면서 밤까지 시간을 끌면...

 

미스라 : 우리에게 적수는 없다는 거네요.

 

브래들리 : 그래. 오즈가 마법을 못 쓰는 밤까지 기다린 다음, 얼음 기둥에 가둬서 꽁꽁 언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히자고.

우리가 힘을 합치면 식은 죽 먹기다. 할 거냐?

 

미스라 : 그러죠.

 

오웬 : 좋아. 아아, 기대되네. 새파랗게 질린 쌍둥이를 어떻게 괴롭혀줄까나.

 

브래들리 : 나도 오즈를 봉인한 뒤에 오즈의 성을 쓸어버릴 거다. 도둑질하러 들어갔다가 몇 번이나 살해당할 뻔했었으니까.

 

미스라 : 아, 맞다.

 

브래들리 : 뭔데.

 

미스라 : 오즈가 변칙적으로 밤에 마법을 쓸 수 있어요.

 

오웬 : 약한 마법은 쓸 수 있다는 거지? 그쯤은 별거 아냐.

 

미스라 : 그게 아니라요. <커다란 재앙>의 기묘한 상처로 잃었던 힘이 되살아나는 겁니다. 잠들 수 없는 내가 잠드는 경우처럼.

 

브래들리 : ...그건 곤란하네. 기묘한 상처가 어떻게 무효화되는 건데?

 

미스라 : 현자입니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자가 방해를 하면 성가셔지겠죠.

….뭐... 현자는 제가 어떻게든 할게요.

아키라 : 그랬구나... 그래서 새벽에 출발하게 된 거군요.

 

스노우와 화이트가 아침 일찍부터 나를 깨워서, 졸린 눈을 비비며 중앙 마법사들과 함께 하는 중이었다.

 

하늘은 지금 막 밝아지는 참이었다. 중앙 마법사들은 이미 축제 의상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정작 미스라, 오웬, 브래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동쪽 축제 때도, 북쪽 마법사들은 늦었었지...)

 

스노우 : 이제 현자와 중앙 마법사들에게 북쪽 나라에 대해 말해주마. 아서는 잘 알고 있겠지.

 

아서 : 네. 북쪽 나라는 눈이 많이 오고, 자연 그대로가 많은 땅이죠. 인간 마을 수는 적습니다.

 

화이트 : 그렇단다. 사람이 살기엔 혹독한 땅이니까.

 

리케 : 어떤 식으로 혹독한가요?

 

스노우 : 소와 집을 날려버리는 거센 눈보라에,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끝없는 얼음의 대지. 숨마저 얼어붙는 추위....

 

화이트 : 그것들은 모두, 살아갈 각오와 죽을 각오가 되지 않은 것을, 북쪽 땅의 성질이 거부하기 때문이야.

 

스노우 : 북쪽에서는 힘이 전부라네. 약한 존재는 죽고, 강한 존재들만 자유를 얻는다. 기묘한 힘의 작용도 강하고, 고가의 마나석도 많지.

 

화이트 : 무서운 땅이지만, 그대들 중앙의 마법사들이라면, 친해질 수도 있어.

 

리케 : 저희가....?

 

스노우 : 그래. 중앙 마법사들은 선(善)과 정의를 좋아하지.

 

화이트 : 하지만, 힘을 갖지 못한 정의에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스노우 : 북쪽 나라도 똑같단다. 힘을 갖지 못하면 어떠한 말도, 유대도, 맹세조차도, 의미를 갖지 못해.

 

북쪽 쌍둥이는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화이트 : 미스라도 오웬도 브래들리도 응석이 심한 말썽쟁이들이지만, 북쪽의 공기를 체감해보면 이해가 될 게야.

 

스노우 : 그들이 어째서,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면서 자신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3화

 

중앙 마법사들은 스노우와 화이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카인 : 그래... 삶의 방식이 어떻든, 그걸 택한 이유가 있겠지.

찬동할 수는 없지만, 그 녀석들을 이해해보고 싶어. 이번 일은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

 

리케 : ....이해하고 싶은 건가요? 사람을 지배하거나 상처 입히거나 하는 기분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제멋대로 구는 심리를...?

 

당혹스러워하는 리케에게 카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갔다.

 

상쾌한 아침햇살이 카인을 비췄다. 카인은 눈이 부신 듯 하늘을 나는 새들을 올려다봤다.

 

카인 : 그래. 새가 나는 데에도,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는 데에도 이유가 있어.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식으로 사는 건지, 그걸 알고 있으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잖아.

나는 둔하니까...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소릴 자주 들었었거든. 니콜라스 때도 그래.

 

니콜라스는, 중앙 수도에서 일어났던 '토비카게리 사건' 때 죽은, 카인의 지인이었다.

 

전 기사단장이었고, 마법과학병단장이 되고 금기된 주술에 손을 대어 스스로를 잃어버렸던 사람...

 

우리를 돌아본 카인이, 흐려진 눈으로 쓸쓸하게 웃었다.

 

카인 : 나는 니콜라스가 마법사를 싫어한다고만 생각했어. 마법사를 욕하기만 했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그 녀석을 좋아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 녀석은... 사실은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거야. 마법사가 되고 싶어서, 그 참사에 손을 대고만 거야.

동경하는 대상을 욕하는 심리는, 지금도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알고 있었더라면...

니콜라스와도 제대로 친구가 됐을까. 그 녀석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것만 같아.

 

리케 : 카인....

 

아서 : 카인의 말이 맞아... 미스라도 오웬도 브래들리도, 보통 방법으로는 다루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존경할만한 마력의 소유자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역전의 마법사들이야. 이 기회에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정원으로 나온 아서의 말에 카인도, 리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보면 중앙 마법사들과 북쪽 마법사들은 대적하는 관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들은, 북쪽 마법사들에게 반발심을 품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공평하고 우호적인 중앙의 마법사들답네. ....어라?)

 

아키라 : 왜 그래요, 오즈. 뭔가...

 

오즈 :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라.

 

카인 : .....어리석어? 북쪽 마법사들을 이해하려 하는 게? 당신도 원래는 북쪽 마법사잖아.

 

오즈 : 그래.

 

카인 :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오즈 : 너희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냉담한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즈는 천천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오즈 : 약속했던 시간이다.

 

아서 : 그들을 마법으로 부르시려는 건가요? 조금 더 기다려보는 건...

 

오즈 : 그들이 본인들의 의사로 모일 리가 없어.

 

완고하게, 오즈가 단언했다.

 

그런데 그때, 발소리가 다가왔다. 뒤돌아본 우리 앞에 세 명의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스라, 오웬, 브래들리.

…..아직 오지 않았었던 북쪽 마법사들이었다.

 

미스라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스노우 : 오오! 정말로 올 줄이야!

 

브래들리 : 그 말투는 뭔데? 네놈이 오랬으면서.

 

브래들리는 머리를 대충 긁적이며 하품 섞인 투로 말했다.

 

브래들리 : 포상 확실히 내놓으라고. 그것 때문에 미스라와 오웬을 설득한 거다. 덕분에, 이번에 한턱 쏘게 생겼어.

 

화이트 : 그랬구나, 그랬구나! 장하다, 브래들리!

미스라도 오웬도, 착한 아이로구나!

 

오웬 : 오늘은 잘 부탁할게. 왕자님과 기사님. 너는 교주님이었던가?

 

리케 : 아뇨. 저는 신의 사도입니다.

 

오웬 : 헤에, 이상해.

 

아서 : 우리야말로 잘 부탁해.

 

카인 : 너하고는 인연이 있지만... 오늘은 잊고 북쪽 축제를 지원할게. 북쪽 나라를 안내해줘.

 

오웬 : 좋아. 미스라, 브래들리. 카인이랑 악수해.

 

스노우 : 미스라, 오웬, 브래들리여. 그대들도 축제 의상으로 갈아입게나.

 

화이트 : 클로에한테서 받은, 맞춤 의상이라네.

 

스노우, 화이트 : 《노스콤니아》

 

스노우와 화이트가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의상도 순식간에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브래들리 : 서쪽 재봉집도 매번 고생이구만.

 

오웬 : 헤에, 꽤 괜찮잖아.

 

시간 맞춰 나타난 북쪽 마법사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우리는 기쁨과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오즈가 무서워서일 수도 있고, 포상이 필요했던 것뿐일지도 몰라. 그래도 북쪽 마법사들이, 한걸음 다가와 줬어.)

 

(어쩌면 이번 축제는, 북쪽 마법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네.)

 

희망찬 상상을 하면서 느슨하게 웃고 있는데, 갑자기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샌가 내 옆으로 온 미스라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른함을 띤 짙은 녹색 눈동자에는,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알 수 없는 사나운 기운이 있었다.

 

미스라의 앞에 설 때마다 느끼는 압도적인 박력과, 달콤한 나른함과, 위태로운 색기 탓에, 나는 약간 긴장했다.

 

아키라 : 미스라... 오늘도 잘 부탁해요.

 

미스라 : 하아.

 

애매한 대답을 하며, 미스라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뭐, 뭐지...)

4화

그 강렬한 눈빛에 찌부러질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그에게 말을 걸어보려는데, 브래들리가 가볍게 미스라의 어깨를 두드렸다.

 

브래들리 :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니냐고.

그럼 미스라, 북쪽 나라까지 공간의 문을 열어줘.

 

미스라가 천천히 나에게서 시선을 뗐다.

 

미스라 : 좋아요. 북쪽 나라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스노우 : 시간의 동굴 북서쪽에 있는, 희망의 평원이라네.

 

미스라 : 아아... 거기, 괜찮겠어요? 보통 마법사들은 서있을 수도 없을 텐데요.

 

화이트 : 중앙 마법사들이라면 걱정 말게나. 오즈가 수호해주지 않는가.

 

카인 : 희망의 평원... 될 수 있으면 오즈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데. 어떤 곳이야?

 

오즈 : 땅이 침입자를 거부하고 있다. 그 때문에 눈보라가 그치지 않아.

 

리케 : 눈보라는 겪어본 적이 없어요. 추운 걸까요? 아픈 걸까요?

 

아서 : 추우면서도 아파.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옛날에 놀러 갔을 때는 오즈 님이 눈보라를 멈춰주셨지.

 

(에어컨을 끄기라도 하는 것마냥 간단히 말했다...)

 

아서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북쪽 마법사들이 언짢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오웬 : 희망의 평원의 눈보라까지 멈추는 건가...

 

브래들리 : 규격 외의 괴물놈...

 

미스라 : 흐응... 뭐, 그것도 오늘까지의 얘기.... 으읍읍

 

브래들리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 사면을 위해서, 양호한 태도로 있어 달라고 부탁했잖아.

오웬, 속은 괜찮냐?

 

브래들리가 미스라의 입을 막으며 오웬에게 눈짓했다.

 

오웬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복부에 손을 올렸다.

 

오웬 : 아아, 그럭저럭.

 

카인 : 속? 몸이 안 좋은 거야?

 

오웬 : 잠을 못 자고 있는 미스라랑 같이 카드게임을 했거든. 내가 져서, 벌칙으로 작은 새를 먹었어.

 

카인 : 작은 새....?

 

오웬 : 응. 저주받은 새.

 

오웬이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입을 벌렸다. 그의 목구멍 안쪽에서, 요란하고 섬뜩한 새소리가 들렸다.

 

브래들리 : 아하하! 아직 살아있잖아.

 

미스라 : 먹을 때 오웬, 웃겼었죠.

 

오웬 : 시끄러워.

 

아서 : .....그런 위험한 놀이를 해도 괜찮은 건가?

 

리케 : 북쪽 마법사들의 행동은, 역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카인 : 아니... 매운 음료수를 원샷하는 정도라면 나도 하니까...

 

가볍게 동요하고 있는 중앙 마법사들을 내버려 두고, 미스라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대충 덧그려서 북쪽 나라와 이어지는 공간의 문을 열었다.

 

미스라 : 《아르시무》

 

그 순간, 문에서 돌풍이 몰아쳤다. 여기저기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리케 : 와앗...!

 

아키라 : 바, 바람이 엄청나... 순식간에 눈이 쌓였어...!

 

스노우 : 나중에 카나리아한테 사과해야겠구나, 그럼 오즈, 먼저 가서 눈보라를 멈춰주겠니.

 

오즈는 움직이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미스라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미스라 : 왜 그래요, 오즈. 안 갑니까?

 

오즈 : ....어째서냐.

 

미스라 : 뭐가요.

 

오즈 : 너희에게 의욕이 너무 많아.

 

미스라 : ........

 

오즈 : 너희가 그렇게까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게, 북쪽 축제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스라가 입을 열려는데, 그전에 오웬이 오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롱하듯 그에게 슬쩍 기대면서.

 

오웬 : 너무하네...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는데. 의욕은 물론 없지. 다들, 당신을 두려워하는 거야.

당신한테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했으니까.... 자세한 이야기, 이 애들 앞에서 할까? 오즈 선생님.

 

리케 : 괴롭힌 적이 있는 건가요...?

 

아서 : 오즈 님은 그런 짓 안 하셔. 실례잖아. 오웬.

 

오웬 : 하하... 그렇다네. 사과할게, 오즈. 나를 용서해줘.

 

오즈가 혐오감을 드러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엔 브래들리가 재촉하듯이 오즈의 등을 밀었다.

 

브래들리 : 무서운 얼굴 하지 말라고. 말 잘 들어주고 있잖아? 자, 중앙 녀석들을 데리고 앞장서.

 

오즈는 브래들리를 노려보고는, 중앙 마법사들과 함께 공간의 문을 통과했다.

 

오즈 : 스노우, 화이트. 눈보라가 그치면 현자와 함께 와라.

 

스노우 : 알겠다네.

 

화이트 : 오즈여, 젊은 마법사들을 부탁한다.

 

(괜찮을까... 확실히, 오즈가 말한 것처럼 위화감이 들기는 해. 북쪽 마법사들이 불평조차 않다니...)

 

미스라 : 현자님.

 

미스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미스라 : 당신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아키라 : 에?

 

스노우, 화이트 : 미스라?!

 

미스라는 낚아채듯 덥석 내 손을 잡고,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시야가, 순식간에 변했다.

 

아키라 : ........!

 

온통 새하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호흡이 멈췄다. 목구멍 속까지 얼어붙어서 심장이 삐그덕거렸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하얀 눈보라에 섞여서 창광(蒼光)이 번쩍였다.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손이 닿을듯한 거리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눈보라에, 번개?! 뭐야, 여기...?! .....숨을 못 쉬겠어....! 손발이, 바늘이 박힌 것처럼 아파...!)

 

곧바로 몰아친 거센 바람이, 온몸을 찌르는 듯했던 눈보라를 날려버렸다.

 

아키라 : .......!

 

그때,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하얀 어둠 사이에서 붉은 불꽃같은 게 다가왔다.

 

미스라의 머리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그에게 목덜미를 붙들렸다.

 

그리고 그의 팔과 옆구리 사이에 머리가 쑥 쳐박혔다.

 

(겨, 겨드랑이에 끼워졌다...)

 

미스라 : 위험하네... 날아가 버리는 줄 알았어요. 괜찮습니까? 숨 쉬고 있어요?

 

그가 나를 겨드랑이로 붙들며 말을 걸었다. 솔직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5화

 

(추, 추워.... 숨이 안 쉬어져... 죽는다...)

 

하지만 미스라는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미스라 : 아하, 다행이네요... 오즈는 어디로 갔으려나. 빨리 눈보라를 멈춰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아침을 안 먹었네. 당신은 먹었나요?

 

(저,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아...)

 

미스라 : .....오늘은 뭔가 말이 적네요. 대답 정도는 해주셔야죠.

 

미스라가 따분한 듯 내 머리를 끄집어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부들부들 떨며 헐떡이고 있는 나를 보고, 그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스라 : ....어? 벌써 죽어가는 겁니까?

 

미스라는 당황한 듯이 내 입을 억지로 벌렸다. 그리고는 마법사의 슈가를 집어넣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희미해져가던 정신이 돌아온다. 미스라는 뒤이어 내 가슴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미스라 : 《아르시무》

 

쿵, 심장이 뛰고 잔잔하게 피가 돌아간다. 조금이지만 몸에 열이 돌아서 숨쉬기가 편해졌다.

 

내 몸을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당혹스러움과 초조함으로 약해진 목소리로 미스라가 투덜거렸다.

 

미스라 : ....귀찮아....

 

그 말투에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기절 직전이었지만.

 

감길락 말락 하는 눈으로, 코앞에 있는 미스라를 봤다. 언제나 불손하고 겁이 없는 미스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동요하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조금 기뻤다.

 

미스라 : 어쩌지... 다음엔 뭘 하면 될까...? 거꾸로 들고 흔들어본다던가...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브래들리 : 현자...!

 

브래들리의 목소리에, 감겼던 눈을 떴다. 하얀 눈이 노이즈처럼 시야를 덮었지만, 장신의 청년의 형체가 얼핏 보였다.

 

브래들리가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 그러자 그의 주변을 피하듯이 눈보라가 진정됐다.

 

그제야 겨우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긴장이 풀려 안도하고 있는데, 브래들리에게 얼굴을 덥석 잡혔다. 볼이 움푹 찌그러지고 입이 돌아갔다.

 

브래들리 : 현자! 괜찮냐?!

 

(걱정해주는 건 맞는데, 취급이 너무 엉성해....)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속눈썹이 꽁꽁 얼어붙어서 눈도 잘 떠지지가 않았다.

 

브래들리는 내가 실신했다고 오해한듯했다. 그의 머리가 입 근처로 다가온 게 느껴졌다.

 

브래들리 : ....큭, 숨은 쉬고 있네. 의식은 잃은 것 같지만...

 

미스라 : 깜짝 놀랐어요.

 

브래들리 : 깜짝 놀랐어요가 아니잖아?! 현자를 죽여서 뭐 어쩌자는 거야?!

 

미스라 :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들고 다니려고 했거든요. 오즈에게 뺏기기 전에.

 

브래들리 : 오즈가 현자를 빼앗아갈 일은 없어. 그놈은 우리의 계획을 모르니까.

 

(계획.....?)

 

브래들리 : 네놈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오히려 더 눈에 띄잖냐. 평범하게 하라고, 평범하게.

 

미스라 : 현자를 납치하는 거 아니었나요?

 

(납치?)

 

브래들리 : 그건 저녁때쯤 하기로 했잖아? 해가 떠있는 동안은 일단 풀어놔도 돼.

 

미스라 : 그래도 꺼림직한데... 오즈에게 뺏겨버리면 끝이잖아요. 당신들도 믿을 수 없고.

 

브래들리 : 말했잖냐, 그건 피차일반이라고. 아무튼 필요 이상으로 현자랑 엮이지 마.

 

나는 두근거리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어째 위험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현자를 납치한다니 무슨 소리지? 현자는, 날 말하는 건가? ....내가 납치당하는 건가...?)

 

(이거, 위험한 거 아냐...?)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웬 : 눈보라가 가라앉았어.

 

오웬이다. 눈을 떠서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기절한 척을 계속했다.

 

오웬 : 바람이 멈춰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어. 오즈의 마법이 효과가 있는 것 같네.

 

브래들리 : 진짜냐, 말도 안 되는구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오웬 : 정령들도, 불가사의한 이치도, 세계의 질서를 만들고 있는 것들은 모두, 오즈를 따르는 걸 좋아해.

 

브래들리 : 그야 그거지. 2천 년 이상이나 마나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 군림하고 있는 놈이잖아. 그놈에게 따르는 분위기가 생기게 된 거지.

 

미스라 : 그것도 오늘 밤까지의 얘기죠. 눈에 거슬리는 그 남자를 봉인해줍시다.

 

(어? 오즈를 봉인해...?)

 

미스라 : 후후, 기분 좋네. 오즈에게 기묘한 상처를 준 <거대한 재앙>에게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기분이에요.

 

(이들은 밤까지 기다려서, 오즈가 마법을 쓸 수 없을 때 오즈를 봉인할 셈이야.

어쩌지, 누구에게 알려야 할 텐데...)

 

오웬 : ......어라?

 

갑자기, 오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돌연 뭔가가 내 볼에 닿았다. 딱딱하고 차갑고 날카로운 감촉은, 손톱 같았다.

속눈썹 끝에 뭔가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웬 : ....깨어나있잖아요, 현자님.

 

(히이이익...)

 

심장이 쿵 튀어 오르고 식은땀이 났다. 나는 필사적으로 잠든 척을 계속했다.

 

미스라 : 깨어있는 겁니까? 의식이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브래들리 : 뭐가 다행이냐, 멍청아. 아까 얘기를 들어버렸으면 큰일이잖아.

오웬, 확인해봐.

 

오웬 : 좋아. 아픈 방법이랑, 안 아픈 방법. 뭐가 더 좋아?

 

손톱 같은 것이 내 코끝을 삭 할퀴었다.

 

오웬 : 저기, 현자님....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새끼 손가락이랑, 귀랑, 혀 중에, 어디가 좋아?

 

(히이이익....!)

++

6화

두려워서 비명을 나오려던 것을 꾹 참으려다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브래들리 : 아, 일어났네.

 

미스라 : 일어났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현자님.

 

나는 각오를 하고 눈을 떴다. 그들의 대화를 못 들은척하기 위해, 정말 자다가 막 일어난 연기를 하며 하품을 해봤다.

 

아키라 : 후아암... 좋은 아침이에요. 어라? 다들 모여서 뭐해요?

 

브래들리 : 너 연기 진짜 못 하네. 우리가 한 얘기, 전부 들었지?

 

아키라 : 윽....

 

미스라 : 곤란하네. 마법으로 기억을 빼앗아버릴까요.

 

미스라가 내 머리에 손을 뻗으며, 최악의 말을 했다.

 

미스라 : 저 이쪽 마법은 서툴러서, 조절에 실패해서 머릿속을 부숴버릴지도 모르지만요.

 

아키라 : 잠깐! 잠깐만요! 차분하게 얘기 좀 하죠...!

 

나는 미스라의 손을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셌던 눈보라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맑게 개어, 온통 눈뿐인 설원 위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희망의 평원....)

 

눈보라가 그친 희망의 평원은, 푸른색과 은색이 뒤섞인 웅장하고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파도 같은 무늬가 얼음의 대지에 새겨져 있었다.

 

미스라, 오웬, 브래들리에게 둘러싸인 나는, 두뇌를 풀가동시켜 이 자리를 헤쳐나갈 방법을 떠올리려 했다.

 

아키라 : 오즈를 봉인한다는 거... 다시 생각해주세요. 마, 마법관에서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잖아요.

 

미스라 : 하아. 거슬리는지라.

 

아키라 : 대화로 해결하자구요. 여러분 마음에 안드는 게 있으면, 그걸 전해서...

 

미스라 : 나보다 강한 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요.

 

미스라는 선명한 초록 눈을 깜빡이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쾌하니만큼 차가운 바람이 그의 붉은 머리칼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미스라 : 잘 지내고 못 지내고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오즈가 친구든 같은 편이든, 우리는 오즈를 죽이고 싶습니다. 뭐, 일이 곤란해지는 것 같으니까 죽이지는 않겠지만요.

자기보다 강한 마법사라는 건, 신경에 거슬리거든요.

 

증오도 적의도 없는, 오히려 깨끗함마저 느껴지는 미스라의 어조에 나는 당황했다.

 

아키라 : 그... 그렇게 따지면, 오웬이나 브래들리한테는 미스라도, 거슬리는 존재 아닌가요?

 

브래들리 : 거슬리는 거 맞는데?

 

오웬 : 언젠가는 죽이고 싶어.

 

미스라 : 뭐, 그런 거예요.

 

(어쩌지... 이 사람들의 텐션, 도저히 모르겠어...)

 

가치관의 차이에 혼란스러워하면서, 나는 스노우와 화이트의 말을 떠올렸다.

 

『미스라도 오웬도 브래들리도 응석이 심한 말썽쟁이들이지만, 북쪽의 공기를 체감해보면 이해가 될 게야.』

 

『그들이 어째서, 계속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면서 자신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스노우 : 현자!

 

화이트 : 현자여!

 

쌍둥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도 모르게 그들을 불렀다. 빗자루에 올라타서 새파란 하늘을 날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곧 급강하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브래들리 : 골치 아프게 됐군, 쌍둥이다.

 

미스라 : 현자의 기억을 빼앗을까요?

 

브래들리 : 냅두자고. 오즈라면 이 녀석한테 마법을 건 낌새를 알아차릴 거다. 그럼 전부 물거품이야.

 

오웬 : 그럼 심플한 방법으로 갈까. 저기, 현자님.

 

아키라 : 네, 네....

 

내 입을 틀어막은 오웬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웬 :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그 자리에서 죽일 거야.

 

아키라 : ..........

 

스노우 : 현자여! 무사했는가!

 

화이트 : 오오, 다행이구나! 눈보라가 그치기 전에 들어가 버려서 걱정했단다.

 

빗자루에서 내려서 달려온 쌍둥이가 동시에 나를 껴안았다.

 

나를 감시하는 것처럼, 미스라 일당이 내 등 뒤를 둘러싸고 있었다.

 

미스라 : 무사해요. 이 사람 갑자기 죽을 뻔해서 깜짝 놀랐었는데.

 

스노우 : 오즈가 눈보라를 잠재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화이트 : 마법사들도 살아가기 힘든 땅이라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지 않았나!

 

미스라 : 하아... 현자여도 안 되는 거였군요.

 

스노우, 화이트 : 현자쨩은 인간이잖니...

 

미스라 : 그랬지. 깜빡했어요.

 

스노우 : 미안하구나. 호된 꼴을 당하게 해버렸어.

 

화이트 : 우리가 있으면 이제 안심이란다. 북쪽 나라에 있는 동안엔, 우리 곁을 떠나지 말거라.

 

아키라 : 아....

 

스노우 : 어찌 된 게야, 현자. 안색이 안 좋다만....

 

내가 입을 열 틈을 주지 않고, 브래들리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브래들리 : 저런 눈보라를 코앞에서 봤으니 쪼는 게 당연하지. 안 그래? 현자.

이 앞은 이제 괜찮아. 오즈도 딸려있고 말이지. 걱정되면 내가 호위해주마.

 

아키라 : 아, 아뇨! 괜찮....

 

브래들리 : 사양하지 마. 나도 사면받으려고 이러는 거라고. 스노우, 화이트. 중앙 마법사들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줘.

 

스노우 : 알겠다. 오늘은 착한 아이로구나, 브래들리.

 

화이트 : 일초라도 빨리 자유의 몸이 되고 싶으면 착하게 굴라고, 몇 번이나 타일렀으니 말이야.

 

브래들리 : 흥.

 

브래들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날카로운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기분이 좋아 거드름 피우는 웃음이라기보단, 가차없고 차가운 조소였다.

 

브래들리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집단행동이 약한 북쪽 마법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도적단이라는 조직을 꾸렸던 남자.

 

화려하고 거친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교활하고 시야가 넓으며 요령이 좋다.

 

브래들리가 탁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그의 빗자루가 나타났다.

 

브래들리 : 좋아, 가자고. 현자, 태워줄게.

 

아키라 : 앗..... 저는 그, 스노우랑 화이트랑 같이...

 

브래들리 : 바보. 사양하지 말랬잖아?

 

브래들리가 웃으며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하늘로 확 올라갔다.

 

아키라 : .......!

7화

눈 깜짝하는 사이에 땅이 멀어졌다. 빗자루에 앉지도 못한 나는, 황급히 브래들리의 팔에 매달렸다.

 

아키라 : 떠, 떨어져요....!

 

브래들리 : 너, 쓸데없는 소리 할 생각은 접어라. 내 마도구가 뭐였는지 말해봐.

 

아키라 : 마도구?! 초, 총이요?

 

브래들리 : 그래. 멀리서도 뒷통수를 날려버릴 수 있지. 으깨진 토마토가 되고 싶냐?

 

아키라 : 벌써 될 것 같은데요...!

 

브래들리 : 착하게 군다면 도와주지. 이몸의 빗자루에 타는 거니까 영광으로 생각해라.

알겠냐,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아키라 : ......

 

브래들리 : 대답은?

 

아키라 : ....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브래들리는 눈썹을 올리고, 나를 번쩍 들어올려 빗자루에 올려놨다.

 

그가 내 표정을 힐끗 보고는 유쾌하게 웃었다.

 

브래들리 :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얌전히만 있으면 문제될 건 없으니까.

브래들리 : 내가 마법관을 관리하게 되면 네놈한테도 좋은 걸 시켜줄 테니까 말야. 뭐가 갖고 싶냐? 돈? 아니면 땅?

 

아키라 : 브래들리가 맡는 건가요? 미스라가 아니라?

 

브래들리 : 당연하지. 그런 무능한 짐승놈한테 리더를 맡기겠냐.

음침하고 정신 나간 오웬놈도 마찬가지다. 이건 브래들리님이 나설 차례라고. 마법관 놈들 전부, 일 인분씩 하는 도적들로 만들어주겠어.

 

아키라 : 도, 도적이 되는 건가요?!

 

브래들리 : 그래. 정의의 편인 것보다 더 멋지지?

 

아키라 : ........이런 거, 성공할 것 같지는 않아요. 오즈의 마력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었죠. 들키면, 큰일 날 거라구요.

 

브래들리 : 그럴지도. 그래도 뭐, 일단 해봐야지.

 

아키라 : 일단 해본다구요...?

 

브래들리는 바람을 가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브래들리 : 오즈나 쌍둥이 밑에서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면, 이몸이 불명예스럽잖냐.

멍청하게 배를 까뒤집고 뒹구느니, 오즈에게 반죽음을 당하더라도 손을 물어주는 게 낫지.

 

아키라 : 그런 건가요...?

 

브래들리 : 그런 거야.

 

나는 당황해서 눈을 내리깔았다. 나라면, 호되게 당할 바엔 순순히 따르는 쪽을 택한다.

패배하느니 싸우지 않는 방법을 고를 거다. 그런데 브래들리는, 지더라도 싸우는 게 낫다고 한다.

북쪽 마법사들의 긍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끌리는 게 있어.)

 

내 시선을 눈치챈 브래들리가 씩 웃었다.

 

브래들리 : 날아간다. 꽉 잡아.

 

아키라 : .....읏.

 

말 그대로 엄청난 스피드로, 브래들리는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서 : 현자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브래들리가 데려와준 거구나. 고마워.

 

브래들리 : 흥, 뭐 그렇지.

 

카인 : 어마어마한 눈보라였어. 번개도 바로 옆에서 번쩍였지. 설뢰(雪雷)라고 하는 것 같던데. 당신도 공간의 문을 통해서 봤어?

 

카인이 시선을 헤매면서 손을 뻗었다. 카인은 신체 접촉을 하기 전에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손을 건드린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라 : 네. 엄청났어요.

 

나에게로 시선을 맞춘 카인이 순간적으로 놀란 얼굴을 했다.

 

카인 : 손이 얼음장같잖아.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안 기다리고 뛰어든 거야?

 

스노우 : 미스라가 현자를 데리고 뛰어든 게야. 자칫하면 위험할 뻔했어. 북쪽 땅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환경이니 말이야.

 

리케 : 현자님, 괜찮으세요? 오즈가 아니었더라면 저도 날아가 버렸을 뻔한 눈보라였어요.

 

아키라 : 그게...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눈보라보다도, 미스라 일당의 음모가 더 골칫거리였다.

 

(어떻게든 알려줘야 할 텐데.... 하지만, 저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수로...)

 

브래들리 : 그래서? 축제는 어디서 하면 되는 건데? 희망의 평원이라면 어디든 좋다, 이런 건 아닐 거 아냐?

 

스노우 : 희망의 평원은 넓으니까. 우리가 예언으로 봤던 장소는 조금 더 북쪽이었다네.

 

(좀 더 북쪽에 있는 장소.... 거기에 도착하기 전에, 저들의 계획을 알려야 돼....)

 

이동 준비를 시작하는 모두의 옆에서, 나는 눈을 굴렸다. 알려준다면, 역시 오즈가 좋겠지.

 

그러나 감시당하고 있는 이상, 말로 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눈빛으로 오즈에게 강력하게 호소했다.

 

(눈치채세요, 오즈....! 이대로 가면, 일몰 후에 봉인당해요!)

 

필사적으로, 마음속에서 외쳤다. 꽤 오랜 시간 열렬한 눈빛을 보냈지만...

 

(오즈.... 살기나 마법이 아니면 둔하구나...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오즈는 내 눈빛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보고 있는 이쪽이 안달 날 정도로, 지팡이를 든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즈가 눈치채는 건 무리야... 다른 누군가가 알아차려줘야할 텐데….

.....그래! 아서라면....)

 

나는 아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강한 마력을 지녔으면서도 인간들을 챙겨주는, 친절하고 상냥한 마법사다.

 

(눈치채라, 눈치채라, 눈치채라....)

 

구멍이 뚫릴 정도로 아서를 봤더니, 염원이 통한 건지 아서가 돌아보았다.

 

(눈치채줬다!)

 

아서가 생긋 웃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아서 : 현자님, 뭐 필요하신 거 있나요?

 

그야말로 이상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입을 열려던 순간 목덜미가 콱 눌렸다.

 

8화

미스라 : 뭐가 필요해요? 내가 도와주죠.

 

오웬 : 나도 도와줄게. 등이 가려워?

 

브래들리 : 나도 긁어줄게. 여기냐?

 

미스라 일당들에게 등을 벅벅 긁히면서 나는 잔뜩 굳어버렸다. 아서가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서 : 다들 현자님과 사이가 많이 좋아졌구나.

 

미스라 : 네.

 

아서 : 부럽네. 현자님, 다음에는 저한테도 부탁해주세요. 그럼, 출발하죠.

 

현자 : 아앗....

 

씩씩하게 몸을 돌리고 떠나는 아서를 향해 허탈하게 손을 뻗었다.

 

(큰일이야... 중앙 마법사들은, 북쪽에 비하면 너무 순수해...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나는 모두와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스노우 : 이 주변이라네.

 

아키라 : 굉장해... 거대한 얼음 다리 같아...

 

눈앞의 절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층 빌딩이 쓰러진 것 같은 크기의 얼음 다리가, 얼음 골짜기에 걸쳐져 있었다.

 

카인 : 뭔가, 숨 막히게 찍어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있네.

 

리케 : 그러네요... 신비롭고 장엄하고 예쁜 곳인데, 떠나고 싶어져요…

 

스노우 : 북쪽 원시 정령들의 기운 때문인 게야.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인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성질이 난폭한 존재들이었다네.

 

화이트 : 땅 자체가 마법에 민감한 게지. 봐라.

 

화이트가 손을 벌렸다. 희미한 빛을 띄우는 작은 구체를 만들어서, 그것을 발밑의 얼음 지대에 살며시 떨어뜨렸다.

 

빛나는 구슬이 꽃잎처럼 사뿐히 떨어지자, 낙하지점이 일곱 빛깔로 빛나면서 파도처럼 얼음 지대에 빛을 넓혀갔다.

 

리케 : 와아.... 이건, 얼음 지대가 마법에 공명한 건가요?

 

스노우 : 그렇단다. 그러니, 쓸데없는 자극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할 수도 없으니 말이야.

 

화이트 : 그러면, 엄숙하게 축제를 시작하자꾸나. 그대들, 준비는 되었는가?

 

오웬 : ......으으...

 

스노우와 화이트가 모두를 돌아보는데, 오웬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았다.

 

카인 : 왜 그래? 상태가 나빠 보이는데.

 

카인이 걱정스럽게 오웬의 안색을 살폈다. 처음에는 시간을 끌기 위한 연기인 줄 알았는데, 오웬은 정말로 아파 보였다.

 

핏기를 잃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하얀 목덜미에 희미하게 떠오른 정맥까지 병적으로 거무스름했다.

 

(어떻게 된 거지...?)

 

스노우 : 말레피키움 같은 걸 먹으니 그렇지. 그 녀석들은 질 나쁜 저주새니까 말이야. 자, 우리가 치료해주마.

 

오웬 : ....큭, 필요 없어.... 잠깐만 이렇게 있으면, 이런 저주는 내 마력으로 녹여버릴 수 있어.

 

화이트 : 하지만...

 

오웬 : 내버려 둬.

 

오웬은 얼음 위에 벌렁 드러눕고, 약해진 동물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상태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스노우 : 어쩔 수 없지. 잠시 기다려보자.

 

오즈 : 신속하게 축제를 끝내는 조건이었을 텐데.

 

화이트 : 성급한 남자일세. 아직 오전이지 않은가. 오웬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쯤은 괜찮겠지.

 

오즈 : 내가 치료해주지.

 

화이트 : 잠자코 있게.

 

오즈는 못마땅한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화이트는 오즈를 노려보면서, 오웬 옆에 앉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이트 : 북쪽 마법사들에게도 긍지가 있다. 그대의 발로 짓밟는 것은 쉬운 일이겠다만, 조금은 숙고하는 것이 좋아.

저주받은 새를 먹은 것도, 자가치유를 바라는 것도, 비록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건 북쪽 마법사의 오기라네. 우리는 오기를 버리면서까지 살지는 않을 것이야.

 

미스라 : 유령이 말하니까 설득력이 있네요.

 

화이트 : 쓸데없는 참견일세.

 

화이트의 말에 밀려버린 건, 오즈가 아니라 스노우 쪽이었다. 그는 오즈의 등에 손을 두르면서, 타이르듯이 중얼거렸다.

 

스노우 : ....뭐, 하나쯤은 받아들이시게. 초조해할 만큼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지 않나.

 

오즈는 언짢은 낯으로 자리를 떠났다. 아서와 리케가 그의 뒤를 쫓았다.

 

쌍둥이와 카인은, 오웬 옆에 붙어서 쇠약해진 그를 돌봐주고 있었다.

 

카인 : ....괜찮아? 안 좋은 걸 먹어서 배탈이 났으면, 얼른 토해버리면 될 텐데.

 

오웬 : ......시끄러워....

 

괴로워하는 그 목소리에, 카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카인 : 나참,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린다니까.

뭐 나도 고집불통인 쪽이니까,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카인의 목소리에, 묘하게 숙연해져서 그들 곁을 떠났다. 약해진 모습을 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북쪽 마법사들의 긍지, 오기… 그걸 알게 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는데, 짝,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 미스라와 브래들리가 손을 맞대고 있었다.

 

브래들리 : 좋아! 잘 풀렸군.

 

미스라 : 잘 됐네요.

 

브래들리 : 근데, 저 새의 저주는 언제 봐도 무섭단 말야? 카드게임에서 이겨서 다행이지. 나랑 너였어도 반나절은 못 움직일 테니까.

 

미스라 : 오즈에게 꾀병은 통하지 않으니까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태를 망가뜨려서 시간을 끌 수밖에.

벌칙에 걸린 오웬은 손해 보는 역할이지만요.

 

(이... 이 사람들... 오즈를 속이려고 일부러 이상한 새를 먹은 건가! 진지하게 마주해보자고 지금 막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분개해서 발을 돌렸다.

 

(약해진 오웬에다, 쌍둥이와 카인이라면... 지금이라면, 저들의 계획을 말할 수 있을 거야. 이제 무조건 말한다!)

 

얼음 지대를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밟으면서, 드러누워있는 오웬 쪽으로 향했다.

 

그때,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키라 : .......!

 

미스라 : ........

 

미스라였다. 나른하고 졸려 보이는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표정도 바꾸지 않고 내 얼굴에 손을 뻗었다. 큰 손바닥이, 피할 틈도 없이 시야를 가렸다.

 

아키라 : 미...

 

미스라 : 《아르시무》

 

그 후, 나는 의식을 잃었다.

9화

 

카인 : ....미스라? 아키라는 왜 그래? 잠든 건가?

 

스노우 : 아닐세... 그대, 현자에게 마법을 쓴 게로군.

 

미스라 : 쓸데없이 돌아다니면 곤란하니까 잠재운 것뿐이에요. 얼지 않게 껴안고 있을 거고, 축제 전에는 깨울 겁니다.

 

화이트 : .....확실히, 잠든 것 말곤 별다른 게 없긴 하다만... 미스라여, 이 땅에서는 괜한 마법을 쓰지 말게나.

 

미스라 : 알고 있어요.

 

브래들리 : 오웬, 보여줘봐.

아아~~ 지독하네. 손톱도 꺼멓게 됐고. 이거 저녁때쯤이나 회복되겠는걸.

 

카인 :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 오웬,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께 치료를 받는 게 어때?

 

오웬 : .....읏......하아........그럴까?.......

 

브래들리 : 야.

 

오웬 : 그치만, 진짜 독하다고, 이거…

이제 몸속에서 꺼내고 싶어..... 토해도 돼?

 

카인 : 토할 수 있으면 토하는 게...

 

미스라 : 여전히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네요. 잠깐 참는 것도 못 하나요? 저한테 혼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요.

 

오웬 : ........쳇....

 

카인 : 미스라, 그런 말투는 좀 아니잖아. 괜찮냐, 오....

아얏! 왜 날 때리는 거야?!

 

오웬 : ......화풀이.

 

카인 : 너, 그러니까 친구가 안 생기는 거라고...?

 

스노우 : 오오! 오즈네가 돌아온 것 같구먼. 일단은 점심 식사를 하도록 할까.

 

화이트 : 아직 시간은 많으니. 느긋하게 현자와 오웬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자꾸나.

…………...

리케 : 현자님, 아직도 안 일어나시네요...

 

카인 : 미스라, 계속 껴안고 있는 거 힘들지 않아? 내가 대신할까?

 

미스라 : 걱정 마세요.

 

오웬 : .....하아......하아....

 

리케 : 오웬.... 얼굴색이 시체 같아요... 검은 땀까지 나오기 시작했고...

 

스노우 : 건들면 안 되네, 리케. 오웬이니 저주를 견딜 수 있는 거지, 그대가 저주를 받으면 돌이 될 게야.

 

리케 : ...그런.....

 

오웬 : 저기, 리케. 도와줘..... 나를 상냥하게 어루만져줘........

 

화이트 : 그대도 유혹하지 말게나! 그런 짓을 할 바엔 얼른 토해내면 되는 것을...

 

리케 : ....그럼 적어도, 신의 사도로서 오웬의 회복을 위해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오웬 : 하하..... 뭐야, 그게.

 

리케 : 부디, 오웬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서, 신의 축복 아래에서 고통이 완화되기를.

나쁜 유혹도 하지 않게 되기를.

 

오웬 : 그만해, 짜증나니까....

 

리케 : 어째서요?

 

오웬 : .........

 

리케 : 내가 약해져 있을 때 기도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멋진 거예요.

누군가가 약해져 있을 때 기도를 해줄 수 있는 내가 존재한다는 건, 멋진 거예요.

리케 : 제 마법으로는 당신을 치료할 수 없겠지만, 당신에게 축복을 드릴게요. 《산레티아 에디프》

 

오웬 : .....흥.... 바보 아냐?....

오즈 : ....곧 해가 진다.

 

브래들리 : 뭐야, 아직은 괜찮잖아. 이제 막 넘어가기 시작한 수준이라고.

 

오즈 : 기다려주는 건 여기까지다. 현자를 깨우고, 오웬을 회복시키겠어. 미스라, 현자를 넘겨라.

 

미스라 : 싫어요.

 

오즈 : ........

 

스노우 : 미스라, 오즈 말이 맞다네. 더는 미룰 수 없으니 축제를 먼저 하자꾸나. 그대도 북쪽에 여러 번 들러야 하는 것은 싫지 않나.

 

화이트 : 그래 그래. 오웬도 어서 찬성하려무나. 해가 지고 나면 오즈가 마법을 쓸 수 없으니 말이야.

 

브래들리 : 여기까지 기다려놓고 그건 좀 그렇잖아. 오웬도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고.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기다려봐봐.

 

스노우 : 하지만...

 

오즈 :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려주마. 다만, 현자는 넘겨라.

 

미스라 : 싫어요.

 

오즈 : 그럼, 힘으로라도 되찾겠다.

 

미스라 : 재밌네... 해보세요.

 

브래들리 : 야, 진정해.

 

오웬 : .....하아.....하아.... 잠깐...미스라....

 

화이트 : 그만! 둘 다 왜 그렇게 현자에 집착하는 게야! 어디서 자든 무슨 상관이라고.

 

오즈 : 현자가 있으면 해가 져도 마법을 쓸 수 있다. 지금 바로 마법으로 깨워두겠어.

 

스노우 : 그렇구먼... 그럼 미스라는, 왜 넘기기 싫어하는 게야.

 

미스라 : .........

 

스노우 : 미스라여. 어째서인 게냐.

 

미스라 : 뭐랄까....

....뭐, 이유가 뭐든 간에 상관없잖아요. 그런 기분이라서요.

 

화이트 : ....무슨 소릴 하는 게야?

 

리케 : 애매모호한 말이네요. 설마... 현자님께 나쁜 짓을 할 생각이신가요?

 

미스라 : ..........

 

브래들리 : 야, 나쁜 짓이라니 뭔데. 열받는 소릴 지껄이네.

 

미스라 : 이제 됐어요. 브래들리. 이제 곧 밤입니다. 계획보다는 빨라졌지만, 시작하죠.

 

스노우 : 시작해? 무슨 소리냐?

 

브래들리 : .....바보 자식…! 네놈 사정 때문에 멋대로 계획을 바꾸지 말라고...

 

미스라 : 오웬, 이제 됐습니다. 빨리 토하세요.

 

오웬 : .....하....? .....웃기지 마.... 내가 지금까지 한 고생을....

 

카인 : 이봐, 대체 무슨....

 

브래들리 : 아아, 진짜 최악이네! 거의 다 왔는데 왜 기다리질 않냐고.

ㅡㅡ너희들, 꼼짝 마라!

 

아서 : 브래들리?! 왜 우리한테 총을 겨누는 거야?!

 

브래들리 : 얌전히 있어, 중앙 왕자님.

미스라! 네놈, 머리 쓰는 작전에는 두 번 다시 안 껴줄 거다.

 

미스라 : 하아.... 별로 좋은 작전도 아니었으면서.

 

브래들리 : 이 자식... 나중에 쳐죽여주마! 일단은 오즈다! 현자를 인질로 잡아서 도망 다녀. 난폭하게 다루지 마라!

 

미스라 : 알고 있어요.

 

오즈 : ....내게 맞서기 위해,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거냐.

 

미스라 : 그래요. 당신한테 지배당하는 건 오늘까지입니다. 오웬, 일어나세요.

 

오웬 : .....큭.......죽일 거야, 미스라... 내가 뭣 때문에 저주받은 새 따윌 먹은 건데...

 

미스라 : 안 일어날 거라면 내가 토하게 해주죠.

 

오웬 : 잠깐.....!

 

오즈 : 해가 지기 전에 현자를 깨워주지.

 

미스라 : 《아르시무》

 

오즈 : 《복스노크》

아키라 : .........!

 

주문을 외우는 오즈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눈을 번쩍 떴다.

 

마법으로 억지로 깨운 건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우선 상황을 파악했다.

 

코끝을 스치는,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 땅에 닿지 않는 발끝. 바로 위엔, 애수를 자아내는 석양빛.

 

나는 지금 미스라의 지팡이에 타서, 북쪽 하늘을 날고 있었다.

+

10화

아키라 :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미스라 : 입 닫으세요. 혀 깨물어요.

 

아키라 : ......?!

 

말하자마자, 미스라는 거꾸로 비행했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 속에서, 빗자루를 탄 스노우와 화이트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쫓는 게 보였다.

 

스노우 : 거기 서지 못할까, 미스라!

 

화이트 : 현자를 놔주란 말이다!

 

미스라 : 오웬! 새는 내 마법으로 토했잖아요! 빨리 가세하세요!

 

거꾸로 뒤집히면서, 지상을 봤다. 얼음 지대 위에서 오웬이 등을 떨며 시커먼 뭔가를 토해내고 있었다.

 

오웬 : .......크윽.....우욱.....미스라....잘도....!

 

더러운 피투성이가 된, 검은 새의 날개였다. 미스라가 마법을 썼다는 증거로, 오웬 주변 얼음 지대가 일곱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불온하고 아름다운 오로라 같은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마법사들을 비췄다.

 

자세를 고쳐잡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추적하던 쌍둥이들이 급정지했다.

 

스노우 : ....! 브래들리!

 

화이트 : 이 멍청한 녀석....!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게야?! 마법관에 돌아가면, 혹독하게 벌을 줄 게다!

 

하늘을 나는 빗자루 위에 서서 투박한 총을 겨누는 브래들리.

질주하는 그의 발밑이, 빨갛고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브래들리 : 시끄러, 할배들!

미스라, 튀어! 현자를 데리고 철수한다!

 

미스라 : 왜요.

 

브래들리 : 오즈가 오니까, 멍청아!

.....! 뒤에....

 

브래들리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청보랏빛을 뒤집어쓴 미스라의 단정한 옆모습에 경악이 차올랐다.

 

눈앞에 번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키라 : 으아아악!!

 

미스라 : 칫....

 

나는 비명을 질렀고, 미스라는 혀를 찼다.

다시금 곤두박질쳐서, 하늘을 달리는 번개를 피했다.

 

그러자, 앞질러 가있었던 것처럼 오즈가 전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파직거리는 번개를 두른 지팡이를 우리에게 치켜들었다.

 

미스라 : 오즈! 현자를 죽일 셈이에요?!

 

오즈 : .........

 

아차, 잊고 있었다. 라는 듯한 얼굴로 오즈는 침묵했다.

 

아키라 : 오, 오즈, 제발...! 죽고 싶지 않아요....!

 

오즈의 어깨너머로, 대지에 지는 석양이 저녁노을을 드리우며 빛났다.

 

미스라와 오즈 사이에, 한줄기 바람처럼 브래들리가 끼어들었다. 곧바로 총을 겨누고는 아무도 없는 대지에 발포했다.

 

브래들리 : 《아도노포텐스무》!

 

브래들리의 마법 총탄을 맞고 얼음 지대가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할 정도의 밝기였다.

 

눈부신 섬광에 휩싸여서, 우리는 자리를 이탈했다.

 

스노우 : 이런….! 현자를 데리고 종적을 감춰버렸다!

 

화이트 : 이제 곧 해가 진다네...! 오즈는 마법을 쓸 수 없게 되고, 우리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말 게야!

 

오즈 : ........

어디를 어떻게 날은 건지도 모르겠다. 엉망진창인 비행과 스피드에 시달린지라, 땅바닥에 내려졌을 때는 이미 눈이 돌고 있었다.

 

미스라 : 왜 그래요, 현자님. 다치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키라 : 으.... 뱃멀미 같은 느낌이....

 

미스라 : 쾌적한 배 여행 같았다고요?

 

아키라 :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진정이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만큼 있어요.

으으....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어...

 

입가를 가리는 나를 뒷전으로 하고, 브래들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브래들리 : 좋아, 해가 진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승리라고!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석양의 희미하고 붉은빛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사라져간다.

 

밤이 오고 말았다.

 

브래들리 : 아하하! 꼴좋다, 오즈! 할배놈들!

 

브래들리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새파랗게 질렸다. 이대로라면 오즈는 봉인당하고 만다.

 

그때,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 다가왔다.

 

(저건.... 오웬...?)

 

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빗자루를 탄 오웬이었다.

 

쿵 하고 우리 앞에 내린 오웬에게, 브래들리가 한쪽 손을 들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브래들리 : 해냈다고, 오웬. 이제 마무리 단계야.

 

오웬 : 시끄러워.

 

브래들리 : 야....

 

오웬은 브래들리를 그대로 지나쳐서, 무표정하게 미스라 앞에 섰다. 무릎을 꿇고 앉아, 망설임 없이 트렁크를 열었다.

 

오웬 : 《쿠레 메미니》

 

미스라 : 하아?!

 

순식간에 커다란 형체가 기세 좋게 튀어나왔다. 세 개의 머리를 지닌 사나운 케로베로스가, 미스라를 물어뜯었다.

 

선혈이 꽃잎처럼 흩어지고, 미스라의 긴 팔다리와 몸통에 그의 머리칼과 같은 색의 얼룩이 번져나간다.

 

미스라 : .....크, 크윽....!

 

오웬은 쓰러진 미스라의 가슴팍을 발끝으로 가차 없이 짓밟았다. 그리고 미스라의 얼굴 바로 위에서 입을 크게 벌렸다.

 

시커먼 피로 더럽혀진 새의 사체가, 미스라의 얼굴에 뚝뚝 흘러내리며 연기를 피웠다.

 

아키라 : 미스라...!

 

오웬 : 구웩.... 커흑.... 하아.... 이걸로 비긴 거야.

 

오웬은 불쾌한 듯 입가를 닦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미스라 위에서 내려왔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우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웬 : 빨리 일어나. 오즈를 봉인하러 가게.

 

미스라 : 《아르시무》

 

오웬 : .......!

 

미스라가 주문을 외운 순간, 수정 같은 것이 오웬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미스라의 마도구인 해골이었다. 몸에 바람구멍이 나고 휘청거리면서도 오웬은 서있었다.

 

오웬 : .....까불지 말라고, 미스라.....

 

미스라 : 제가 할 말인데요.

 

미스라는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일어섰다. 검게 짓물렀던 부분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죽지 않는다던 오웬의 몸 또한, 어느샌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11화

 

현실 같지 않은 광경에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정말로 현실적인 피냄새가 나서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아키라 : 싸.... 싸우지 마세요!

 

이 얼마나 무력한 대사인가. 브래들리는 핏대를 세우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브래들리 : 너네 둘 다 바보냐?! 애타게 기다리던 밤이 왔다고?! 오즈와 쌍둥이를 치워버릴 찬스잖아!

 

미스라 : 먼저 이놈을 치우겠습니다.

 

오웬 : 해봐.

 

귀청을 찢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오즈가 가까이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밤이 되어 그의 마법이 사라지는 바람에 눈보라가 다시 몰아치기 시작한 듯했다.

 

어둠 저편에서 무시무시한 바람과 냉기가 몰아쳤다.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 같은 광경이다.

 

그런데도, 미스라도 오웬도 생기 넘치는 눈을 빛내면서 담대하게 미소 짓는다.

 

브래들리 : 못 해먹겠네, 멍청한 놈들.

 

욕설을 퍼붓는 브래들리의 목소리까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한 팔로 나를 감싸고, 다른 한 팔로는 커다란 총을 들어 겨눴다.

 

심장이 뜨겁다. 얼어붙은 공기 속이기에 자신에 몸에 흐르는 피의 뜨거움을 깨닫기라도 한 건지.

 

이게 북쪽 나라의 진짜 모습이다.

그림 속 스노우, 화이트 : 《노스콤니아》

 

리케 : .....읏, 투명한 돔이...! 하아... 이제야 겨우 숨이 쉬어지네요... 눈보라에 날아가 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림 속 스노우 : 그대는 작으니까 말이지.

 

리케 : 작지 않아요.

 

그림 속 화이트 : 이 돔 안에 있으면 눈보라에 휩쓸릴 일도 없을 게야. 그대들, 괜찮은가?!

 

카인 : 그럭저럭. 하지만, 아키라가 걱정이야. 어떻게든 데려와야 할 텐데.

 

아서 : 내가 갈게. 오즈님이 마법을 쓸 수 없는 이상, 우리 힘으로 북쪽 마법사들을 멈춰야 해.

 

오즈 : ....너에게는 무리다.

 

아서 :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즈님을 봉인하는 거예요.

카인, 리케. 오즈님과 쌍둥이님들을 부탁해.

 

카인 : 섭섭하게 무슨 소리야. 나도 같이 갈게.

 

리케 :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현자님을 되찾아야죠.

 

그림 속 스노우 : 하는 수 없지. 다 같이 가자꾸나. 여차하면 오즈는 마법으로 조그맣게 만들어서 어디 주머니에다 숨기면 돼.

 

아서 : 역시 스노우님! 오즈님을 주머니에 넣는 건 조금 재밌을지도요.

 

그림 속 화이트 : 아서, 우리를 옮겨주게나. 카인, 리케, 빗자루로 우리를 따라오도록. 멀어지면, 땅끝까지 날아가 버릴 게다.

 

카인 : 알겠어. 서두르자!

 

리케 : 갑시다!

 

아서 : ....으, 바람이 거세서 빗자루를 조종하기가 힘드네. 두 사람 다, 놓치지 않게 조심해!

 

카인 : 그래!

 

리케 : 네!

 

오즈 : 기다.....

 

아서 : 죄송합니다, 오즈님! 오즈님이 마법을 못 쓰신다는 걸 깜빡하고 두고 갈 뻔했어요!

 

오즈 : 아니...

 

아서 : 제 빗자루에 타세요!

어두운 밤의 색과, 눈보라의 색과, 번개의 파란 섬광이 뒤섞인다.

 

거기다 미스라와 오웬이 마법을 쓸 때마다, 얼음 지대는 형형색색의 빛깔을 발했다. 비정상적인 색채의 향연이 괴기스러웠다.

 

아키라 : 그.... 그만하세요....! 싸우면 안돼요...!

 

필사적으로 말리는 내 옆에서, 브래들리가 기운 넘치게 웃었다.

 

브래들리 : 아하핫! 들리겠냐!

 

나는 무력했다. 브래들리가 마법으로 지켜주지 않았으면, 나도 진작에 얼어붙고 부서져서 흩날렸을 거다.

 

이런 곳에서 말은 아무 힘도 없었다. 힘을 가지는 건, 사납게 날뛰는 자연마저도 굴복시키는 압도적인 강함뿐.

 

조금 전까지 공중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미스라와 오웬은, 이제 얼음 다리 양 끝에 서서 대치하고 있었다.

 

마법은 미스라가 우위였다. 하지만 오웬도 백기를 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웬 : 《쿠레 메미니》

 

오웬이 한 손을 들면서 앞으로 나왔다. 눈보라 속에서, 하얀 그림자가 혜성같이 긴 꼬리를 끌고 그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하얀 늑대의 망령들로 변해갔다. 오웬을 따르듯 넘실거리면서 섬뜩하게 짖어댔다.

 

옅은 웃음을 띄운 오웬은, 불온하고 위험하고 아름다웠다.

 

얼음 다리 반대편에서 미스라도 걸어 나왔다. 여전히 나른한 눈빛 그대로, 가벼운 몸짓으로 자신의 마도구인 해골을 공중에 띄웠다.

 

미스라 : 《아르시무》

해골은 섬광을 발하며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다.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해골이 되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오웬을 위협했다.

 

흉악한 포효를 토하는 섬뜩한 해골 앞에서도 어딘가 깨어난 듯한 눈을 하고 있는 미스라에게는, 광기 어린 요염함이 감돌았다.

 

오즈의 마법이 봉인된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고 매사에 대충인, 저기 있는 저 빨간 머리 남자다.

 

브래들리 : 이거 죽겠네. 오웬이.

 

아키라 : 네...?

 

브래들리 : 애초에 원래 미스라가 더 강해. 정면으로 부딪히면 승산이 없지. 저주받은 새 때문에 데미지도 있고.

 

아키라 : 그런....! 어떻게 멈출 방법은 없나요?

 

브래들리 : 뭐, 무리지. 그래도 네가 하라고 한다면, 여기서 미스라의 머리를 날려줄 수는 있어.

 

나는 말문이 막혀서 미스라 쪽을 쳐다봤다. 미스라는 분노할까, 아니면 김이 새서 싸움을 멈출까.

 

미스라에게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헤아릴 수가 없는 무서움과,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치, 한순간에 꺼질지 한순간에 타오를지 모를 불꽃처럼.

 

[.....귀찮아....]

 

초조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구해주려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브래들리 : 어쩔래?

12화

 

(오웬은 죽더라도 몇 번이고 되살아난다고 했어. 미스라도, 총에 맞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아무리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라지만...)

 

(어느 쪽이든, 고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키라 : .....!

 

눈부신 빛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미스라의 해골과 오웬의 늑대들이 맞부딪히자, 맥박이 뛰듯이 얼음 다리가 격렬하게 빛을 발했다.

 

오로라같이 흐릿했던 빛깔이, 독을 지닌 나방의 날개처럼 섬뜩하고 기묘한 색으로 변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땅울림에 세상이 요동쳤다.

 

저 멀리서, 쌍둥이의 목소리가 눈보라에 섞여 들려왔다.

 

그림 속 스노우 : 그만하거라! 미스라, 오웬....!

 

그림 속 화트 : 더 이상 마법을 쓰지 마!

 

미스라가 뒤돌아보고, 오웬이 고개를 든다. 그 찰나의 순간, 세계는 어둠에 잠겼다.

아키라 : .........!

 

세계에서 빛이 사라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쭉 늘어나는 듯한, 작은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남쪽 태고의 신전을 되살렸을 때도 느꼈었던 엄청난 충격이 덮쳐왔다.

 

너무나도 겁이 나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어둠 속에서, 죽음의 예감과, 무서운 적의를 느꼈다.

 

아키라 : .....으윽, 여기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광경이다.

 

각지에서 되살렸던, 태고의 신전이었다. 별과 달빛뿐인 고독한 신전.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축복하는 듯했던 축제의 음색이 들리지 않는다.

 

그림 속 스노우 : 큰일이구먼... 원시의 정령들이 선수를 쳐서, 잡아먹힌 것 같다네.

 

스노우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신전에는 북쪽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중앙의 마법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미스라 : ....잡아먹혀? 무슨 소립니까....?

 

그림 속 화이트 : 땅을 너무 자극한 게야. 우리가 원시의 정령들을 소환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소환된 게다.

 

오웬 : 그래서?

 

그림 속 스노우 : 우린 산제물이 된 게지. 북쪽 원시의 정령들은 성질이 사나우니 말이야. 이대로면 어둠에 먹힐 게다.

 

아키라 : .....어둠에 먹혀....?

 

그림 속 화이트 : 그래. 감각을 서서히 잡아먹히지. 우선 시간 감각을 잃고, 청각을 잃고, 시각을 잃고, 자아를 잃는다.

 

나는 두려움에 숨을 멈췄다. 아까까지 싸우던 미스라와 오웬도 서로 마주 보고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브래들리 : 젠장, 웃기지 말라고...! 그럼, 그전에 축제를 해서 정령들을 복종시키면 얌전해지지 않을까?

 

그림 속 스노우 : 중앙 마법사들이 없으면, 우리끼리는 축제를 할 수가 없다네.

 

그림 속 화이트 : 축제는커녕, 마법을 쓸 수도 없어. 북쪽 원시 정령들은 자신들을 굴복시키려는 마법사를 잡아먹고 싶어 할 게야.

 

브래들리 : 진짜냐고...

 

오웬 : ...최악이야...

 

(마법을 쓸 수 없다니... 그럼, 계속 이곳에 갇혀있어야 되는 거야...?)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 듯한...

 

고독한 신전도, 달도, 별도, 어둠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미스라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미스라 : 알겠습니다. 제가 공간의 문을 열죠.

원시의 정령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문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밖으로 나가주세요.

 

미스라의 제안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림 속 화이트 : 그대, 희생하겠다는 겐가...

 

오웬 : ....의도가 뭐야? 속죄하려는 거?

 

미스라 : 하? 속죄? 뭘요?

 

오웬 : ..............나한테 했던 짓이라던가....

 

미스라 : 아니, 그런 건 전혀 아닌데요.

 

오웬 : .....열받네....

 

브래들리 : 그럼 왜 그러는 건데. 여기서 마법을 쓰면 위험하다는 말, 못 들었냐?

 

미스라 : 그렇다 해도,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은 저니까요. 그거다운 활약을 할게요.

 

아키라 : 그거?

 

미스라 : 아, 뭐였더라. 어제 쌍둥이들이 말했었던...

 

그림 스노우, 화이트 : 에이스?

 

미스라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천진난만한 소년처럼 웃었다.

 

미스라 : 그래, 그거예요.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잊고 미스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벼운 미소가, 두려움에 빠져 절망하던 마음에 희망을 줬다.

 

긴장이 가득했던 모두의 눈에도 힘찬 빛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오웬 : .....아아, 그래. 하려면 하든가.

 

브래들리 : 부탁한다. 네가 돌이 되면, 내가 먹어줄 테니까 안심해.

 

오웬 : 치사하게 독차지하려는 거야?

 

브래들리 : 네놈들이 민폐짓한 대가라고.

 

미스라 : 돌은 되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불길한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두 사람에게, 미스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망설이다 미스라에게 물었다.

 

아키라 : 미스라.... 정말 괜찮은 거예요?

 

미스라가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 나른해 보이는 그 눈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미스라 : 상관없어요.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뭐…

내가,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13화

 

가슴이 뜨거워졌다.

 

무심하게 내뱉은 그 대사는, 흠잡을 데 없이 멋졌다.

 

북쪽 마법사들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데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가끔은 힘들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믿고 있어. 이 사람은, 틀림없이 멋진 사람이야.)

 

그림 속 스노우 : ....그대의 각오는 잘 알겠다. 부탁하마, 미스라.

 

그림 속 화이트 : 미스라여... 이게 영겁의 이별이 될지도 모른다네...

마지막으로 뭔가 남기고 싶은 말은...

 

미스라 : 《아르시무》

 

브래들리 : 잠깐, 예고는 하고 시작하라고?!

 

미스라가 주문을 외우자 네모난 문이 나타났다. 하지만, 평소처럼 공간이 바로 열리지는 않았다.

 

쿠구궁, 어둠의 기운이 세차게 요동쳤다.

 

오웬 : ......! 어둠이 움직였다...

 

오웬이 날카롭게 내뱉었다. 신전을 둘러싼 어둠의 입자와, 별과 달의 입자들이, 미스라에게 깃들듯이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미스라의 팔이 어둠에 뒤덮였다. 그는 어둠의 입자에 대항하면서, 공간의 문을 조금씩 열어나가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미스라가 고통을 견디듯 입술을 씹었다.

 

미스라 : ........윽.

 

아키라 : 힘내요, 미스라....!

 

나도 모르게 응원이 나왔다. 다른 이들도 숨을 죽이고 미스라의 마법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틈으로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그것과는 대비되게 미스라의 몸은 어둠에 잠겨가고 있었다.

 

그의 가슴과 배 주변에 어둠이 뻥 뚫려, 그 너머로 별이 빛나고 신전이 흔들리고 있었다.

 

미스라 : .....큭....!

 

미스라의 초록 눈마저 까만 어둠에 먹힐 뻔한 그때.

 

오즈 : 《복스노크》

 

공간의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중앙 마법사들이 있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나 흘렀는지, 문 너머로는 아침노을이 빛나고 있었다. 오즈도 지팡이를 들고 있고, 쌍둥이들도 그림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스노우 : 오오! 중앙 마법사들이다!

 

아서 : 스노우님, 화이트님! 현자님도 무사하셔....!

 

화이트 : 잘 했다, 미스라! 이대로 성스러운 축제를 행하자꾸나!

 

미스라를 집어삼켰던 어둠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탈진해서 무너지려던 그의 몸을, 오즈가 받았다.

 

미스라 : ....오즈...

 

오즈 : 너희들은 나중에 처벌하지. 축제를 거행해서 북쪽 원시의 정령들을 복종시켜라.

ㅡㅡ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 알겠다네. 그럼 시작한다!

 

스노우, 화이트 : 《노스콤니아》

 

성스러운 축제의 음색이 울리기 시작한다.

 

북쪽 마법사들이 크게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미스라 : 《아르시무》

 

오웬 : 《쿠아레 모리트》

 

브래들리 : 《아도노포텐스무》

 

스노우, 화이트 : 《노스콤니아》

 

중앙 마법사들도, 북쪽 마법사들을 지원하듯 주문을 외웠다.

아서 : 《파르녹턴 닉스지오》!

 

카인 : 《그라디어스 프로세라》!

 

리케 : 《산레티아 에디프》!

 

오즈 : 《복스노크》

 

그러자, 태고의 신전이 별빛보다도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빛의 기둥이 신전 중앙에 우뚝 솟았다.

 

마법사들을 희미하게 감쌌던 빛이 빛나면서, 거대한 기둥으로 유성같이 빨려 들어갔다.

 

번뜩이는 눈부심에, 시야가 하얗게 흐려져간다....

우리는 마침내 희망의 평원으로 돌아왔다.

 

오웬 : ....겨우 끝났네...

 

브래들리 : ....배고프다...

 

미스라 : ....졸려....

 

카인 : 너희, 모처럼 대활약한 거니까, 좀 더 그럴싸한 대사로 마무리하라구.

 

브래들리 : 아하하. 멋있었냐? 기사 씨의 상징을 가로채버려서 미안하군.

 

오즈 : .....너희들 때문에, 젊은 마법사들과 현자가 위험에 처했다.

나를 봉인한다니... 그 어리석음을 몸소 깨달아라.

 

미스라 : 하....? 이제 와서 번개를 내리칠 생각인가요....?

 

오웬 : 지팡이로 겨누지 마. 우리가 가여워 보이잖아? 저기, 도와줘, 왕자님....

 

아서 : 오즈님.... 저들 덕에 축제도 성공시켰고, 이번에는 너그럽게 넘어가 주는 게....

 

오즈 : .......이번뿐이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라.

 

리케 : 다행이네요. 북쪽 마법사 여러분들, 피곤하시죠?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 드실래요?

 

브래들리 : 오, 뭐 가져왔냐?

 

오웬 : 나도 먹을래.

 

미스라 : 요기가 되려나요.

 

리케 : 잠깐....! 다 준다고는 안 했어요! 다 준다고 안 했는데!!

 

떠들썩한 그들의 대화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웃었다.

 

아키라 :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스노우 : 그렇구나. 어찌 됐건 각국의 태고의 신전들은 전부 되살렸다.

 

화이트 : 이것으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변도, 조금이나마 가라앉을 테지. 고생 많았다네, 현자.

 

쌍둥이의 격려에 미소로 답하고, 북쪽 나라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러모로 힘들긴 했지만, 성스러운 축제 일을 통해서, 21명의 마법사들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아.... 하늘에 아직 달이 남아있어...)

 

하늘 저편에는, 옅은 흰빛을 머금은 아침달.... <거대한 재앙>이 떠 있었다.

 

달과 싸우는 현자의 마법사들.

이들의 싸움은, 아직 막을 올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