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에튀드-1

장난을 좋아하는 가면의 에튀드 ~서&남~

1~5

아키라 :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내 방 청소나 할까.

마법관에서 생활하고 나서부터 물건이 꽤나 늘었네... 아, 이건...

 

클로에 : 현자님, 지금 있어?

 

아키라 : 클로에. 네, 있어요. 들어오세요.

 

클로에 : 현자님, 뭐 하고 있었어?

아... 그 가면은 혹시, 그때의...?

 

아키라 : 네. 처음으로 서쪽 마법사들과 훈련을 하러 갔을 때의, 그거예요.

 

클로에 : 그립네... 그때 우리, 마법관에 막 도착했을 때였지.

 

나는 가면무도회용인 화려한 가면을 손끝으로 살짝 훑으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그것은 서쪽 마법사들의 첫 훈련 때였다....

21명의 마법사들이 전부 마법관에서 지내게 된지라, 마법관은 지금 이사 때문에 분주한 상태였다.

 

루틸 : 읏차... 집에서 다 가져오는 건 힘드네... 나중에 중앙의 시장에서 사기로 할까나.

 

미틸 : 돈 안 모자랄까요?

 

피가로 : 중앙에서 이사 준비금을 내준댔으니까 문제없어.

 

레녹스 : 미틸, 이건 방 어디다 둘 거야?

 

미틸 : 아! 여기에 부탁드려요!

 

이사를 즐기는 마법사들도 있었고, 심드렁한 마법사들도 있었다. 클로에는, 그중에서 가장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클로에 : .......

 

아키라 : 어라? 왜 그래요, 클로에? 남쪽 마법사들한테 뭐 볼일 있나요?

 

클로에 : 혀, 현자님.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아키라 : 그런가요....? 모르는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저도 잘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요.

 

클로에 : 아하하! 알겠어. 고마워, 현자님! 나중에 봐!

클로에 : 라스티카, 라스티카! 남쪽 마법사들은 물건을 사러 간대. 우리도 뭐 더 사는 게 좋으려나?

계속 여행을 해와서 짐이 많지가 않네. 다들 방에다 뭘 두는 걸까? 뭐 부족한 거 있을 거 같아?

 

라스티카 : 후아암... 클로에 마음대로 해도 돼.

 

클로에 : 라스티카, 또 대낮까지 잤구나? 그럼 안 된다니까? 중앙 마법사들은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있었단 말야.

제대로 안 하면 혼날....

 

샤일록 : 하암.... 안녕하세요.

 

클로에 : 아, 안녕. 샤일록. 어제 늦게 잤어?

 

샤일록 : 아뇨. 평소대로예요. 저는 야행성이라 이게 일상이라서요. 클로에, 좋은 하루 보내시길.

 

클로에 : 고마워!

....샤일록, 멋있어... 늦잠을 자도 샤일록은 칠칠치 못한 느낌 같은 게 없네.

같은 서쪽 마법사니까 더 친해지고 싶어! 그치만 샤일록은 어른스러우니까 힘드려나?

 

클로에 : 무르랑은 저번에 같이 놀았는데! 특이하고 재밌어. 가끔은 깜짝 놀랄 때도 있지만.

 

클로에 : 남쪽 마법사들한테도 말을 걸어볼걸... 남쪽 사람들은 왠지 상냥해 보여서 좋아!

그래도 아는 사람들끼리만 얘기하고 있는데, 끼어들면 안 되겠지 싶었거든.

남쪽은 다들 안면이 있는 사이들이라 좋겠다~

 

클로에 : 저기, 라스티카, 듣고 있어?

 

라스티카 : 하아암... 듣고 있어.

 

클로에 : 거짓말! 눈이 반쯤 감겨 있잖아!

 

라스티카 : 오늘은 말을 많이 하네. 즐거운 일이 많이 있었니? 아니면, 즐거운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은 예감?

 

클로에 : 그런 건 아닌데... 나, 라스티카 이외의 마법사들이랑 이렇게 함께 있는 거 처음이잖아.

모두랑 친해지고 싶어. 그런 생각을 했더니 진정이 안 돼.

 

라스티카 : 왜?

 

클로에 : 왜냐니? 왜 친해지고 싶냐는 거야? 아님 왜 진정이 안 되냐는 거야?

 

라스티카 : 둘 다려나?

 

클로에 : 으음... 친해지고 싶은 건, 마법사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어서야. 그야 다들 멋진 사람들이잖아.

진정이 안 되는 건, 친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으니까....

말을 걸면 안 되는 타이밍에 말을 걸었다가 폐가 될 수도 있고...

이상한 짓을 해서 미움받기도 싫고...

 

라스티카 : 난 클로에가 이상한 짓을 해도 밉지 않아.

왜 이상한 짓을 한 걸까를 생각하면 재밌어져서, 나도 이상한 짓을 해버리겠지만.

 

클로에 : 라스티카보다 이상한 짓은 안 하거든...

 

라스티카 : 클로에라면 금방 친구가 생길 거야. 친절하고 상냥하고, 말도 잘 하고, 재봉도 잘 하잖아.

 

클로에 : 라스티카는 그렇게 말해주지만....

 

라스티카 : 네가 웃으면 분위기가 밝아져. 아침에 지저귀는 작은 새나,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색깔처럼.

클로에는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이야. 그런 아이가 곁에 있으면 다들 기뻐하지.

자신을 갖고 웃어줘. 나도 행복해, 클로에.

 

클로에 : 라스티카....

 

라스티카 : 모닝 홍차를 타주기도 하고.

 

클로에 : 정말~ 부탁하는 법을 잘 안다니까! 좋아. 정성껏 잎을 우려내서 맛있는 홍차를 타줄게.

 

라스티카 : 고마워.

 

클로에 : 맛있는 홍차를 마실 때에도, 잎이 우러나는 걸 차분하게 기다리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서서히 친해지는 거야.

매일 인사를 하고, 조금씩 대화를 하면서 내 얼굴이랑 이름을 기억시키면서...

무리하지 말고 친해지자.

 

클로에 : 아아, 두근거려. 빨리 모두랑 많이 얘기하고 싶다!

2화

 

클로에 : (아침 주방은 조용하구나.... 아침밥 준비는 분명, 동쪽의 네로라는 사람이 해주는 걸 텐데....)

 

네로 : .......후아암..... 졸려....

 

클로에 : 앗.... 안녕.

 

네로 : 일찍 일어났네. 서쪽의 재봉사 씨였던가?

 

클로에 : 응. 서쪽 마법사 클로에야!

괜찮으면 도와줄까 싶어서. 저기, 혼자 하려면 힘들지 않아?

 

네로 : ........

 

클로에 : (.....아..... 괜한 짓이었던 걸까...? 동쪽 마법사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댔는데...)

 

네로 : .....아냐. 충분해. 괜찮아.

 

클로에 : 그, 그랬구나.... 미안해.

 

네로 : 미안. 혼자 하는 게 편한 성격이거든.

그래도, 그.... 고맙다.

 

클로에 : (아... 웃었어. 다행이다...)

 

네로 : 끝날 때쯤 와. 갓 구운 빵을 먹게 해줄게.

 

클로에 : 고마워! 기대할게!!

클로에 : 하아~ 조금 긴장했다... 그래도 그 네로라는 사람, 상냥해 보였어. 이따 아침 먹으러 가자.

 

카인 : 거기 누구 있어?

 

클로에 : 아.... 서쪽의 클로에야! 중앙 마법사 카인 맞지? 안녕!

 

카인 : 안녕! 미안한데 악수 좀 해줘. 접촉하기 전에는 상대방 얼굴이 안 보이거든.

 

클로에 : 아아, 그랬지! 미안해! 눈치 못 채서!

....자! 이제 보여?

 

카인 : 보여. 고마워.

 

클로에 : (웃었다...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카인은 멋진 것 같아. 멋있으면서도 상냥해서 대화하기가 편해.)

 

카인 : 일찍 일어나네. 클로에도 아침 산책 중이야?

 

클로에 : 아침밥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주방을 들여다보고 왔어. 카인은 검 연습을 하던 거야?

 

카인 : 아아. 단련을 게을리하면 실력이 무뎌지니까 말야.

 

클로에 : 내가 방해한 걸까...?

 

카인 : 내가 먼저 말을 건 거였잖아? 오늘은 아침 산책으로 바꿔봐야겠다. 모처럼 클로에를 만났으니까.

 

클로에 : (엄청 상냥해...)

 

카인 : 평소에 어떤 코스로 해?

 

클로에 : 오늘부터야. 오늘이 처음!

 

카인 : 오, 첫날이구나. 그럼 힘내서 멀리 나가볼까?

맛있는 아침식사 전에 배를 비워두자고.

 

클로에 : 응! 동쪽의 네로가 말야, 맛있는 빵을 구워준대!

 

카인 : 그거 기대되는데?

클로에 : 있지있지, 라스티카! 중앙의 카인이랑 친구가 됐어!

카인은, 엄청 좋은 사람이었어!

 

라스티카 : 다행이네.

 

클로에 : 농담도 엄청 많이 해!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팠었어! 기사단의 조크는 엄청 과격하구나!

카인도 마법사라는 걸 숨기면서 살아왔대. 내 얘기를 했더니 비슷한 처지라고 해줬어.

다음엔 아서랑도 친구가 돼보라고 했어. 아서는 왕자님이잖아? 나 같은 건 무리라고 했더니...

'마법사랑 친구 따위 못 한다는 소릴 들으면, 슬프잖아? 왕자님도 똑같아.' 랬어.

 

클로에 : 왠지 감동해버렸어. 카인은 재밌고 멋진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깊은 생각까지 하고 있구나.

 

라스티카 : 그렇구나. 멋진 사람과 만나게 돼서 다행이야.

 

클로에 : 응! 그리고 있지...

 

라스티카 : 클로에.

 

클로에 : 왜?

 

라스티카 : 나도 칭찬 한번 해 줘.

 

클로에 : 라스티카는, 최고의 친구에다 최고의 스승님이야!

 

라스티카 : 고마워. 너도 최고야. 클로에.

히스 : ......

 

클로에 : (아....! 동쪽의 히스클리프다... 예쁘다... 저런 애의 옷을 만들 수 있다면 참 행복할 텐데...

섬세한 느낌도 잘 어울릴 것 같고, 심플하게 해도 미모가 돋보일 거고, 품위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고져스하게 해봐도...)

 

히스 : .....

 

클로에 : (앗, 눈치챘다! 너무 지나치게 봤나...?

뭐, 뭐, 뭔가 말을 걸어볼까...)

 

히스 : .................

 

클로에 : (.....윽, 눈을 피했어. 기분 상하게 만든 걸까...

....예전의 나처럼, 소극적인 걸지도...)

 

클로에 : (....으으, 조금 용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인사라도 해두자... 그러는 게 히스클리프도 마음이 편해지겠지.

아닌가?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아아, 제발 이 예쁜 애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클로에 : 아... 안녕. 날씨 좋네.

 

히스 :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클로에 : 존댓말은 안 써도 돼!

....앗.... 아니면 존대가 편해....? 분명, 동쪽 대귀족....

 

히스 : 아, 아뇨.... 괜찮아요.

 

클로에 : (목소리가 작네.... 그치만 차갑지는 않아. 조심스럽고, 소극적이고, 어색하면서 서툴러.

예쁜 얼굴인데, 아래만 보고 있어....

....이 애가 좋아.... 친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클로에 : 아하하.... 날씨가 좋으니까 산책하고 올게.

히스클리프, 괜찮다면 그, 또 말 걸어도 돼?

 

히스 : 앗.....네.... 저야말로 뭔가.... 죄송해요.

.....남이랑 얘기하는 게 어색해서....

 

클로에 : 아냐, 전혀!

 

히스 : ....고마워, 클로에. 말 걸어줘서...

 

클로에 : 나... 나야말로! 고마워!

 

클로에 : (아아, 기뻐. 친해지고 싶다....

그래도 조급해하지는 말자. 사람마다 각자의 페이스가 있는 거니까. 천천히, 홍차 잎이 우러나는 걸 기다리는 것처럼.

가장 좋은 향이 나고, 가장 좋은 맛이 될 때, 티컵을 준비해서 즐거운 수다를 시작하는 거야.)

루틸 : 짠~

 

클로에 : (........?! 점심 먹고 나서 식당에서 졸고 있었는데, 눈앞에 털뭉치가 나타났어....?!)

 

루틸 : 문제입니다~ 이건 도대체 뭘까요? 구름일까요? 대걸레일까요~?

정답은 레노 씨네 양의 엉덩이였습니다ㅡ!

 

클로에 : (....뭐랄까, 재밌는 애네....)

 

루틸 : 서쪽 마법사 클로에죠? 저는 남쪽의 마법사 루틸.

샤일록 씨한테서 저랑 클로에가 동갑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친구가 되고 싶어서요.

 

클로에 : 친구? 나랑?

나도 친구가 되고 싶었어! 기쁘다아.... 잘 부탁해, 루틸!

 

루틸 : 신난다! 잘 부탁해, 클로에!

그 옷, 정말 멋있어! 서쪽 마법사 씨는 도시적이라서 멋져.

 

클로에 : 저, 정말? 이거, 내가 만든 거야. 나 재봉사가 되는 게 꿈이라서....

 

루틸 : 알아! 나라에서 최고의 재봉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었지? 나라에서 최고라니 대단해!

 

클로에 : 에헤헤.... 아직은 그냥 공부 중일뿐이지만 말야. 루틸은 학교 선생님이랬지?

 

루틸 : 응응! 하지만 내 꿈은 그림책을 그리는 거야. 마법사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

 

클로에 : 헤에! 완성되면 나도 읽게 해줄래?

 

루틸 : 물론이지! 감상 말해줘야 돼!

 

레녹스 : 루틸. 우리 애를 납치하지 말아줘.

 

루틸 : 아, 레노 씨.

클로에, 이쪽은 양치기인 레녹스 씨. 이 애의 주인이야. 상냥한 사람이고.

 

클로에 : 안녕하세요, 레녹스 씨. 서쪽 마법사 클로에예요.

 

레녹스 : 존댓말 안 써도 돼. 레녹스야. 잘 부탁해.

서쪽의 훈련은 잘 진행되고 있어?

 

클로에 : 훈련...? 훈련이라니?

 

레녹스 :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을 대비해서, 나라마다 마법 훈련을 하고 있잖아?

그걸 위해서 마법관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 거 아닌가?

 

클로에 : 그런 얘길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서쪽은 그런 거 전혀 없어서....

 

루틸 : 그럼 지금까진 뭘 하면서 지냈어?

 

클로에 : 으음.... 태평하게 좋아하는 걸 한다던가....

 

루틸 : 아하하! 서쪽 마법사답네! 우리도 훈련은 태평하죠? 레노 씨.

 

레녹스 : 뭐 그렇지. 피가로 선생님도 태평한 사람이고.

 

클로에 : 치,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여러 사람한테 말을 걸었어.... 그래서 현자의 마법사 일은 잊고 있었어.

 

루틸 : 친구 만들기도 좋은 거야. 어느 나라의 마법사든, 친해져야 팀워크도 상승할 거고!

 

레녹스 : 그래. 신경 쓸 거 없어. 서쪽에는 오래 산, 숙련된 마법사들이 많으니까.

 

클로에 : (격려해 줬어... 역시 상냥한 사람들이야... 나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도 해줬어.)

 

루틸 : 클로에? 왜 그래?

 

클로에 : 아.... 저기 말야, 나, 계속 남쪽 마법사들이랑 친구가 되고 싶었어....

 

루틸, 레녹스 : .........

 

클로에 : 상냥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생각했던 대로라 감격했어. 에헤헤... 좀 더 빨리 말을 걸어볼걸.

 

루틸 : 나도! 그렇게 말해줘서 기뻐. 이제부터 많이 친해지자.

 

레녹스 : 괜찮다면, 오늘 오후에 있을 남쪽의 훈련을 보러 와.

미틸도, 피가로 선생님도 기뻐할 거야.

 

클로에 : 그래도 돼?

 

루틸 : 응! 보러 와, 보러 와!

 

클로에 : 와아, 좋아! 그럼, 실례할게!

클로에 : 루틸은 샤일록이랑 친해?

 

루틸 : 저번에 바에 가서 마셨었어. 그 때 수다를 떨다가....

 

무르 : 클로에다~!

 

클로에 : 우왓, 무르....!

 

루틸 : 왓, 고양이처럼 달려들었어!

 

무르 : 어디 가? 어디서 왔어? 나랑 놀래? 안 놀래?

 

클로에 : 아하하! 간지러워! 지금은 못 놀아. 남쪽의 훈련을 보러 갈 거거든.

 

무르 : 나도 가고 싶어!

 

클로에 : 으음, 무르도 같이 가도 돼?

 

루틸 : 당연하지! 무르 씨, 같이 가요.

 

무르 : 아싸~!

피가로 : 오늘은 손님이 많네.

 

클로에 : 자, 잘 부탁드립니다.

 

루틸 : 후후, 제가 불렀어요. 클로에가 남쪽 마법사들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해서요.

 

미틸 : 와아, 그렇군요! 그럼 클로에 씨, 좋은 사람이네요!

 

레녹스 : 하하. 그럼 좋은 사람이라니....

 

미틸 : 왜냐면 저희를 깔보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잖아요? 좋아한다고 해주면 좋은 사람이에요!

클로에 씨, 전 루틸의 남동생인 미틸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클로에 : (루틸보다 기가 세 보이는 애네. 기운 넘쳐서 귀여워.)

 

클로에 : 응! 잘 부탁해!

 

미틸 : 무르 씨도!

 

무르 : 훈련 기대된다!

 

피가로 : 서쪽의 무르라면, 위대한 학자잖아? 내가 가르칠 건 없다고 보는데.

지금은 지식이 다 날아가 버렸다고 했나?

 

무르 : 날아가 버렸어! 날아버려!

 

미틸 : 와앗, 갑자기 공중에 떠올랐어....

 

클로에 : 무르, 그러면 안 돼! 성실하게 훈련을 받아야지...!

 

피가로 : 아하하, 뭐 좋아. 방에 날아들어온 나비라고 보면 되지. 그럼, 어제 했던 거에서 이어서 가볼까?

클로에, 모르는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클로에 : 네!

4화

 

클로에 : 아~ 재밌었지!

 

무르 : 재밌었어!

 

클로에 : 학교 수업 같았어! 학교에 가본 적은 없지만.

무르는 학자잖아? 학교 다녔었어?

 

무르 : 학교는 만들었어! 근데 금방 폐교했어!

 

클로에 : 어, 어째서...?

...그래도, 좋겠다. 학교....

 

무르 : 아! 현자님이다!

 

클로에 : 정말이네... 굉장해, 서류를 한가득 안고 있어....

 

아키라 : 클로에, 무르! ....윽, 아차....!

 

클로에 : 앗! 내가 들어줄게! 서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무슨 일이야?

 

아키라 : 마법관에 도착한 의뢰예요. 전 세계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근데 보고서에 쓰인 문자를 읽을 수가 없어서요. 콕로빈 씨한테 물어볼까 해서...

클로에는 마법관 생활에 좀 적응이 됐나요?

 

클로에 : 응! 오늘은 남쪽 훈련에도 같이 참가했어!

 

아키라 : 그런가요. 다행이다. 네로가 걱정했었어요. 아침에 클로에가 도우러 와줬는데, 거절해버렸다고.

혹시 그걸 신경 쓰고 있진 않은지 봐달라고 했어요.

 

클로에 : 네로.... 진짜 엄청 상냥해....

 

아키라 : 다들 상냥하죠? 서투른 부분도 있지만, 저마다 배려하면서 살아가니까요.

 

클로에 : 현자님은? 현자님은 뭐 힘든 거 없어?

 

아키라 : 괜찮아요! 깜짝 놀랄 때도 많지만, 모두가 도와주니까요.

 

클로에 : 다행이다~

 

아키라 : 클로에나 무르는 어때요?

 

무르 : 클로에는 학교가 가고 싶대.

 

아키라 : 학교?

 

클로에 : 앗.... 서쪽 마법사들이랑도 훈련이나 수업을 해보고 싶어서....

 

아키라 : 괜찮네요! 샤일록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요? 지금이라면 분명 바에서 준비를 하고 있을 거예요.

서류 가져다 놓고, 슬쩍 보러 가보죠!

서류를 방에 두고, 클로에와 무르와 함께 마법관에 있는 바로 향했다.

 

클로에는 조금 긴장한 듯하면서도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밝은 제비꽃 색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새학기의 학생 같아 보였다. 불안해하면서도, 즐거운 나날을 꿈꾸는.

 

잘 녹아들 수 있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멋지거나 놀라운 일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하는.

 

나는 클로에의 희망을 이뤄주고 싶었다. 나도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거리에서, 같은 소원을 품었었으니까.

 

무르 : 여기야! 들어갈게!

 

클로에 : 잠깐만! 어떻게 부탁할지 생각하고 나서.....!

 

무르 : 샤일록~

 

클로에 : 하와와....!

바에는 두 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카운터 안쪽에 있는 샤일록과, 카운터석에 앉은 라스티카.

 

두 사람은 우리를 돌아 보고는 동시에 미소 지었다.

 

라스티카 : 안녕, 클로에, 무르. 현자님도 안녕하세요.

 

아키라 : 안녕하세요. 와아, 맛있어 보이는 홍차네요.

 

샤일록이 정중한 손짓으로 라스티카 앞에 놓인 컵에 홍차를 따랐다.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샤일록 : 지금은 카페랍니다. 이 사람이 모닝 티를 달라고 졸라서요. 조르는 게 무척이나 능숙한 사람이에요.

 

라스티카 : 나에게 딱 맞는 찻잎을 골라주길래, 순간 내 신부가 아닐까 착각했어. 티포트에 갇혀버렸지만.

 

클로에 : 라스티카, 또 저질러버린 거야....?

...미안해, 샤일록....

 

샤일록 : 자극적이고 재밌는 체험이었어요. 새장 속 새는 제 성미에는 안 맞았지만.

클로에, 라스티카를 찾으러 온 건가요?

 

클로에 : 아냐. 저기... 샤일록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어.

 

클로에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진지하게 전했다. 샤일록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샤일록 :이런, 오늘은 여기저기서 부탁이 많네요. 모닝티를 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면, 맡아드리겠습니다.

 

클로에 : 어, 어려운 일이어야 맡아주는 거야?

 

샤일록 : 저는 응석을 받아주는 걸 좋아해서요. 귀여운 재봉사 마법사의 부탁이라면야 더더욱.

자, 말씀해보세요.

 

클로에 : 나.... 마법 훈련을 해보고 싶어. 샤일록이 선생님 역이라고 들었으니까, 마법을 알려줬으면 해서....

 

샤일록 : 뭐야, 그런 거였나요.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 알려드리지요.

 

클로에 : 으음, 학교처럼 해보고 싶은 거야. 남쪽 나라에서는, 피가로 씨가 수업을 하듯이 모두를 가르치면서....

 

클로에가 머뭇거리며 전하자, 샤일록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샤일록 : 역할극을 하며 유사체험을 즐기고 싶다는 건가요? 귀부인과 하인의 밀회, 같은.

 

클로에 : ....귀부인과 하인의 밀회....?

 

라스티카 : 비극적인 소재네.

 

무르 : 샤일록. 그건 클로에한테는 아직 이르지 않아?

 

샤일록 : 아아. 선생님과 학생이었죠. 선생님 역이란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저,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무르 : 내가 학교를 했을 때도, 학생은 전부 할아버지들 뿐이었어!

 

라스티카 : 가정교사는 어때? 가정교사를 하는 귀부인을 만났던 적이 있어.

 

샤일록 : 가정교사라면 할 수 있겠네요. 그럼, 클로에는 귀족 도련님 역할이면 될까요?

5화

클로에 : 엣, 저기....

 

라스티카 : 그럼, 나는 메이드 역할을 할래.

 

무르 : 그럼 난 마차의 말! 히힝!

 

샤일록 : 클로에 도련님, 어제 드린 숙제는 끝내셨나요? 모르는 게 있다면 지도해드리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으시다면, 세계의 법률에서부터,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안경을 밀어올리는 척까지 하는 샤일록은, 의외로 가정교사 놀이에 적극적이었다.

 

라스티카 : 똑똑. 덜컥. 공부는 그쯤 하시고. 맛있는 팬케이크를 구워왔어요.

 

무르 : 따그닥따그닥! 히힝! 외출입니다요! 외출!

 

라스티카와 무르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흥이 넘치는 서쪽 마법사들에게 몰리면서, 클로에가 황급히 고개와 손을 저었다.

 

클로에 : 그, 그게 아니고...! 평범하게 다 같이 책상을 나란히 놓고 공부하면 즐겁겠다는 거였어!

 

그러자 서쪽 마법사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뭐야, 그런 거였나, 같은 느낌으로 납득했다.

 

무르 : 아아, 평범한 거 말이지!

 

샤일록 : 평범한 거로군요.

 

라스티카 : 평범한 거였구나.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지금 했던 건 다음에 이어서 즐기기로 할까.

 

클로에 : ....윽, 묘하게 두근거렸어....

그런 식으로 서쪽 마법사들의 훈련이 시작됐다.

 

나도 교실 구석에서 견학하기로 했다. 마법사들의 수업이라니 이 얼마나 두근거리는 울림인가.

 

샤일록 : 그럼, 수업을 시작할까요.

 

라스티카 :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무르 : 샤일록 선생님~

 

샤일록 : 후후. 제법 나쁘지 않군요.

 

클로에 :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샤일록 : 어떤 것부터 가르쳐 드릴까요? 즐거운 것? 무서운 것? 치유가 될만한 것?

 

무르 : 저요, 선생님!

 

샤일록 : 네, 무르.

 

무르 : <거대한 재앙>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샤일록 : 그건 선생님도 모르고, 알려고 했던 사람의 영혼도 엉망이 됐기 때문에 알 생각도 평생 없습니다. 자, 다음 분.

 

무르 : 에에~?!

 

라스티카 : 저요, 선생님.

 

샤일록 : 네, 라스티카.

 

라스티카 :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샤일록 : 그런 얘기는 선생님도 싫지 않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적합하지가 않네요. 다음번의 개인 수업 때 얘기해드리지요.

 

라스티카 : 개인 수업이라. 두근거리네.

 

샤일록 : 다음 분.

 

클로에 : 네.... 넷!

 

클로에가 힘차게 손을 들었다. 샤일록이 웃으며 파이프 끝으로 클로에를 가리켰다.

 

샤일록 : 네, 클로에. 말씀하세요.

 

클로에 : 으음... 서쪽 마법사들의 특기 마법이랄 거 있나요?

 

샤일록 : 좋은 질문이네요. 무르, 라스티카, 두 분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르 : 화려한 걸 좋아해! 알맹이는 없어도 연출이 큰 거!

 

라스티카 : 환상을 보여주거나 하는 것일지도. 그리고, 변신도 잘 하는 것 같아.

 

클로에 : 변신 마법은 상위 마법이지? 나는 아직은 잘 못해....

 

샤일록 : 클로에는 마법으로 옷을 만드는 걸 잘하지 않나요. 그것도 변신 마법 중 하나랍니다.

서쪽 마법사들은 타인에 대한 흥미가 강하고, 기분전환을 좋아하니까요. 변신 마법이 성질에 맞는 거겠죠.

 

샤일록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나도 손을 들고 이야기에 참여했다.

 

샤일록 : 네, 현자님.

 

아키라 : 특기 마법이라는 건... 서쪽 마법사들이 변신 마법을 잘 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 마법사들한테도 그런 특기가 있는 건가요?

 

샤일록 : 그렇습니다. 북쪽 마법사들은 공격 마법이고, 남쪽 마법사들은 축복이나 조화의 마법이지요.

동쪽 마법사들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세심한 마법이 특기이고... 중앙 마법사들은 딱히 어디에 치우쳐 있지는 않아요.

 

아키라 : 그렇군요.... 그건 마법의 강함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서쪽 마법사들은 오즈보다 변신을 잘 하나요?

 

샤일록 : 마법관에 있는 북쪽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마법이든 다른 나라 마법사들보다 뛰어날 겁니다.

그래도 특기인 건 아니니까, 쓰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미스라가 마음만 먹으면, 기척을 지우고 저희가 눈치챌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새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훌륭하게 작은 새인 척을 하는 데에 그는 별로 관심이 없겠죠. 그보단 새 떼를 덮치는 폭풍의 힘을 원할 겁니다.

 

아키라 : 서쪽 마법사들은 관심이 있고요?

 

라스티카 : 네. 전력을 다하죠.

 

무르 : 완전히 새가 되는 건 즐겁지!

 

클로에 : 나도 알 것 같아... 뭔가가 된 나 자신을 상상하는 건 즐거워.

 

샤일록 : 누군가가 다른 모습이 되는 것도 즐겁죠.

 

뭔가로 변신하는 건, 서쪽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즐거운 일인 것이다.

 

라스티카도 뭔가를 작은 새로 만들기도 하고, 무르도 드라몬드 씨를 쥐로 만든 적이 있다.

좋아하는 게 특기, 라는 건... 알 것도 같았다.

 

클로에 : 나도 변신 마법을 배워보고 싶어.... 배울 수 있을까?

+

 

6화

 

샤일록 : 지금 가르쳐드려도 상관은 없지만 변신 마법은 고도의 마법이니, 바로 습득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어요. 뭔가로 변하고 싶은, 치장하고 싶은 그 마음이 클로에의 마법을 강하게 하는 거라면...

변신 마법을 습득하고 나서, 옷에 대한 마법 향상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클로에 : 에엑?! 그건 곤란한데....

 

아키라 : 전체적으로 향상되는 게 아니었군요.

 

샤일록 : 마법은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요. 한 청년을 자기 것으로 사로잡으려던 소녀가, 아름다움을 가꿔 사교계의 꽃이 된 뒤...

남에게 사랑을 받는 기쁨을 알게 되어 청년을 향한 연심을 잃는 일도 있듯이,

마법도 마음도, 변하기가 쉬운 것이지요.

 

클로에 : 그런 거면... 변신 마법은 아직 배우고 싶지 않아. 좀 더 멋진 옷을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배울래.

나는 멋진 옷을 만들어서 누구를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을, 아직 잊고 싶지 않으니까...

 

라스티카 : 괜찮지 않을까? 클로에가 만드는 옷은, 그 자체가 멋진 마법과도 같으니까.

진짜 새가 될 수 없으니만큼, 아름다운 새와도 같은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행복한 이야기라고 봐.

 

클로에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클로에가 기쁘게 웃었다.

 

뭔가를 할 수 없는 만큼, 다른 멋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마법사다우면서도 재밌는 이야기였다.

 

무르 : 그럼, 오늘 수업은 뭘 해?

 

샤일록 : 그러네요. 그럼, 마법으로 변신한 것을 간파하는 방법을 배워보는 건 어떤가요?

 

클로에 : 간파하는 방법... 원래는 뭐였는지, 마법으로 알아본다는 거야?

 

샤일록 : 네. 변신 마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간단해요.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면 그만이니까요.

 

클로에 : 어떤 식으로 찾아내면 돼?

 

샤일록 : 마법으로 느껴보는 겁니다. 본래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것은, 대체로 갑갑해 보이거든요.

아니면, 어딘가가 부자연스러워요. 지나치게 당당하다거나 무리를 한다거나.. 그런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듣는 겁니다.

 

클로에 : 소리 없는 목소리....

 

아키라 : 그거, 인간도 알아차릴 수 있는 건가요?

 

무르 : 감이 날카로운 인간이면 알아채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의 거처일 땐 마법의 지배력보다 감이 이길 수도 있어.

 

아키라 : 으음.... 길가의 경치 속에 섞여 있으면 알기 힘들지만, 자기 방이라면 알 수도 있다는? 그런 건가요.

 

무르 : 그래그래. 관심이 많은 물건이라거나.

진흙길인데 반짝거리는 병이 있다던가, 사람을 봐도 도망을 안 가는 고양이나, 너무 예의가 바른 개 같은 건, 마법이 걸려 있을지도.

 

라스티카 : 심하게 진흙 투성이인 병이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고양이나, 너무 예의가 없는 개의 경우에도, 변신한 마법사일 수도 있지만요.

 

아키라 : 어렵네요....

 

샤일록 : 하지만, 확실하게 부자연스럽답니다. 마법 주문을 외워보면, 부자연스러운 것은 보다 더 부자연스러워지죠.

요령만 깨달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실천을 해볼까요?

 

클로에 : 실천? 뭘 하는 건데?

 

샤일록 : 저희 세 명이 서로의 모습으로 변할 테니, 누가 누구로 변신했는지 간파해 보세요.

뒤돌아 계세요. 괜찮으시다면, 현자님도요. 10초를 세고 다시 돌아보세요.

 

클로에 : 알겠어. ....잘 할 수 있으려나...

 

샤일록 : 요점은, 관찰과 추측입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도,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하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생각할 때도, 물끄러미 바라보며 본질을 간파하잖아요?

클로에가 잘하는 걸 하면 됩니다.

 

라스티카 : 적당히 봐주면서 할 테니까 괜찮아.

 

무르 : 난 진심으로 할 거야! 열심히 맞혀봐!

 

클로에 : 응!

 

클로에는 기운 넘치게 대답을 하고, 나와 함께 돌아섰다.

 

두근거려하는 클로에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조금이지만 클로에가 부러워졌다.

 

나는 마법을 못 쓰니까. 마법 주문을 외워서 부자연스러운 것을 더 부자연스럽게 만들 수가 없다.

 

마법사에 대한 동경과 외로움을 느끼며, 나는 진심으로 클로에를 응원했다.

 

(좋겠다... 힘내, 클로에.)

 

클로에 : ....3, 2, 1, 0! 돌아볼게, 괜찮지?

 

샤일록 : 네. 괜찮아요.

 

나와 클로에는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무르, 라스티카, 샤일록이 나란히 서있었다.

 

하지만 그 알맹이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미소를 띄우고 있을 뿐, 입을 열거나 말하려 하지는 않았다.

 

클로에 : 말 걸어봐도 돼?

7화

 

무르 : 상관은 없는데, 말의 힘은 강력하니까, 말로 찾으려고 하면 말에 속아버릴 거야.

 

클로에 : 에엑?! 으음....

 

샤일록 : 마법을 써서 간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아, 실수. 좋지 않을까요?

 

라스티카 : 너무 티나잖아? 샤일록.

 

무르 : 봐! 방금 건 힌트일까, 아니면 함정일까? 그렇다면 힌트를 줄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

 

라스티카 : 아아, 벌써 생각하는 얼굴이네. 클로에는 나쁜 아이로구나.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벌을 줘야겠어.

 

무르 : 괜찮네! 처벌 좋아!

 

샤일록 : 그랬었나요?

 

클로에 : 갈수록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샤일록 : 클로에. 이래도 저희에게 질문을 하고 싶나요?

 

클로에 : 아냐, 괜찮아! 혼란스러우니까! 말보단 마법을 써서 찾아볼게.

부자연스러운 점이, 보다 더 부자연스러워진다고 했지?

《스이스피시보 보이팅고크》

 

클로에가 주문을 외웠다. 나는 변신을 눈치채지 못했만, 클로에는 가만히 샤일록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클로에 : 냄새가....

 

아키라 : 냄새?

 

클로에 : 술냄새가 났어. 조금, 부자연스럽게....

 

샤일록에게 다가간 클로에가, 생긋 미소 짓는 그의 가슴팍에다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환하게 미소가 번진 얼굴로, 클로에가 샤일록을 올려다봤다.

 

클로에 : 라스티카다! 라스티카 맞지? 라스티카 냄새가 났어!홍차랑 햇볕 냄새랑, 라스티카의 냄새!

 

샤일록이 부드럽게 웃으며 클로에를 끌어안았다.

 

그다음 순간, 샤일록은 라스티카가 됐다.

 

라스티카 : 정답! 역시 대단해, 클로에!

 

클로에 : 야호!

 

무르와 라스티카도, 어느샌가 샤일록과 무르로 되돌아와 있었다.

 

샤일록 : 축하합니다, 클로에. 라스티카는 아쉽게 됐네요. 저는 낮에는 별로 술 냄새를 풍기지 않으니까요.

 

무르 : 너무 의식을 해서 강해진 거구나! 내 라스티카는 어땠어? 닮았어?

 

클로에 : 전혀 눈치 못 챘었어!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무르라는 느낌? 가끔 좀 날카로운 눈빛이라던가.

샤일록의 무르도, 지금 생각해보면 상냥하고 정중했어! 그, 주변의 분위기가!

 

샤일록 : 이런, 숨길 수 없는 저의 선한 본질이 새어 나온 건가요.

 

무르 : 처벌 싫어~! 쓰다듬어줘~!

 

샤일록 : 후후. 옳지옳지.

 

아키라 : 잘 해내서 다행이네요, 클로에!

 

클로에 : 응! 이렇게 마법을 많이 배워서, 현자님한테 도움이 되는 마법사가 될게!

 

아키라 :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콕로빈 : 현자님 계신가요? 아, 서쪽 마법사 여러분들. 마침 잘 됐네요!

 

아키라 : 콕로빈 씨, 어쩐 일이세요? 마침 잘 됐다니 무슨....

 

콕로빈 : 아까 현자님이 서류를 확인해 주신 덕분에, 서쪽 마법사님들께 의뢰하고 싶은 이변 보고서가 정리됐거든요.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드릴 테니 우선 준비를 해주실 수 있나요? 첫 안건인 가면 무도회까지 시간이 별로 없어서...

 

클로에 : 가면 무도회? 가면 무도회에 가는 거야?

 

콕로빈 : 네. 남쪽 마법사님들과 함께요. 클로에 씨, 가면 무도회에 잠입하기 위한 의상을 준비해 주실 수 있나요....?

 

클로에 : .....! 물론이지! 남쪽 마법사들과 같이 간다니 기뻐! 열심히 만들어볼게!

 

콕로빈 :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 날, 새 의상을 입은 서쪽과 남쪽 마법사들이 마법관 엘리베이터 앞에 모였다.

루틸 : 클로에, 고마워! 이런 근사한 옷은 처음 입어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엄청 멋져!

 

클로에 : 고마워! 루틸도 모두도 정말 잘 어울려!

 

피가로 : 젊은 마법사들은, 첫 임무인 애들이 많겠지. 나랑 샤일록은 보좌만 할게.

 

샤일록 : 여러분끼리 협력해서, 지금 갈 곳의 이변을 해결해 주세요.

 

미틸 : 네! 저, 열심히 할게요!

 

레녹스 : 그래서, 어떤 의뢰인가요?

 

콕로빈 : 중앙과 서쪽의 국경 부근에 있는 백일몽의 성의 주인, 파르트르 님의 의뢰입니다. 그분이 소장 중인 가면에 대한 이변인데...

 

아키라 : 가면....?

 

콕로빈 : 네. 서쪽에서 신분 고저를 막론하고 즐기는 축제의 경우에는, 하룻밤의 만남을 즐길 수 있도록 가면을 쓰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 중앙과 서쪽의 국경에서 언쟁이 있었을 때, 파르트르 님의 선조분의 활약 덕에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고 평화를 맺었습니다만....

그때 우호를 축하하는 성대한 가면 무도회가 열려서, 서쪽의 장군이 기념으로 선조분께 그 가면을 선물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거대한 재앙>이 다가온 날부터는 가면이 사라지고.... 가면을 쓴 수수께끼의 인물이 성 안을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클로에 : 수수께끼의 인물....

 

콕로빈 : 네. 뒷모습이 성에서 지내는 사람을 빼닮은지라, 말을 걸어보면 가면을 쓰고 있고 어느새 슬쩍 사라져 버린다거나...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으로 변신해서, 댄스를 권하는 듯해요.

분명 그 정체는 사신이고, 죽음의 댄스를 승낙하면 영혼을 빼앗겨버린다는, 그런 소문이 돌고 있어서....

가면을 처분하고 싶은데 서쪽과의 외교에 문제가 생기게 될까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키라 : 사신.... 이 세계엔 사신도 있는 건가요?

8화

 

샤일록 : 저는 만나본 적이 없네요. 죽음을 부르는 정령은 존재하지만, 그들은 화려한 장신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무르 : 실제로 누가 죽기라도 했어?

 

콕로빈 : 아뇨.... 소문이 걱정된 파르토르 님의 사모님께서 침실에만 틀어박혀 계시는 수준이고....

 

라스티카 : 그럼, 가면이 아니라 소문에 홀렸을 가능성도 있는 거네요. 죽음의 댄스라고 하면 다들 무서워할 테니까요.

 

샤일록 : 하지만, 좀 의외로군요. 해결해야만 하는 세계의 이변은,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인명과 관련된 것이 먼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서쪽과의 외교 문제..... 나라 간의 정치를 우선시하셨군요.

아서 님은 알고 계십니까?

 

콕로빈 : .... 사실은 비밀로 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이해 좀 해주세요. 마법관이 중앙에 있는 것때문에 눈총을 받고 있어요...

게다가 지금은 서쪽에서 국력을 키우고 있어서, 중앙이 외교적인 실수를 범할 수는 없거든요...

 

뭔가 어려운 얘기였다. 샤일록의 어조가 엄하다는 것만은 알겠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샤일록 : 아서 님이 아시면 상처받으실 겁니다. 구원을 바라는 인간들도, 현자의 마법사의 진의를 의심하게 될 거고요.

 

무르 : 세계를 구하기 위한 마법사가 아니라, 중앙을 위한 마법사라고 하면서?

 

피가로 : 그러니까, 젊은 마법사들을 위해 연습을 겸해서 해보기로 한 거야.

 

샤일록 : ....피가로님은 알고 계셨던 겁니까?

 

피가로 : 내가 제안했어. 나는 아서를 귀여워하는데다, 너랑은 다르게 타협도 편들기도 잘하는 남자니까 말야.

서쪽과 중앙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서 이변을 해결하면, 현자의 마법사에 대한 평판도 올라가. 앞으로 일을 하기도 편해지겠지.

 

어깨를 으쓱하는 피가로를 보고, 샤일록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미틸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피가로의 팔을 잡아당겼다.

 

미틸 : 피가로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뭔가 곤란한 일이라도.....

 

피가로 : 괜찮아. 샤일록도 어른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그 한마디에, 샤일록의 눈빛은 확연한 경멸로 바뀌었다. 그가 싸늘한 눈으로 피가로를 노려봤다.

 

샤일록 : 서쪽 마법사들은 정의감이 강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미의식에 어긋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오늘 밤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만, 다음은 없습니다.

 

피가로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어깨의 힘을 뺀 채로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피가로 : 너를 따르게 만든 적은 없는데. 네 고상한 미의식은 존경스러워. 무지하고 무구한, 결벽의 사춘기 아이와도 같으니까.

 

샤일록 : 어린 나무를 양분 삼는 고목보다 추하지는 않죠. 당신은 인간들의 정치에 타협해서, 젊은 마법사들의 첫 무대를 팔아버린 겁니다.

 

매섭게 쏘아붙인 샤일록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피가로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미소를 지었다.

 

피가로 : 미안. 신경 안 써도 돼.

.....근데, 미인이 화내는 얼굴은 무섭네. 두근거렸어.

 

샤일록 : 빨리 타시죠. 두고 갈 겁니다.

 

짜증 섞인 샤일록의 목소리에 다들 허둥지둥 엘리베이터에 탔다. 클로에는 샤일록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제비꽃색 눈동자에는 작은 빛이 있었다.

 

클로에 : ....힘내자.

파르트르 씨의 성에서는 이미 가면 무도회가 한창이었다. 잘 차려입은 중앙과 서쪽의 귀족들이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온통 가면을 쓴 사람들뿐인 공간은, 기묘하고 신비로웠다. 죽음의 댄스가 두려웠는지, 춤을 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 기묘한 가면을 쓴 사람이 섞여있다 해도, 아무도 눈치 못 채겠는걸....)

 

샤일록과 피가로는 벽 쪽으로 빠져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피가로가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틸 : .....죄송해요, 서쪽 마법사분들. 피가로 선생님이, 샤일록 씨를 화나게 만든 것 같아서요....

 

클로에 : 미틸....

 

미틸 : 피가로 선생님은 가끔 무신경한 농담을 하고 무례한데다 비상식적이고 뻔뻔한 면이 있긴 해도....

 

무르 : 시원하게 말해버렸네!

 

미틸 :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미틸이 눈썹을 내리고 호소했다. 그 올곧음에, 방금 전 클로에의 중얼거림이 떠올랐다. 힘내자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던....

 

라스티카 : 그렇다니 다행이네. 샤일록도 좋은 사람이니까 안심이야. 무르도 그렇게 생각하지?

 

무르 : 샤일록은 교묘하게 구슬려지는 걸 싫어해! 피가로는 구슬리는 걸 잘 하니까, 신경이 곤두서버려~!

 

레녹스 : 확실히 구슬리는 걸 잘 하긴 하죠.

 

아키라 : .... 클로에, 아까 샤일록을 보면서 힘내자고 했었죠. 그건 무슨 뜻이었나요?

 

클로에 : 부끄럽네... 들었구나.... 그건 그.... 뭔가, 샤일록이 슬퍼 보이길래....

내가 이변 해결을 위해 활약을 하면, 기뻐해 주지 않을까 싶었거든. 왜냐면, 아마도 우리를 위해 화냈던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한테 좋은 밤이 된다면 샤일록도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었어.

레녹스 : 클로에... 너는 상냥하고 좋은 아이구나.

 

라스티카 : 쑥스럽네요.

 

레녹스 : 당신을 칭찬한 게 아닌데....

 

루틸 : 그러네요! 저희가 힘을 합쳐 열심히 하면, 피가로 선생님과 샤일록 씨도 화해하기가 쉬워질지도요!

 

미틸 : 선생님들끼리 잘 지내실 수 있도록, 저희의 훈련 성과를 보여드리죠!

 

무르 : 다 같이 힘내자~!

9화

 

서쪽과 남쪽 마법사들은 기묘한 가면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남쪽 마법사들은 성 각지에서 축복의 마법을 써서, 나쁜 짓을 하는 가면을 무도회장에 몰아넣는다.

 

서쪽 마법사들은, 무도회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기묘한 가면을 쓴 사람을 간파하여 붙잡는다.

 

정체를 간파하는 마법은, 저번에 클로에가 배운 마법이기도 했다. 클로에의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클로에 : 좋아! 힘내자!

 

이렇게, 서쪽 마법사들의 첫 임무가 시작됐다.

루틸 : ....이쯤이면 되려나?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거나 나쁜 것이 다가오지 않도록.

《오르토닉 세토마오제》

 

레녹스 : 피가로 선생님도 정말 곤란하다니까. 틀린 소리가 아닌데도 말을 화가 나게 하니까....

그래도, 미틸이나 루틸한테 오늘 밤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면 됐어.

《포세타오 메유바》

 

미틸 : 서쪽 마법사분들과 함께, 남쪽 마법사들의 좋은 점도 열심히 보여드려야겠죠!

 

미틸 : 성에 있는 사람들과 현자님께 도움이 되기를!

 

《오르토닉 세아르시스피르체》

나는 클로에와 함께 무도회장에 있었다. 붉은 드레스, 파란 가면, 녹색 깃털 장식....

오가는 사람들의 숨겨진 표정에 가만히 집중했다.

 

마법관에 온 지 얼마 안 된 클로에도 그랬었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본질을 꿰뚫어보려 했었다.

 

모두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클로에 : ....마법의 기운이 느껴져.

 

클로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유난히 화려한 가면을 쓴, 키 큰 귀부인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가면 아래에서, 새빨간 입술이 고양이처럼 씨익 휘었다.

 

그 이상한 미소에 나는 흠칫 놀랐다. 곧바로 클로에가 주문을 외웠다.

 

클로에 : 《스이스피시보 보이팅고크》!

 

그러자, 귀부인은 고양이가 되어 장난치듯 내 어깨에 올라탔다. 그걸 본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로에 : 앗! 무르잖아!

무르 : 정답~!

 

고양이가 무르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의 무게에 짓눌려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마법 덕분인지 풍선처럼 어깨에 고정된 채였다.

 

아키라 : 무, 무르... 그러면 눈에 띄잖아요....!

 

무르 : 샤일록이 클로에의 성과를 봐달라고 부탁했어! 축하해! 클로에!

 

클로에 : 고마워! 자, 무르, 내려와. 현자님이 곤란해 하....

 

클로에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가면을 쓴 라스티카가 있었다.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복장은 그와 동일했다.

 

라스티카 : 무슨 일이야?

 

클로에 : 아.... 무르가 귀부인으로 변신해서 나타났거든. 그다음엔 고양이가 돼서....

 

가면 아래에서, 라스티카가 미소 지었다.

 

라스티카 : 그렇구나.

 

조용한 그 미소에, 무도회장의 소란이 점차 희미해졌다.

 

나도 클로에도, 라스티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머리색도 눈동자색도 목소리도 그와 똑같다.

 

하지만,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클로에 : ....뭐 하고 있었어?

 

클로에가 그렇게 물으면서 시선만으로 라스티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었다.

 

라스티카 : 뭐냐니, 뻔하잖아. 현자의 마법사 역할을 다 하러 온 거니까 기묘한 가면을 찾았지.

 

그 스스럼없는 부드러운 어조는, 라스티카 그 자체였다. 순간, 위화감이 가짜였던 건 아닐까, 하며 생각을 다시 했다.

 

그러나, 클로에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클로에 : 이렇게 귀부인이 많은 회장에서? 라스티카라면, 기묘한 가면보다는 다른 걸 찾아야 하는 거 아냐?

 

라스티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웃으며 슬쩍 손을 뻗었다.

 

라스티카 : 춤추자.

 

클로에 : ....춤을 출 상대를 원했어?

 

라스티카 : 그래. 나는 그걸 위해 여기 있는 건데, 장식된 채로만 있으면 따분하잖아.

 

클로에 : 그게 네 본질이야?

 

라스티카 : 누구라도 그래. 즐거운 파티에 가슴이 뛰고, 뒤섞이고 싶어 하지.

외톨이는 외로워. 친구가 갖고 싶어. 여기에는 멋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끌려들어갈 것만 같은 슬픈 목소리에, 클로에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클로에 : 《스이스피시보 보이팅고크》!

 

라스티카의 가면이 빛났다. 그와 동시에, 라스티카가 클로에의 팔을 꽉 쥐었다. 가면 속 눈동자가, 어둠처럼 검게 변해간다.

 

아키라 : 클로에.....!

 

그때 또 다른 손이, 클로에의 팔을 쥔 라스티카의 손 위에 살며시 겹쳐졌다.

10화

 

라스티카 : 미안하지만, 그 애는 내 제자야.

 

클로에 : 라스티카.....!

가면을 쓰지 않은 라스티카가, 클로에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라스티카 : 《아모레스트 비엣세》

 

아키라 : ........!

 

그러자 가면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면을 쓴 라스티카의 몸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귀족 : 저건....!

 

귀부인 : 그 소문의 가면....?!

 

클로에 : 이제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의 육체는 가면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질 뻔한 가면을, 클로에가 신중하게 잡아냈다.

 

클로에 : .....읏, 잡았다! 라스티카, 현자님! 잡았어!

 

클로에가 웃는 얼굴로 보고했다. 무도회장에 있는 귀족들도, 모여든 남쪽 마법사들도 환호했다.

 

루틸 : 해냈구나, 클로에!

 

미틸 : 무사히 해결됐나요?!

 

레녹스 : 이걸로 일단 안심이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클로에가, 가면을 양손으로 들어 샤일록과 피가로에게 보여줬다.

 

클로에 : 샤일록! 피가로 씨! 가면을 붙잡았어요!

 

샤일록 : 다행이군요, 클로에. 무사히 첫 임무가 끝났네요.

 

피가로 : 축하해. 너희라면 분명, 해낼 거라고 믿었어.

자, 샤일록도. 전부 잘 풀렸으니까. 슬슬 기분 풀라고. 건배.

 

샤일록 : 정말, 말은 잘 한다니까요. 좋아요. 건배.

 

귀족 : 현자님의 마법사다! 현자님의 마법사들이 재앙을 없애주셨어!

 

귀부인 : 이거 좋은 구경을 했네요! 서쪽 나라로 돌아가면, 모두에게 자랑해야겠어요!

 

박수갈채를 받으며 클로에 일행이 쑥스럽게 웃었다. 이변을 무사히 해결하게 돼서,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아키라 : 다행이네요, 클로에. 이 가면은 어쩔까요?

 

클로에 : 부수거나 봉인하긴 좀 불쌍하네. 이 가면도 파티에 섞이고 싶어 했어.

친구를 원했어, 나처럼.

 

무르 : 또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니까, 마법관에다 두는 건 어때? 그리고, 가끔씩 가면 무도회를 열자!

 

라스티카 : 멋진 아이디어네. 마법관에 둘 수 있도록 교섭을 해보자. 클로에에게도 추억이 될 물건이니까.

 

아키라 : 그러네요. 오늘을 기념해서, 마법관에서 보관하죠.

 

클로에 : 응! 고마워, 현자님!

고마워, 모두들!

아키라 : ...가면 사건, 그립네요. 그 뒤로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렀어요.

 

추억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가면을 쓴 클로에를 돌아보았다. 가면 너머로, 제비꽃색 눈이 웃고 있었다.

 

클로에 : 그러네! 친구도 많이 생겼고, 마법관에서 가면 무도회도 하고, 눈 깜짝하는 사이에 정말 즐거웠어!

또 하고 싶다~ 무도회.

신분도 나라도 과거도 전부 잊고, 춤을 출 수 있어. 현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키라 : 그러네요. 좀 정리가 되면, 조만간 다시 마법관에서 무도회를 열어 볼까요?

 

클로에 : 와아~! 기뻐! 기뻐!

 

클로에가 들뜬 목소리로 기뻐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클로에 : 현자님 지금 있어?

 

아키라 : 엣?

 

문을 열고 나타난 건, 클로에였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분명 아까까지 옆에 있었던 클로에가 없었다.

 

그 대신, 화려한 가면이 떨어져 있었다.

 

(설마.... 지금까지 대화했던 건 클로에가 아니라...)

 

클로에 : 왜 그래? 현자님.

 

아키라 : 아..... 그게..... 클로에랑 같이 옛날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클로에 : 나랑 옛날 얘기?

앗, 이 가면! 현자님한테 장난을 친 거구나! 어휴, 정말....

 

클로에가 가면을 집어 들고서 혼내듯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화려한 가면을 자기 얼굴에 썼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키라 : 클로에....

 

클로에 : 저기, 현자님.

 

화려한 가면 너머로, 클로에의 제비꽃색 눈동자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치, 새학기의 학생처럼.

파티에 섞이고 싶어 했던, 가면 무도회의 가면처럼.

 

클로에 : 그 이후로, 나에 대해 알게 됐어?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줬어?

그렇다면, 기쁠 거야!